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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Jun 02. 2020

누군가 말이 어눌해진다면.

부제; 행,불행은 받아들이는 이가 결정하는 것.



 서글프지만 반가운 얼굴이었다. 낯익지만, 낯선 얼굴이었다. 그 환자분의 얼굴은 가뭄에 말라버린 무엇처럼, 반쪽이 되어있었다.

 작년 가을이었다.  

“원장님, 원장님이 해 주신 임플란트가 아무래도 문제인 것 같아요. 입 천장쪽에 곰팡이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자꾸들어요.”

 나를 보는 눈빛에 원망이 전해진다.

“잘한다는 유명한 삼거리 이비인후과로 먼저 갔어요. 나는 입안에 곰팡이가 생긴 것 같다고 했고, 그 원장님도 임플란트때문에 입안에 곰팡이가 있는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6개월을 약을 지어먹어도 낫지 않았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더 이상 해줄게 없대요. 그래서 원장님께 한번 찾아와봤습니다. 왜 이런건가요?”

“증상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내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난 6개월간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네, 입 안 전체에 곰팡이가 생긴 것처럼 간지럽고요. 말을 하면 혀가 어눌해요. 발음도 잘 안되구요. 또 이야기하려다보면 단어가 잘 생각이 안납니다. 임플란트는 벌써 수년전.. 아주 오래전에 한 것인데요. 요즘 왜 이럴까요?”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간다. '뇌의 일부에 문제가 생기면 이럴 수가 있지.'

"얼른 대학병원에 가셔서 진단 받아보세요. 아니면 다행이지만, 뇌질환일수가 있어요. 제발 서둘러 가보세요."

 그러고는 얼마 후, 환자분과 근심어린 표정의 아내분이 찾아오셨다. 뇌수막종 진단. 며칠 후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신다고 한다. 그 경황없는 와중에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오셨다. 치과 상담실에서 눈물을 훔치면서 두 분이 그렇게 수술을 서둘러 받으러가셨다. 그러고는 오늘 얼굴이 반쪽이 되어서 나타나신 것이다. 수술은 잘 되었다한다.큰 불행이 찾아왔지만, 표정은 좋으셨다. 운없는 일이 운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계신 듯 했다. 행,불행은  나의 마음과 태도가 결정하는 것이지, 이미 결정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원장님 감사합니다. 수술후에 재활하는 곳에 가보니, 대소변 받아내고, 못일어나는 분들도 많은데, 그중에서 제가 제일 건강합니다. 원장님 덕에 일찍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말을 하는데 또 눈물이 나네요.”


 옆의 아내분도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시며 눈물을 훔치신다. 아마 내 말이 표지판처럼 방향을 알려주었기 때문인가 보다. 대기실에서는 멀쩡하시다가도 들어와서 나를 보면 눈물을 흘리신다. 이렇게 찾아와 수술 경과보고도 해주시고 인사도 해주시니 나로써도 보람있고 엎드려 감사할 일이다.

  내가 죽기전까지 천 명의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여야겠다고 나 스스로 결심한 것이 느슨해 질 때 즈음, 신은 내게 또 이렇게 다그친다.

 ‘그것을 잊고 지내었느냐?’

 하고 내 어깨를 잡아 흔든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별 것이 없구나 하고 허망해 질 때 즈음, 그래도 나도 자기효능감을 느끼면서 아직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게 이렇게 고마운 환자분께서 일깨워주신다. 내가 나의 이번 삶에 부여할 의미는, 내 삶으로 인해 세상이 1mm 만큼이라도 더 나아지는 것이다. 무력한 삶이지만,  남은 날들을 각성한다면 가능할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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