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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핸드스피크 Mar 09. 2024

태영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태용

 난데없이 흐르는 콧물과 마주한 적이 있는가. 휴지가 없어 속절없이 나오는 콧물을 옷소매로 훔쳐본 적이 있는가. 조용한 공간에서 킁킁 코를 먹거나, 코로 구슬픈 피리를 불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만성 비염인의 고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다. 잠을 잘 때 양쪽 코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입으로 숨 쉬느라 입이 건조해지는 건 일상다반사다. 혹 콧물이 반짝이고 있지는 않은지, 시간이 흘러 메마른 코딱지가 콧구멍에 붙어있는 건 아닐지 수시로 거울을 확인해야 한다. 태영은 다른 사람에 비해 머리통이 큰 연유를 비염 탓으로 돌렸다. 오랫동안 입으로 숨을 쉬다 보면 머리가 커진다는 가설을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맞는 캡모자가 태영만 꽉 낄 리가 없잖아. 오늘도 그 가설에 신빙성이 더해진다.

 태영의 코 주변은 언제나 헐어있으며, 외출 시 주머니에 휴지가 없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옷소매까지 동원하여 코를 닦는 불상사만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태영의 외투를 빌려 입거나, 태영에게 외투를 빌려주는 친구들은 태영이 사용할 예비 휴지나 코 묻은 휴지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촉촉 내지는 축축한 휴지를 들킴으로써 태영은 코흘리개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지만 태영은 휴지가 절실히 필요한 친구들에게 일등 공신이 되어주기도 한다. 친구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며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며 한껏 생색을 낸다. 덕분에 코흘리개에서 코찔찔이 일등공신으로 승격했다.

 길용과 현미는 그런 딸의 비염을 애달파했다. 유달리 오래갔던 코감기가 비염으로 변하더니 어느 날은 야자를 못 할 정도로 증상이 심해져 퉁퉁 부은 눈과 코로 집에 온 딸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하더니 이제는 비염이다. 매일 밤 손수 알로에를 갈라 아토피 부위에 올려 겨우 진정시킨 것처럼 이제는 비염을 물리쳐주고 싶었다. 한의원에서 한약을 달여오고, 비염에 좋다는 오미자와 우엉, 양파즙을 매일 같이 끓여주었다. 하지만 태영의 비염은 차도가 없었다.

 지금도 현미는 인스타그램에서 비염에 좋은 음식이나 영양제가 나오면 유심히 보다 어느 날 태영에게 프로폴리스 영양제 따위를 사준다. 태영은 엄마의 사랑을 열심히 먹으려고 노력하나 깜빡하고 먹지 못한 날도 많았다. 길용은 태영이 휴지로 코를 풀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들어 휴지는 먼지가 많으니 대신 물로 헹구거나 손수건으로 처리하라고 이야기하며 본격적인 잔소리 행진곡을 시작한다. 태영은 다시금 시작되는 그의 연주에 속절없이 눈을 질끈 감는다. 그것이 잔소리를 멈출 길이라 생각했으나 눈을 떠도 여전히 길용은 연주에 한창이다. 오늘은 최소 10분 이상이다. 그 와중에 훌쩍거리는 코는 눈치도 없이 협주를 시작하여 길용의 연주에 박차를 가한다. 현미와 길용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태영의 비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에 머물러있다.

 만일 태영이 인디언으로 태어났다면 필시 매우 반짝이는 코라든지, 코로 피리를 부는 12월의 아이 등의 이름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그 시대에도 모두의 측은지심을 사며 콧물을 닦기 위한 나뭇잎 따위를 늘 가지고 다녔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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