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기숙사생이던 시절이여
나 이래보아도 좀 어리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 청산 시기가 얼마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취는 모든 모험의 시작이다. 맨날 부챗살이나 대패 하나 사다가 굽굽 구워 덮밥 해먹고 계란 톡 까서 굴소스에 볶아 먹는다.
왜 부챗살, 대패인지 아는가? 얇아서 굽기가 쉽다. 요리 못 하는 요알못은 돼지고기를 사면 안 된다. 시뻘겋게 레어 초레어로 먹다가 식중독에 걸릴지도!
그래도 내가 살림력이 좀 있는 부분은 대파는 사다가 동그랗게 하나 길다랗게 하나 썰어서 얼려두고 쓸 때마다 꺼내 파기름을 낸다. 청소하는 것도 좋아해서 쓰레기 처리나 음식물 쓰레기에 연연하지 않고 바로바로 버리는 편. 이런 나, 좀 자랑스러워요.
자취의 밥은 대충 이렇게 굴러간다. 가끔 백종원 유튜브를 보고 꽂혀 순두부 찌개를 끓여도 양 조절에 실패해 두 끼 먹고 다 버려버리고, 엄마가 보내준 진미채, 양념깻잎은 물릴 때까지 밥에 올려먹다가 ‘이젠 반찬가게에서 사먹을게 엄마’ 하고 우는 소리나 한다.
아 과일이 제일 큰 문제다. 기숙사생일 때는 과일은 꿈도 못 꿔서 가끔 마트 들려다 음식물 쓰레기 안 나오는 체리 정도만 사먹었는데 자취는 냉장고가 있잖아요? 수박을 사모으기 시작하는 거예요. 수박 킬러거든요. 근데 이게 껍데기 하나, 씨 하나가 다 버리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샤인 머스캣으로 갈아탔죠. 근데 비싸더라구요? 그래서 값 싼 애플청포도로… 흑흑
그리고 과일은 양이 많다는 사실을 자취하고야 알았다. 이걸, 어떻게 다 먹지?? 수박 1/3통을 샀는데 너무 많아 썰어 그릇에 담고 밀폐 용기에 담고 냉장고에 또 넣어두고 지금 먹고 이따 먹고… 흑흑
자취밥의 마무리는 커피. 집에서는 커피 그라인더가 있어서 내려 마시거나 맥심 원두에다 설탕 타서 얼음 자글자글 넣어 마셨는데 자취는 원두 한 통 사서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부터 하고 있다. 집 앞이 카페라 자꾸 들려서 바닐라 카페라떼만 마시고. 돈은 마시는 재미에 퐁퐁 나간다.
친구가 사놓고 간 편의점 커피,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고 밖에서 커피 사주는 사람 있으면 온 마음을 다 주고 싶어져요. 사랑해요… 들령ㅅ? 사랑한다고!
내일은 또 뭐 먹을까? 일단 냉장고에 남은 대패부터 다 먹고 생쌀을 쿠쿠에 넣어 고슬고슬 지은 다음 생각해보련다. 냉장고 털이범, 요알못 자취생의 죄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