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T 점수, 오르긴 하나요?
멘토링 하는 대학생 친구들한테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질문이다. "리트 공부 어떻게 하나요? 리트 점수 오르긴 하나요?"
나도 로스쿨 지원을 결심할 당시 내 상태가 어떤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리트시험을 봤다. 법학'적성'시험이라고 하니, 내 '적성'에 맞으면 어느 정도 점수가 나올 것이고, 택도 없는(?) 점수가 나온다면 '적성'에 안 맞는 것 아니겠는가. 공개된 기출문제를 가지고 자체적으로 모의시험을 봐도 됐지만, 혼자 풀면 시험장에서의 느낌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기출문제라도 풀어보고 시험을 볼까 하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을 봐야 내 '적성'에 맞는 시험인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험 유형도 시험 시간도 모른 채로 한 번 시험을 보기로 했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
표준점수 114.3점이었다. 2019년도부터 표준점수 환산방식이 바뀌었는데 당시 점수로는 원하는 로스쿨은 아니지만 일단 로스쿨에는 진학이 가능한 정도의 점수였다. 사실 딱히 공부할 알맹이가 없는 시험이다 보니 공부해서 리트 성적이 오를 수 있는가에 대해 논쟁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제대로 된 방법으로 공부하기만 하면 공부해서 오르지 않는 시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직접 시험을 봐 보니 공부하면 충분히 성적이 오를 수 있는 시험 같았기에 본격적으로 로스쿨 준비를 하기로 했다.
리트 수험 기간은 약 5개월로 정했다. 이후 변호사시험과 관련된 글에서도 다루겠지만 수험을 목표로 하는 내 공부법은 해당 학문에 대한 기본기를 다지는 것과 시험 스킬을 익히는 것으로 나뉜다. 그런데 리트는 기본기를 다질만한 내용이 없는 시험이어서 (1학년부터 꾸준히 관련 지식을 폭넓게 공부하며 준비한다든지) 몇 년간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게 아닌 이상 수험기간을 더 길게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트 공부를 하다 보면 실체가 없는 공부 같다는 생각도 든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시험 스킬만 익히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수험기간으로도 성적을 올릴 수 있기도 하다.
결론 먼저 얘기하자면 성적이 올랐다.
당시 표준점수로는 114.3점에서 139.2점으로 성적이 올랐다. 2019년에 치러진 2020학년도 시험부터는 언어이해에는 0.9의 가중치를, 추리논증에는 1.2의 가중치를 각각 부여하는 방법으로 표준점수 산출방식이 변경되었는데, 백분위에 따라 현재의 표준점수 산출방식으로 환산해보면 약 122점에서 약 147점으로 점수가 올랐다. (표준점수 환산표는 다음 참조. 2009~2021 전개년 LEET(법학적성시험) 원점수 표준점수 백분위 환산표 모음 :: 유년기의 끝 (tistory.com)
나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리트 시험 스킬을 익혔다.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나에게 맞는 시험전략을 세우고, 시험 연습을 했다. 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각 영역별로 하나씩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학교 내에서 스터디를 짜서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죄다 풀어보았다. 굳이 학원을 다닐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인터넷 강의면 충분하다고 본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 초반에 시험 유형을 파악하는 데 드는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고, 틀린 문제에 대한 해설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 몇몇 기출 유형에 대한 풀이법을 배울 수도 있으므로 시험에 대한 틀을 잡는 데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반복해서 이야기했다시피 리트라는 시험이 어떠한 학문을 이해하고 습득해서 보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시험에 대해 분석하지 않으면 강사가 하는 말은 겉돌 뿐이다. 지금 틀린 문제를 강사의 해설로 이해하더라도 자신이 직접 익히지 않으면 실제 시험에 나오는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풀 수가 없다. 내가 했던 구체적인 리트 준비는 다음과 같다.
