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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pr 09. 2023

조커

소외된 자의 살아남기 위한 발악

역사 상 수많은 조커들이 있었습니다. 1대 조커라 불리는 시저 로메로부터 잭 니콜슨, 자레드 레토, 히스 레저, 호아킨 피닉스, 배리 키오건과 배트맨 애니메이션 속 마크 해밀을 비롯한 수많은 성우들까지. 많은 사람들은 최고의 조커가 누구인지 순위를 매기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각 배우들마다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커는 서사가 없는 인물입니다. 혼돈에 가까우며, 배트맨이 없으면 존재 이유가 사라집니다.(이는 <다크나이트 리턴즈>라는 만화책에 잘 묘사됩니다.) 그러나 토드 필립스의 <조커>에서는 서사를 부여했습니다. 이름이 없는 조커에게 아서 플렉이라는 이름을 주고,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공합니다.


 범죄 도시 고담에서 광대 일을 하는 아서 플렉은 폐업 정리 중인 한 가게의 홍보를 돕습니다. 그때, 한 무리의 아이들이 광고판을 빼앗고 아서를 마구잡이로 폭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가던 길에 세 명의 젊은 금융원들이 한 여성을 희롱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서는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집니다.  아서에게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이 있습니다. 이를 모르는 세 명의 금융원은 폭력을 행사합니다. 참다못한 아서는 주머니 속 총을 발사합니다. 아서는 현장을 뜀박질로 벗어납니다. 코미디언이 되고 싶은 아서는 용기를 내어 스탠드업 쇼에 올라갑니다. 하필 그 순간 웃음이 터집니다. 며칠 뒤,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머레이 쇼”에서 자신의 영상을 조롱합니다. 아서는 머레이 쇼 섭외 전화를 받습니다.


 영화 <조커>는 두 편의 영화를 오마주 합니다. 바로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와 <코미디의 왕>입니다. 각 영화들이 어떻게 오마주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코미디의 왕>은 루퍼트 펍킨이라는 인물이 한 유명 코미디언을 납치하는 영화입니다. 재미있지만 얕지 않은 이야기가 특징입니다. 영화에서 루퍼트가 혼자 세트를 꾸미고 빈 의자를 가리키며 가상의 쇼를 진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조커>에서 그대로 오마주 되었죠. 루퍼트의 망상이 아서와 닮았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는 뉴욕 밤거리를 운행하는 택시 기사, 트래비스 버클의 이야기입니다. 불안정하고 소외된 트래비스는 뉴욕의 더러운 민낯을 고백합니다. 트래비스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합니다:

트래비스 버클: This city here is like an open sewer, you know, it's full of filth and scum. Sometimes I can hardly take it. Whatever ever becomes the President should just - really clean it up, know what I mean? …(중략)… It's like I think that the President should clean up this whole mess here. He should flush it down the fuxkin' toilet.

 어느 날, 트래비스의 택시에 대선 주자가 탑승합니다. 트래비스는 후보자에게 뉴욕을 하수구에 비유합니다. 죄와 쓰레기들로 가득한 도시를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죠. 이는 <조커>의 묘사와 닮았습니다.

 <조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쓰레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고담의 분위기를 제시합니다. 트래비스가 말한 “it’s full of filth and scum”을 쓰레기라는 상징으로 대신했죠. 둘째, 아서의 위치입니다. 아서는 집단 린치를 벌이는 무리 때문에 쓰레기와 함께 길바닥에 나뒹굽니다. 쓰레기는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다음은 <택시 드라이버>와 <조커>의 대사입니다.

트래비스 버클: Now I see this clearly. My whole life is pointed in one direction. There never has been a choice for me.

아서 플렉: For my whole life, I didn't know if I even really existed. But I do, and people are starting to notice.

 두 대사의 방향성과 구조가 유사합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두 인물을 제시하는 대사입니다.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는 트래비스 버클과 닮았습니다.


 <조커>에서는 계단과 일방통행이 상징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초반, 아서는 집으로 가는 계단을 힘겹게 오릅니다. 반면 후반에서는 춤을 추며 아래로 빠르게 내려갑니다. 회사에서 해고되었을 때도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며 낙서를 합니다. 계단은 도덕을 상징합니다. 도덕으로 오르는 길은 힘겹지만 도덕에 반하는 길은 유쾌하고 빠릅니다. 엘리베이터와 일방통행 표지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서가 옆집의 소피를 미행하다가 고담 은행으로 향합니다. 해당 장면 좌측에는 왼쪽 화살표에 “ONE WAY”라고 쓰인 표지판이 보입니다. 아서는 화살표 방향에 맞춰 움직이다 길을 건너는 순간 반대로 향합니다. 화살표의 방향이 도덕의 방향입니다. 아서는 순간 도덕에서 벗어나지만 페니를 바라보며 다시금 도덕의 길로 향하는,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서에게 엄마 페니는 도덕을 유지해야 할, 유일한 사회와의 통로입니다. 머레이 쇼의 방청객이 되는 상상에서 엄마를 언급하는 장면을 통해 엿볼 수 있죠. 그러나 엄마의 거짓말을 알고 살해한 이후로 사회와의 통로는 사라졌고, 도덕의 빠른 하강을 보입니다.


