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
나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생머리였다.
그러나 지금은 심한 곱슬머리다. 그렇게 된 것은 초 6학년때부터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영원한 팬인 이효리가 10Minutes 를 노래부르며 찰랑거리는 모습이 예뻐서 똑같이 따라하고싶었다.
그래서 엄마한테 나도 이효리처럼 갈색머리로 염색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끈질긴 요구에 엄마는 결국 마지못해 갈색 염색약을 사오셔서 집에서 직접 해주셨는데 두피까지 따갑도록 빈틈없이 발라주신걸로 기억한다. 어렸던 나는 엄마가 해주시는거라면 뭐든 다 맞다고 생각했다. 따가운 고통을 참아가면서 갈색머리가 된 내 모습을 기대했으나, 온전히 색깔이 잘 나오질 않아 두 번 더 했다. 그 결과, 밝은 갈색으로 선명하게 잘 나온 내 머리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지만, 그래도 이효리라도 된 것 같아 만족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대에 부푼 채로 갔는데 오히려 내 머리를 보고 웃기만 했다.
왠 사자머리가 돼서 왔냐고 하질 않나. 하지만 부정을 할 수가 없는게 내가 봐도 정말 사자머리였다.
안그래도 숱이 많은 머리라 붕 뜨니 머리만 커보였다. 갈 수록 어째 머리가 점점 커보여 그 후로 머리를 묶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과도한 염색으로 인해, 곱슬머리로 바뀐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 입학 하기전까지 귀밑에 3센티미터이하로 머리를 잘라야되는 규정이 있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러갔는데, 숱많고 곱슬머리라 머리를 자르면 붕뜰거라는 디자이너의 말씀에 처음으로 매직이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머리 숱이 많아서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마리드라는 캐릭더의 별명을 얻었다.
머리가 너무 붕떠서 매일 아침마다 고데기로 펴야하는 불편함에 학교에서 사정을 구하니 특별히 단발규정의 면제를 해주셨다.
덕분에 머리를 기를 수있었지만, 새로 자란 머리는 너무 꼬불거려 올백으로 꽉 묶고선 왁스로 발라야할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얼마나 촌스러웠을까 나는 어떻게 그 머리로 다녔을까 싶어 너무 경악스럽다.
찰랑거리는 웨이브펌이라던지, 그 당시 유행을 하던 샤기컷도 하고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하게된다면 머리가 또 얼마나 붕뜰지는 알기에 마음대로 자를 수가 없었다.
이런 웃픈 사연을 가지고있는 내가 성인이 되고 댄서가 되었다.
댄서다 보니, 머리를 다양하게 시도해보면 좋을텐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제한을 두는게 한이 남았었다. 어느 날 문득 ‘칼단발에 파마를 해볼까?’ 라는 욕심에 삘꽂혀서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에서 극구 말리셨지만 괜찮다고, 한번 해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아뿔사, 욕심에 멀어 간지날 것만 같았던 기대와 다르게 너무나도 촌스러운 아줌마머리가 되었다. 내 지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내가 봐도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붙임머리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붙임머리를 하려면 파마한 머리는 다시 펴야되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파마한 머리는 얼마 되지않았고, 다시 매직할 돈은 아깝고, 눈에 더 멀어버린 욕심에 그 돈으로 그냥 그대로 붙여달라고 했다.
그 결과 불협화음이었다. 윗머리가 뽀글뽀글한 머리로 붕뜬 상태에 머리 밑에 붙어있는 매끄러운 생 긴머리였다.
또 아뿔싸, 왜 나는 항상 저지르고나서야 후회를 하는 것일까
디자이너들이 말리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건데 왜 나는 고집을 또 부렸을까
살면서 처음으로 큰 거액으로 머리를 한 만큼 아까워서 어쩔 수없이 나는 매일 모자를 쓰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모자를 매일 쓰고 다닐려니 불편함을 견틸 수가 없어 결국 2달만에 떼버렸다.
그 후, 나는 욕심을 더 이상 절대 안부리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그런데 말이지, 사람은 욕심의 끝이 없다고 하지않는가
먼 훗날 민머리가 된 내 모습이 될 지는 미래의 매력에게 맡겨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