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기적 해석가 Nov 28. 2021

타락한 아르테미스

<킬링 디어> 해석

 대부분의 영화들은 선(善)이 악(惡)을 이기는 구조를 가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악은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관객에게 교훈을 주며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킬링 디어>는 이러한 반성을 배제하였습니다. 스티븐은 자신의 음주로 인한 의료 사고임에도 마취 의학과를 탓합니다. 적반하장으로 그는 마틴을 납치하여 고문하기까지 하죠.


 스티븐은 가정 안에서와 밖에서 모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먼저, 가정 안에서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아내 애나가 검은색 드레스를 구입할지 고민할 때, 스티븐은 자신의 마음에 든다며 결정권을 행사합니다. 애나는 바로 구입하죠. 섹스 방식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수면 마취'라고 말하면 애나는 침대 위에 옷을 벗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스티븐은 그 모습을 보며 자위를 하거나 섹스를 합니다. 이 장면은 스티븐의 권위를 보여줍니다. 수술방과 집 안에서 항상 신의 권력을 가진다는 증거이죠. 스티븐은 아이들에게 할 일을 지시합니다. 밥에게는 화초에 물을 주라고, 킴에게는 개를 산책시키라고 하죠. 더 나아가서 그에게는 가족들의 목숨을 빼앗을 권력이 주어집니다. 영화 중반 마틴이 스티븐에게 선물한 스위스 군용 칼은 스티븐을 상징합니다. 스위스 군용 칼은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칼부터, 가위, 병따개 등의 도구가 한데 모여있죠. 이는 수술방에서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는 스티븐과 닮았습니다. 더 나아가서 가족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그와 닮았죠. 그는 아가멤논의 권력을 가집니다.


 <킬링 디어>의 모티브는 <신성한 사슴 죽이기(The Killing of a Sacred Deer)>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등장하는데요. 킴이 리포트를 작성하고 발표를 해 A+를 받은 바로 그 작품입니다. 잠시 그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아가멤논은 사냥의 신인 아르테미스의 분노를 사서 저주를 받습니다. 바로 역풍이 불어서 트로이 원정에 출정하지 못하는 저주입니다. 어느 날, 그는 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아가멤논은 신탁을 듣습니다. 자신의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라는 내용입니다. 딸을 지킬지, 전쟁에서 명성을 얻을지 고민하던 그는 딸을 제물로 바치기로 합니다. 이피게네이아를 불쌍히 여긴 아르테미스는 그녀를 사슴과 바꿔치기합니다. 이 사실을 알리 없는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이 딸을 제물로 바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여 그를 살해합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아들 오레스테스는 엄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죠. 결국 사슴 한 마리로 일가족이 사망합니다. 이 이야기를 <킬링 디어>에 대입하면, 사슴은 밥이고 아가멤논은 아버지 스티븐입니다. 아가멤논이 받은 신탁은 가족 중 한 명을 죽이라는 명령이죠.


  카메라는 관객의 시점입니다. 만약 카메라가 배우들의 눈높이라면, 관객은 배우의 감정에 몰입하기 쉽습니다. 눈높이가 아닌 다른 각도 혹은 제한된 시점이라면 제 3자, 즉 관찰자로 분리됩니다. 마치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비브르 사 비>처럼 말이죠. <킬링 디어>는 카메라를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조로 촬영했습니다. 관객은 배우와 거리가 있으며 극에 몰입하거나 직접 개입하지 못합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입니다. 카메라로 통제가 불가능할 땐 음악으로 방해합니다. 영화의 배경음악은 음악이라기보다는 불규칙한 소음에 가깝습니다. 어떤 때는 배경음악 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대화 소리까지 집어삼키죠. 이런 음악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기 위한 요소입니다. 배우들의 대사가 하나같이 건조하고 감정이 없는 것도 하나의 장치이죠. 관객들은 스티븐 일가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습니다. 


 <킬링 디어>는 수미상관(首尾相關) 구조를 가집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스티븐과 마틴은 한 식당에서 만납니다. 감자튀김을 먹지 않는 마틴을 보며 스티븐은 왜 감자튀김을 먹지 않는지 물어보죠. 그는 좋아하는 음식은 마지막에 먹는다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서도 반복됩니다. 밥이 죽은 이후 킴과 스티븐, 애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합니다. 마틴이 식당으로 들어오자 킴은 마틴을 보며 감자튀김에 케첩을 뿌립니다. 마틴이 가장 좋아하는 감자튀김에 케첩을 뿌렸죠. 감자튀김은 밥을 케첩은 피를 상징합니다. 혹은 감자튀김은 기본 원리인 등가 교환을, 케첩은 그 등가 교환의 결과를 의미하죠. 


 <킬링 디어>의 핵심은 등가 교환입니다. 영화는 전부 등가 교환의 원리를 따릅니다.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수술을 마친 스티븐과 매튜가 시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매튜는 자신이 잘 아는 시계방이 있다며 분명히 할인을 해줄 거라고 합니다. 시계방 주인이 자신의 환자였기 때문이죠. 스티븐이 마틴에게 시계를 선물하자, 마틴은 스티븐에게 스위스 군용 칼을 선물합니다. 스티븐이 집에 초대하자 마틴도 자신의 집에 스티븐을 초대합니다. 스티븐이 마틴의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에 스티븐의 가족 중 한 명이 죽어야 하죠. 이렇듯 영화는 간단한 등가 교환의 원리로 진행됩니다. 마틴이 스티븐에게 붙잡혔을 때, 이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나를 주었으면, 하나를 받거나 동일한 행동을 하는 게 마틴의 신념입니다. 애나가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I don't know if what is happening is fair, but it's the only thing I can think of that's close to justice.

 공평한지는 모르겠지만, 정의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는 마틴. 영화는 마틴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며, 그가 생각하는 정의에 맞게 진행됩니다. 영화 마지막, 감자튀김에 케첩을 뿌리는 킴의 모습을 보며 마틴은 압도당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신념으로 탄생한 결과이기 때문이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