놀이터에서 친구와 술래잡기를 하던 중,
술래였던 내 아이가 친구를 잡았다.
잡힌 게 화가 난 친구가
순간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아이에게 던졌다.
아이도 화가 나서
바닥에 떨어진 친구의 물건을 들고
친구에게서 멀리 도망갔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자기 엄마에게 전화로 일렀다.
“엄마, 이가 내 물건을 뺏어 갔어!”
아이는 억울했다.
그 길로 집에 왔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친구 앞에서 참았던 눈물과 분노를 쏟아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진짜 양심이 쓰레기야! 엉엉.
엄마! 우리 CCTV 보러 가자. CCTV에 다 나오지? 엉엉.”
“다른 친구들이 다 봤잖아. 친구들이 CCTV야. 괜찮아.”
“난 이제 이랑 절교할 거야. 다시는 안 놀아!”
그래도 분이 안 풀린 아이는 이 일을 적어 놔야겠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일기를 썼다.
따라 들어가 옆에서 다독여 줬다.
제일 첫 줄에 친구 이름을 쓰고
오늘 있었던 일을 적더니
욕도 써야겠다고 말했다.
‘욕? 음… 욕이라고 하면 발, 뭐 이런 건가?
글로 마음이 해소가 될 수 있다면…흠
근데 아직 열 살밖에 안 된 어린이가
감정을 욕으로 푸는 게 맞는 걸까?’
내 마음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는데,
아이는 거침없이 종이에 욕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기에 쓴 욕은 이랬다.
돼지. 하마. 초록 돼지. 핑크 돼지.
안경빨 뽀로로??
인성 쓰레기. 양심 쓰레기. 거북이.
괜한 걱정이었다.
왜 자꾸 동물을….
다음 날,
하교하는 아이에게 밝은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조금만 놀다 갈게.”
전화기 너머로 친구와 장난을 치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재밌게 놀다 와.”
아직 핸드폰이 없는 아이는
친구 전화로 내게 전화를 한다.
내 액정 화면에 뜬 친구 이름은 바로,
어제 절교한 안경빨 뽀로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