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May 13. 2024

고장 난 조명과 인간관계

 고장 난 조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지금 이 모습이 인간관계와 같다고.


 방 안에 조명이 하나 있는데, 이 조명은 리모컨을 이용해서 밝기를 조절하고, 껐다 켰다가 할 수 있다. 그런데 리모컨이 고장 나자 조명은 켜지긴 하지만 그 전과 같이 밝기를 조절할 수 없게 되었고 어둡다고 느껴질 때 더 밝게 할 수도, 밝다고 느껴질 때 더 어둡게 할 수도 없게 됐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인간관계와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위해 힘들 땐 위로하고 기쁠 땐 같이 기뻐하며 배려하곤 했지만 그 관계에서 한쪽의 마음이 닳기 시작하니까 어딘가 고장 나기 시작하고 결국 그 관계는 유지는 하고 있지만 배려는 없는, 켜져는 있지만 어딘가 불편한 조명처럼 버리자니 필요하고 가지고 있자니 쓸모없는 애매하고도 처치 곤란인.


 잘 사용하지 않게 되는 그 물건은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낫다. 쟁여두고 있다고 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엔 짐이 되어버리는 내 마음속의 스트레스니까. 사람 관계가 물건처럼 쉽게 버리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관계를 계속 짐처럼 쌓아두고 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나는 원래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항상 쌓아두는 성격이었는데, 그래서 방안이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 차있다. 이 물건들이 방의 주인이 되어버린 주객전도의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음먹고 날을 잡아 물건들을 정리하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고 나면 그동안 왜 이것들을 쌓아두고 버리지 못했을까 싶고 속이 다 시원하다. 결과적으로 이 물건들은 언제가 쓰겠지 하며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언제 가는 오지 않았고 버리고 나서도 쓸모를 찾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들 또한 옛날부터 친구여서, 다른 친구들과 엮여있어서, 그래도 친구니까, 함께한 추억이 많으니까 라는 이유들로 고장 났지만 언젠가 좋아지겠지 다시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이어간다면 그 관계는 내 마음속 방안에 필요 없지만 필요할 것 같다며 잔뜩 쌓아둔 짐과 같아질 것이다. 진짜 필요하고 진짜 소중한 나의 인연들이, 그리고 내가 있을 자리가 위협받는 것이다. 짐이 가득 쌓인 방안에서는 온전한 쉼과 휴식이 불가능하듯이 이런 관계들이 가득한 나는, 정신이 쉴 수가 없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조명이 오랫동안 사용해서 편하고 좋은 것 같지만 다른 조명을 사서 써보면 그전보다 더 편하고 좋을 수 있는데 고장 난 조명을 계속해서 끌어안고 있을 필요는 없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알바 연대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