1. 기출문제 분석
(1) 나는 우선 실제 시험과 같이 시간제한을 두고 1회 기출문제를 풀고, 달력에 날짜와 점수를 기록했다. 채점 후에는 시간제한을 두지 않고 그 문제가 완벽히 이해될 때까지 문제를 풀었다. 정답을 맞힌 문제라고 하더라도 인터넷 강의 기출 해설과 비교해서 내가 놓친 부분이 하나라도 있으면 모두 오답노트에 기재했다. 그 후에 2회 기출문제를 풀고 위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2) 모든 기출문제를 다 푼 다음에는 오답노트로 정리한 문제들만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다시 1회 기출문제부터 시간제한을 두고 풀고 날짜와 점수를 기록했다. 답이 기억이 나더라도 풀이가 정확하지 않으면 틀린 문제로 체크하고, 모든 기출문제에서 틀린 문제가 하나도 없을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했다.
(3) 모든 기출문제를 시간 안에 풀이까지 정확하게 맞춘 다음에는 각 회차의 문제들을 하나씩 따로 떼서 '개인 맞춤형'으로 유형을 정리했다. 물론 인터넷 강의에서도 유형을 정리해주지만 내가 직접 분석하고 정리하면 시험 전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시험이 어떤 유형의 문제들로 구성이 되는지 눈에 보이고, 문제별로 어떻게 강약 조절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어떤 문제는 내가 100퍼센트 이해하고 풀어야 답을 맞힐 수 있고, 어떤 문제는 내가 80퍼센트만 이해해도 답을 맞힐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리트 시험은 시간이 매우 부족하므로 강약 조절을 하며 각 문제별로 소요되는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 시험전략 수립
시험 한 두 달 전에는 나름의 목표 점수를 설정했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기출문제 점수의 추이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고, 인터넷 강의 모의고사를 통해서도 내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다. 리트는 고등학교 중간고사와 같이 만점을 목표로 하는 시험이 아니고, 시험 시간도 매우 부족하다. 목표하는 점수에 따라 시험 전략도 달라지기 때문에 목표 점수 설정은 꼭 필요하다.
2021학년도 13회 리트를 기준으로 보면 언어이해는 5문제를 틀려도 백분위가 99.4였다. 30문제 중 25문제만 맞춰도 상위 0.6%라는 것이다. 30문제 중 21문제만 맞춰도 백분위 92.1로 상위 10% 이내에 들 수 있다. 추리논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5문제를 틀려도 상위 1.1%이고, 10문제를 틀려도 상위 10% 이내에 들 수 있었다. 아주 특출 난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리트에서 시간 안에 모든 문제를 제대로 풀겠다는 것은 좋은 전략은 아니다.
나는 언어이해보다는 추리논증에서 점수가 더 잘 나오는 편이었다. 언어이해에서는 상위 10% 정도를 목표로 했기에, 당시 기준 35문항 중 10개 정도를 틀리기로(?) 했다. 잘 모르겠는 문제나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문제 10개는 과감히 스킵했다. 평소에 기피하던 분야의 지문이 나오는 경우에는 해당 지문과 문제를 통째로 스킵했다. 그럼 사실상 25문제만 푼 것이기에 시간이 남고, 남은 시간에는 스킵한 문제 중 머리에 잘 들어오는 것부터 차례로 풀고 진짜로 손도 못 댄 나머지는 5초 인상설에 따라 찍었다. 목표 점수를 설정한 후로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시험 연습을 했다. 그렇게 하면 직접 푼 문제 중에 몇 개 틀리고, 나중에 푼 문제 중제 한 두 개 맞고, 운 좋게 찍은 문제 중에 하나 정도 맞기도 한다.
