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 'opus'
어제 오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이와 아들도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을
좋아해서 저녁에 해운대 영화의 전당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5월부터 8월까지 야외에서
무료 영화를 볼 수 있는 행사가 십 년 전부터 시작됐는데 그동안 거리가 멀고 굳이 갈 필요가 없었다.
다행히 영화의 전당의 상징적인 거대한 지붕 아래서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상영한다고 했다.
비가 뿌린 뒤라 바람도 서늘하게 불고 양쪽으로 트인 공간 밖 도로에서 자동차 소리와 불빛이
방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두운 흑백 필름과 함께 음악이 연주되자 바로 몰입할 수 있었다.
뒷모습에서 굽은 어깨를, 건반 위 마디진 마른 손에서 감정과 여운을 느끼며 죽음을 향해 가는
구도자를 보게 되었다.
나는 기존의 클래식 음악에 익숙해서 이렇게 틀을 벗어난 경음악이 처음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암 투병 소식과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행동, 음악을 대하는 자세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빗소리를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여기고 '음악 같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어떤 형식이나 멜로디가 없는 것 같다. 그냥
모든 자연의 소리와 자기 내면의 소리를 담아낸 듯하다.
음악은 인간의 약함과 강함을 꿰뚫어 주는데 그의 진지하고 사색적인 작품과 함께 연주자의 모습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후반부에 연주를 마치기 전 감정이 고조된 부분에서 침묵이 길어지다가 더
나가지 않고 끝내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연주에 온통 신경이 곤두선 듯 초췌한 얼굴엔 가끔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음악에 대한 그의 진중한 태도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그런데 음악을 끝까지 사랑하고 죽음을 의식하면서 준비한 마지막 콘서트라니!
그는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었던 보기 드문 사람이다. 이젠 하늘의 구름과
바람처럼 자유롭거나 반짝이는 별이 된 예술가의 라스트 콘서트에 가족이랑 참석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