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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 해석가 Aug 30. 2023

오펜하이머

관측할 수 없는 별의 죽음

프로메테우스는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인간을 창조한다. 티탄시대가 저물고 인간이 신을 등졌을 때, 창조물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건넨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의 바위산에 묶는다. 프로메테우스는 굴하지 않고 뛰어난 예지력으로 제우스를 조롱한다. “당신의 말로(末路)는 크로노스, 우라노스와 같을 것이다. “ (크로노스와 우라노스는 자식에 의해 몰락한다.) 분노한 제우스는 독수리로 하여금 간을 뜯어먹는 형벌을 내린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에게 자신을 몰아낼 자식의 이름을 대는 조건으로 형벌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지만 거절당한다. 프로메테우스는 3만 년 동안 형벌을 받는다. 헤라클레스가 독수리를 물리치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1938년, 독일의 과학자들은 원자(Atom)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더 작은 물질로 분해됨을 발견한다. 물리학자들은 이 원리로 새로운 폭탄을 떠올린다. 다음 해, 아돌프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개전한다. 미국은 독일보다 핵폭탄을 먼저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프로젝트 전반을 담당하는 그로브스 장군은 리더로 양자역학을 미국에 소개한 오펜하이머를 정한다. 오펜하이머는 석학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로스 앨러모스에 마을로 위장한 비밀 연구기지를 짓는다. 과학자들은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폭탄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오펜하이머는 조국을 위한 일임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질 폭탄을 보며 죄책감에 시달린다.


 <오펜하이머>의 큰 특징은 흑백과 컬러의 교차이다. 흑백과 컬러로 제시되는 영상은 각각 두 개의 장(場; Chapter)이다. 컬러로 제시되는 장면은 오펜하이머의, 흑백 장면은 루이스 스트로스의 시점이다. 흑백 장면 촬영을 위해 KODAK 사는 흑백 아이맥스 필름을 특수 제작한다. 이는 단순히 연출만을 위함이 아니다. 흑백으로 촬영한 데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필름의 색상은 주인공의 내면을 상징한다. 스트로스는 정치인이자 장군으로 세상을 아군과 적으로만 판단한다. 즉, 흑백 논리로 가득 찬 사람이다. 반면, 오펜하이머는 다채로운 감정을 가진다. 핵폭탄의 개발 당시에는 조국을 위한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폭탄을 혐오하고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컬러는 오펜하이머가 가진 다채로운 감정과 복잡함을 상징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장의 제목이다. 흑백으로 제시되는 장의 제목은 „Fusion(핵융합)“이고 컬러로 제시되는 장은 “Fission(핵분열)”이다. 언뜻 보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과학자들을 결속시켜야 하는 오펜하이머의 이야기가 핵융합에 어울리는 듯하다. 그러나 감독은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핵분열로 잡았다. 왜일까? 제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 미국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무기 매매를 통해 부를 축적한다. 그러던 중 1929년 대공황이 찾아온다. 노동자들은 실직하고 회사는 파산한다. 이때, 노동자들은 러시아로 시선을 돌린다. 공산주의는 이념상 실직자가 없고 노동자를 위한 체제이다. 레닌의 노동자 혁명은 당시 미국 노동자들이 가진 분노와 무기력을 대입하기에 충분했다. 공산주의는 매력적인 대안이었고, 지식인들도 점차 수용하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미국에는 공산주의 광풍이 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공공의 적, 나치를 몰아내기 위해 미국과 소련은 동맹을 맺는다. 전쟁이 끝나자, 이념 대립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발 빠르게 소련과 공산주의를 적으로 설정한다. 이때, 미 상원 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자국 내에 공산주의자들이 사보타주를 한다는 의혹을 제시한다. 이때부터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의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스트로스는 당시 미국 정부를 대표한다. 미국은 매카시즘으로 국가적 결속을 추구했다. 그 방식은 국민을 공산주의자(흑)와 반공주의자(백)의 흑백논리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스트로스의 장이 “Fusion(핵융합)“이라는 이름의 흑백 필름으로 제시된 이유이다.

 반면, 오펜하이머는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과민하고 불안정한 그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직을 맡자 섬세하고 강해진다. 오펜하이머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핵분열과 같은 모습이다.


 자신의 창조물을 사랑하여 불을 건넨 프로메테우스와 같이 오펜하이머는 국가를 위해 핵폭탄을 건넨다. 프로메테우스가 건넨 불과 오펜하이머가 건넨 핵폭탄은 훌륭한 도구인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징벌을 받았듯, 오펜하이머는 미 정부의 분노를 사서 징벌을 받는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말로가 크로노스, 우라노스와 다르지 않다고 예지했 듯,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말로가 히로시마, 나가사키와 다르지 않음을 외친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에, 미 정부로 상징되는 루이스 스트로스는 제우스에 대칭된다. 즉,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의 징벌에 대한 이야기이며, 원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적극적인 수용이다.


오펜하이머는 핵폭탄뿐만 아니라 별과 중력장에 대한 연구도 했다. 영화 초반, 오펜하이머는 별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FAECT 모임에서 슈발리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별이 죽이면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중력장이 생긴다. 그 중력장은 블랙홀이며, (당시 기술력으로는) 관측될 수 없다. 별의 죽음은 국가적 영웅인 오펜하이머의 몰락과 일치한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은 매카시즘의 흑백 논리로 확장된다. ‘관측할 수 없는 블랙홀’은 고독히, 외롭게 역사에서 잊히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암시한다.

 <오펜하이머>의 OST(Original Sound Track)인 <American Prometheus>는 이런 오펜하이머의 몰락을 잘 담아냈다. 날카로운 현악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음악은 점점 고조되다가 웅장한 관악기의 소리가 치고 들어온다. 긁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는 신경질적이고 외로운 오펜하이머의 심리를 묘사하며 아슬아슬한 상황을 녹여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개봉한 <오펜하이머>는 의미심장하다. 지금, 세계 각국은 이빨을 드러내며 군비 경쟁을 한다. 신냉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감독은 비극의 시작이었던 핵폭탄의 개발로 돌아갔다. 오펜하이머의 죄책감을 통해 감독은 간접적으로 미국을 대표한 사과를 하는 듯하다. 동시에, 현 상황을 고발하고 행동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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