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을 뉴에이지로 접근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처음 클래식에 미쳐버렸던 건 라벨, 드뷔시, 그리고 일본 뉴에이지 그룹인 Acoustic Cafe이다. 그들은 드뷔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를 편곡하여 새 곡을 냈다. 곡 제목은 ‘파반느Pavane’.
클래식은 사계-봄 밖에 몰랐던 내가 빠져든 클래식의 시작이 편곡이라니. 누군가는 클래식의 징수를 모른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아노도 못 치는 어린 초등학생에게 현악기의 매력을 일깨웠다는 점은 절대 놓칠 수 없는 강점이다. 어쿠스틱 카페의 Last carnival, Pavane, long long age는 바이올린에 미치게 만들었다. 그 이후 나는 학교 실내악 오케스트라에 참여해 여러 곡들을 연주했다. 실력은 모자라 제 2바이올린에 머물렀지만, 생상스와 차이코프스키의 곡은 내게 아름답게 다가왔다.
어려운 클래식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미디어는 클래식을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이다. 이전까지의 내 클래식 기호는 미디어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눠보자면 크게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책 순서이다.
영화 <트와일라잇> 속 드뷔시 ‘달빛’
삼각 관계로 인해 여자 아이들의 망상 로맨스로 인식되고는 하는 영화 트와일라잇. 당연 그 여자 아이였던 나도 트와일라잇을 좋아하고는 했다. 영화에 이어 책까지 다 사 읽었다. 후후. 이 책에서 단연 로맨틱한 장면은 볼보를 모는 에드워드의 차에서 흘러나오는 드뷔시였다. 매번 우중충하고 비가 많이 오는 지역, 서로 썸을 타는 사이로 애매한 두 사람은 좁은 차 안, 흘러나오는 달빛의 선율에서 공통점을 찾아낸다. 서로가 어린 시절부터 클래식을 많이 들어왔고, 서로 서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 그들은 조금 내성적인 사람들이었는데 이로 인해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원작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도 등장한다. 이후 영화는 한 단계 앞서나간다. 극 중 피아노를 칠 줄 아는 남자 주인공 로버트 패틴슨이 달빛 아래 잠든 여자 주인공을 훔쳐보며 작곡을 한 곡이 있다는 설정을 추가한 것이다. 그 제목은 ‘Bella’s lullaby’. 많은 부분이 드뷔시의 달빛을 떠오르게 하는 곡으로, 피아노의 선율이 주가 된다. 바이올린 선율이 추가되어 로맨틱한 느낌을 덮어내는 곡이다.
<디지몬 어드벤쳐 애니메이션 극장판>, 라벨 '볼레로'
나는 그렇게까지 디지몬 팬은 아니었던 터라 태일이와 아구몬에 심장이 뛰지는 않지만, 극장판의 볼레로는 정말 신의 한 수 였다고 생각한다. 태일이 동생, 이름이 뭔지 기억 안 나는 그 친구가 뽁뽁 댈 때마다 흘러나온 볼레로. 아이들에게는 환상의 나라로 문을 여는 입장곡이 아니었나.
이 볼레로는 밑에서 언급할 <노다메 칸타빌레> 극장판에서도 등장한다. 주인공의 첫 지휘가 시작되는 프랑스 오케스트라에서 그는 바이올린으로 위장한 채 볼레로를 연주한다. 그리고 대망의 첫 지휘자로서의 합주곡, 그의 오케스트라는 엉망진창의 볼레로 연주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볼레로는 느려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는데, 독주가 많은 볼레로의 특이점으로 인해 망가지는 악기 하나하나를 맞이할 수 있어 재밌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랩소디 인 블루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고등학교 음악 시간을 즐겁게 해주었던 노다메 칸타빌레, 이미 가창이니 연주니 1도 할 줄 모르는 일반 고등학교의 음악 시간은 놀자판이다. 음악 선생님은 이 시간을 그나마 유익하게 만들고자 강구했으니,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로 쉽게 클래식에 접근하도록 만들어주자는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는 강력하게 작용했다.
피아노 좀 친다는 애들이 매번 치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곡이 아니라 노다메 칸타빌레의 라흐마니노프와 라벨을 찾아듣게 만든 것이다. 이 외에도 노다메가 연주하는 여러 작곡가들은 아이들의 개인 취향이 되어 쇼팽파, 베토벤파, 모차르트파, 나처럼 갑자기 드뷔시와 라벨, 가브리엘 포레의 인상주의파로 정착한 애들로 나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야나체크 '신포니에타'
무라카미 하루키가 조지 오웰의 <1984>를 모티브로 쓴 소설 1Q84. 기이하게도 나는 3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2→ 1→ 3→ 이란 괴기한 순서로 돌았다. 그러다보니 조금 늦게 아오마메가 택시에 앉아 야나체크의 곡을 듣는다는 설정을 뒤늦게 맞이했다.
야나체크는 한국에서 참 생소한 작곡가이다. 체코라는 동유럽도 멀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익숙한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 작곡가가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체코는 프라하,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뿐이기 때문에 야나체크는 매우 생소했다. 장엄한 그 곡을 듣다보면 이 곳이 패럴렐 월드일까 본 세상일까 의문을 갖게 하는 곡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코드 가게에서 일을 했기 때문일까. 그는 소설에 등장시키는 곡 하나하나에 다 정성을 다한다. 매번 주인공의 서사에 맞는 클래식이다.
최근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는 야나체크가 아닌 오페라까지 등장한다. 그의 클래식 지식은 어디까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