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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린 Apr 21. 2022

미어지는 미어캣

석조

 그는 감이 좋았다.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건 피로한 일이었다. 살아있으므로 해야 하는 모든 업무에 ‘모른척하기’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직종을 골랐다. 그는 자신의 이성적임을 사랑했다.

세상도 이성적인 사람을 사랑했으므로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작업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낡고 넓은 싸구려 카페에서 작업했던 터라, 좁고 비싼 신축건물이 당최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카페에 들러 자주 트는 노래들을 훔쳤다. 주로 요즘 유행하는 솔로 아이돌의 노래였다. 그는 말장난을 많이 섞어 경쾌한 박자의 자작곡들을 쫙 내려받았다.

 그 솔로 아이돌은 인기가 아주 많아서 아무리 세상에 관심 없는 그라도 큼직한 소식들은 알 수 있었다. 신곡이 나오면 소속사에서 대대적인 광고를 해줬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새로운 노래들을 반복재생 할 수 있었다. 그는 유일한 작업실 동료인 아이돌의 본명은 모르지만, 아이돌의 영혼이 죽어감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 너무 이입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나 조금씩 영혼을 갉아먹고 있고, 만고 쓸데없는 게 연예인 걱정이라니까.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돌과 소속사 사이에 불화설이 났다. 역시 내 감이 맞았군. 그는 조금 불쾌해하며 아이돌의 기자회견 영상을 보았다. 내내 대외용 무표정을 짓고 있던 아이돌의 얼굴이 무너졌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 사진과 머리말이 정해졌을 때, 그는 자신이 이 아이돌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으니까.

 <아이돌 소속사 불화 아이돌 캣(CaT), 이제야 캣(kat)으로 활동할래요>

 ‘이제야’? 왜 ‘이제야’지? 그는 얄팍한 기사 전문을 건너뛰고 댓글을 살폈다. 언젠가부터 kat으로 활동하고 싶었는데, 소속사가 강하게 반대한 눈치였다. 고양이의 CaT이 아닌 Meerkat의 kat이라고. 다들 캣의 인상은 고양이가 아닌 미어캣이라고, 조그맣고 연약하고 특이해서 어울린다며 지금이라도 바뀐 게 다행이라 했다. 모든 사람이 축배를 들었다. 그는 무서웠다. 이게 축하할 일인가?

 그는 캣의 모든 영상을 보았다. 그의 머릿속은 캣으로 가득 찼다. 캣이 다시 기자회견을 여는 상상, ‘미어캣’에서 활동명을 따온 이유는 여태까지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이라고, 늘 해왔던 말장난으로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지금까지 가사와 행동을 보면 모르겠냐고 실토하는 상상. 그리고, 그리고 그를 단상 위로 부른 다음 이 사람만이 나를 알아줬노라고 말하는 상상.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상상이 감인지 억측인지는 나중 문제였다. 캣은 너무 많은 인파 가운데 있었고, 너무 유명인이었고, 그래서 너무 다가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캣의 영혼을 살릴 방법을 앎에도 불구하고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캣은 조용히 복귀했다. 그는 단비를 맞듯 허겁지겁 음원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웃었다. 그의 작업실에 우리는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내용의 곡이 울려 퍼졌다. 캣은 그가 알려주려던 해결책을 이미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캣의 곡명은 <가지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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