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인간과 9개월 동거 소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꼬마인간이 우리 부부와 함께 산지 어느덧 9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을까.
가장 큰 변화는 이 꼬마인간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영화에서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과 다름없다는 대사가 나온다. 요즘의 나는 너무나 행복해서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혹여나 이 꼬마인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지 꽤나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다.
두 번째는 부모님에 대한 감정 변화이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경상북도 출신이시다. 아빠의 자식사랑은 의외로 어릴 때부터 학창 시절까지 간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엄마에 대해서는 물음표였다. 엄마와 일상을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엄마의 사랑은 함께한 시간 속에서 희석되어 버린 것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꼬마인간을 대하는 나의 부모님을 보면서, 내가 꼬마인간일 때 우리 엄마아빠가 저렇게 다정한 눈빛과 웃음으로 사랑과 정성을 잔뜩 쏟아부었겠구나 느끼게 되었다.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던 시절의 모습으로 기억하게 된다는데(그래서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나 보다) 우리 부모님에게는 30줄에 들어선 나도 꼬마인간으로 보일까 싶다.
세 번째는 인간 발달 과정에 대해 알게 된 것. 이 꼬마인간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나로 성장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일단 발달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내 최초의 기억은 겨우 유치원 때 정도니까. 하지만 꼬마인간의 성장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목 가누기> 뒤집기> 되집기> 배밀이> 앉기> 잡고 서기> 걷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너무나 경이로워서 얘가 내가 알던(24시간 누워만 있던) 그 아기가 맞나 싶다. 나름 이과 출신으로서 이러한 놀라운 과정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지막으로 인구수를 1 늘림으로써 인류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뿌듯함에 자존감이 조금 올라갔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내가 한 인간을 세상에 나오게 했다니! 출산 전에는 정말 공감이 안 되는 말이었지만 정말 아기를 낳은 것은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이다(으쓱). 나 역시 임신&출산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직접 경험해 보니 정말 말잇못. 이와 더불어 인류애도 상승했다. 내 자식 키워보니 알겠더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란 것을.
그 외 지지부진한 남편과의 다툼, 끝없는 집안일, 상당한 육아비용 등이 있지만... 어쨌든 아기 낳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