  아서의 웃음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신경질적으로 폭발합니다. 이는 폭력과 같은 의미인데요. 아서가 당한 폭력이나 행한 폭력 모두 신경질적입니다. 이때의 폭력은 비단 물리적인 폭력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무례와 언어폭력도 포함됩니다. 경찰조차 아서가 가진 웃음 병을 “광대 짓(Clown Thing)”이라고 부르며 모욕합니다. 아서의 웃음은 폭력을 상징합니다.

 둘째,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코미디언의 개그를 들을 때, 아서는 관중과는 다른 순간에 가짜 웃음을 내비칩니다. 타이밍을 잡지 못하죠. 가짜 웃음들은 전부 ‘아닌 척’ 하기 위함입니다. 마치 “정신 질환의 최악인 면은 질환을 가지지 않은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라고 작성한 일기처럼 말이죠.(The worst part of having a mental illness is people expect you to behave as if you don't.)

 아서는 신경질적으로 폭발하는 웃음과 폭력을 춤으로 승화합니다. 춤은 해방을 의미합니다. 세 명의 금융원을 죽이고 화장실에서 춘 처연한 춤과 머레이 쇼 등장에서 춘 춤, 고담을 아나키 상태로 만든 후 경찰차 위에서 추는 춤까지. 모두 자기 파괴적이지만 무언가를 해방시켰습니다. 금융원 살해 당시에는 분노를, 경찰차 위에서의 춤은 고담을 해방시켰습니다. 쇼 등장 당시의 춤은 삶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아서는 머레이 쇼에서 자신의 머리를 쏴서 삶으로부터 해방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머레이의 반복적인 무례에 일을 그르쳤죠.


 아서가 머레이에게 자신을 ‘조커’라고 소개해달라한 이유는, 조커가 아서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내내 아서의 얼굴에는 흰색 화장이 묻었습니다. 직접 분장을 한 경우뿐만 아니라, 맨 얼굴일 때조차 턱 아랫부분에 미처 지우지 못한 흰색이 남습니다. 또한, 아서가 조커로 완전한 각성을 끝마쳤을 때, 혀 안까지 화장하죠. 혀 안까지 흰색으로 분장을 하는 이유는 흰색의 얼굴이 아서의 진정한 면모이기 때문입니다. 두 형사가 아서를 추적하는 장면에서, 아서는 자신의 분장과 똑같은 가면을 쓴 사람들과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가면을 쓰고 자신의 신분을 감추었습니다. 그러나 아서만큼은 맨 얼굴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죠. 이때, 아서는 행인의 가면을 빼앗습니다. 아서의 행동으로 지하철에서 싸움이 벌어집니다. 아서는 지하철에서 내려 가면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쓰레기로 가득 찬 쓰레기통 위의 가면은 상징적입니다. 쓰레기(고담)를 광대(아서)가 해방시킨다는 아나키즘적 암시임과 동시에, 가면을 버려 본질을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가면 뒤 피부에는 조커가 있죠.

 페니는 아서를 ‘해피’라고 부르죠.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이지만, 지원이 끊기기 전 상담관과의 마지막 상담에서 아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 heard this song on the radio the other day. And the guy was singing that his name was carnival...(중략)…because that’s my clown name at work.”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가수 이름이 카니발입니다. 카니발은 아서의 광대 이름입니다. Carnival은 축제라는 뜻이지만 비슷한 발음의 Cannibal은 식인을 의미합니다. “해피”라는 페르소나 뒤 본질에는 “카니발”이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 아서는 경찰차 위에서 춤을 춥니다. 고담은 아나키 상태가 되었고 가면을 쓴 시민들은 아서에게 열광합니다. 해당 장면에서 아서 플렉이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고담 시민 전체로 확장됩니다. 영화에서 아서가 마주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흑인입니다. 처음과 끝의 상담관부터 아캄 병원의 문서 담당 직원, 옆집의 여자 소피, 버스에서 만난 모녀도 그렇습니다. 이는 흑인이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서가 머레이를 죽이고 난 이후 화면 조정 화면에 나타나는 인디언 표시는 소외된 자를 상징합니다. 아서 플렉 자체가 고담의 바닥에서 쓰레기들과 함께 굴렀기에, <조커>는 약자의 이야기를 사회 전반으로 확장하며 마무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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