추리논증의 경우 고득점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에 언어이해보다는 타이트하게 3문제 정도만 스킵하고 나머지는 풀기로 했다. 언어이해의 경우 하나의 지문과 3개의 문제가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지문을 읽으면 3문제 중 스킵하는 문제가 있더라도 나머지 문제는 풀 수 있다. 그런데 추리논증은 한 문제 한 문제가 독립적이기에 하나의 지문과 보기를 읽으면 그 문제만 풀 수 있다. 지문과 보기를 읽고 스킵하게 되면 이에 소요되는 시간은 그냥 버려지는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도 복잡해서 풀다가 어렵다고 별표 쳐놓고 다시 돌아와서 보면 또 한 번 읽으면서 시간을 소요해야 한다. 따라서 추리논증의 경우에는 딱 봐도 끝판왕처럼 보이는 3문제 정도만 스킵하고 나머지 문제는 순서대로 다 푸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런 식으로 목표 점수를 설정한 후 자기에게 맞는 시험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시험 스킬이라는 게 별게 없다.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실현 가능한 최선의 시험전략을 찾으면 된다. 나는 이런 방법으로 실제로 목표했던 것과 유사한 정도의 점수를 얻었다.
3. 시험 연습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나는 실제 시험과 같이 시간을 재며 시험전략에 따라 시험을 보는 연습을 많이 했다. 시험전략을 세워도 시험전략을 적용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고,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우직하게 푸는 것만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세운 시험전략대로 시험을 봤을 때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 내가 세운 시험전략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지금의 시험전략대로 시험을 봤을 때 내가 목표한 것과 유사한 점수를 얻을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의 문제를 스킵해야 내가 스킵하려는 개수에 맞출 수 있을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내 시험전략이 내 머리와 손에 익을 때까지 시험 연습을 해야 한다.
문제는 그때는 시험을 볼만한 '문제' 자체가 없었다. 기출문제도 몇 회 없었고, 지금처럼 관련 교재나 모의고사가 쌓이지도 않았다. 학원 모의고사도 많이 없었기에 몇 년 간의 모의고사 문제들을 아껴놓았다가 시험 직전에 연습용으로 실제 시험과 같이 시간을 재 놓고 이틀에 한 번씩 풀었다. 사실 모의고사 문제는 실제 리트에 비해서 정밀도가 떨어지므로 모의고사에서 틀린 문제를 정리하는 것보다는 내가 세운 시험전략을 적용하는 시험 연습용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 낫다.
이것만으로는 시험 연습을 하기 부족했기에 학우들과 스터디를 하며 리트와 유사한 유형의 문제는 죄다 풀었다. PSAT, 미트, 디트는 물론이고 일본 로스쿨 시험 문제까지 풀었다. 사실 위 문제들은 리트와 그 유형이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위 문제들을 풀다 보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고 산으로 가기 일쑤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기출 분석이다.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나면 유사한 시험 중 어떤 문제가 리트에 나올만한 문제이고, 어떤 문제는 리트에는 절대 출제되지 않을 만한 문제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스터디원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함께 풀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만 선별하여 스터디를 진행했었다. 그리고 스터디원들 모두 스카이 로스쿨에 진학했다.
지금은 14회분의 기출문제가 쌓였고, 관련 교재나 모의고사도 방대하게 쌓여 있으므로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내가 사용한 방법이 정답은 아니고, 여러 가지 리트 경험담 중 하나일 뿐이다. 그저 리트 공부가 막연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공부법도 있다고 알려주고, 충분히 리트 점수를 올릴 수 있다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막막한 시험이 부담돼 포기하기엔 법조인은 정말 멋진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멘티 학생에게는 말로 설명하는 대신 이 글을 보내주면 될 것 같다.
로스쿨 입학기를 마치며 붙이는 오늘의 노래는 <버스커버스커 - 벚꽃엔딩>
한참 리트 시험을 준비하는 와중에 전설의 벚꽃엔딩이 발매되었다. 리트는 리트고 이 노래를 들으면서 벚꽃을 보러 가지 않을 수 없다며 이공캠쪽 애기능에 가서 소박하게 벚꽃을 보고 왔다. 리트 준비를 하며 가장 많이 들은 노래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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