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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Jun 30. 2023

너와 나의 작은 성취

- 아이의 리코더

  늘 아이의 알림장엔 과제가 적혀 있다. 그 중 언제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건 ‘리코더 연습’. 그건 아이의 과제이면서 동시에 내 과제이기도 했지만 나는 늘 외면해 왔다. 리코더의 구멍을 제대로 막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아이와 실랑이를 하고, 못하겠다며 내빼는 아이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일에 내가 먼저 지쳤기 때문이다.

  다른 반은 벌써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테스트도 보고, 각자 연습들도 시킨 것 같았으나  우리 아이의 선생님은 언제나 다같이 연주를 시킨다고 했다. 덕분에 아이는 아직 자기 실력을 들키지 않고 잘 묻어가는 모양이었다. 아이는 한번이라도 자기가 내는 리코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까? 집에서는 몇 번 삑삑거리다 싫증난 듯이 한 켠에 치워버리는 리코더인데, 학교에서는 좀 다르게 연습을 해 봤을까? 난 의구심이 일었지만 먼저 연습해 보자고 선뜻 나서지도 못했다. 늘 다 같이 연주를 시킨다는 선생님이 게으르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아이가 저 혼자 내는 소리를 듣는 게 두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이후에 따라올 실망과 절망이 더 두려웠던 거다.


  반 아이들이 모두 쳐다보는 상황에서 빽빽거리기만 하다가, 제대로 연주 한 번 못해보고 들어오는 아이의 모습을 때때로 상상해 보았다. 제각기 흩어져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에 집중되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 눈길 하나하나가 내 몸에 박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럼 급하게 도리질을 치면서도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두려워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리코더 연습이라는 과제가 보일 때면 나는 어김없이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요청할 때까진 책상 높은 곳에 올려진 리코더를 먼저 꺼내주지 않았다. 난 방치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다가오고 말았다. 개별 평가를 한다는 알림이 날아온 것이다. 가장 자신있는 곡 두 개를 연주하기. 이게 나와 아이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남은 기간은 단 4일. 그동안 두 곡을 어찌 연습시켜야 할지 아득해지고 말았다. 남편은 에이, 초등학생 리코더 연주 실력이 다 거기서 거기지, 별 거 있어? 했지만 난 행여 아이가 이 연주로 친구들에게 놀림이라도 받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아이가 고른 곡은 <비행기>와 <나비야>였다. 이 곡은 언뜻 듣기에 굉장히 쉬운 곡이지만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낮은 음으로 이루어져 있어 연주하기에 꽤나 까다로웠다. 그런데 아이가 자꾸 낮은 음이 아닌, 높은 음으로 연주하는 <비행기>가 있다고 말하며 그걸 연주하겠다고 했다. 나와 남편은 악보도 읽을 줄 모르는 아이에게 악보를 들이밀면서 높은 음으로 연주하는 비행기는 없다고 설득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연주하는 것을 봤다고 우겨댔다. 우리 부부는 아이가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아이의 말은 믿으려 들지도 않았다. 아이는 평소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보이는 패턴이 있다. 처음엔 아니라며 소리를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다가 급기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식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우리가 원망스러웠는지 이번에도 그 패턴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나는 낮은 음으로 연주하는 영상을 보여주겠다며 유튜브를 찾기 시작했는데 웬걸, 제일 처음 뜬 영상을 보자마자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정말 높은 음으로만 연주하는 <비행기>가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이가 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봤던 영상도 그것이었다. 이렇게 조금만 찾아보면 아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난 그러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아이의 말을 묵살하고 있었던 거다.

  우리 부부는, 아니 나는 그동안 아이를 믿어주고 지지해 주겠다고 얼마나 많이 다짐해 왔는지 모른다. 심지어 나만큼 노력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자부심까지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한 행동은 어떠한가. 아이 앞에 펼쳐질 가혹한 현실을 혼자서 상상하다가 그걸 외면한 것도 모자라서 아이의 말조차 깡그리 무시하고 묵살했다. 아이가 했던 많은 말과 행동들 중, 무지하고 말도 안 되는 것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엄마인 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못 이기는 척, “그런 게 있었어?”라며 아이가 말한 영상을 찾아보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당연히’ 아이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다른 아이들과 한 데 어울려 있는 우리 아이를 본 적이 있다. 서로 저희들끼리 신나게 떠들던 주제인데도 우리 아이가 말을 하면 다들 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맞는 말을 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도 “난 거기 관심 없는데?”라며 화제를 돌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마다 내가 더 속상해져서는 그 어린 아이들에 대한 원망의 마음도 품었었다. 하지만 그들을 원망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 역시 우리 아이를 그렇게 대하고 있었으니까. '너는 나보다 당연히 잘 모르고 있을 거야' '니가 잘못 알고 있는 걸 거야'라는 생각을 너무나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었던 건 나니까.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거 보라며, 자기 말이 맞지 않냐고 외치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나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리코더를 닦아 아이 입에 물려 주었다.

  

  높은 음으로 <비행기>를 연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그래도 제법 멜로디를 알아들을 수 있는 곡을 비로소 연주해냈다. 그런데 아이는 한번 성공하고 나서는 자꾸 연주를 하다가 중간에 멈춘 채 비실비실 웃어댔다.

  “끝까지 연습해야지, 왜 끊어. 너 이렇게 집중 못할 거야? 왜 자꾸 웃어?”  

  난 아이가 민망할 때마다,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할 때마다 웃었던 것을 떠올리고는 또 다시 아이를 채근했다. 방금 전의 반성을 잊어버리고 또! 그런데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너무 좋아서 그래요. 너무 좋아서. 이렇게 노래가 되는 게 신기해요.”

  아, 놀랍게도 아이는 제 스스로 음다운 음을 내고 멜로디를 이룬 게 정말 처음이었던 거였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제가 제대로 음을 낼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동안 아이들과 함께 입으로 공기를 내보내며 소리를 만드는 그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가 얼마나 혼자 외롭게 고군분투했다가, 절망했다가, 자신감을 잃어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아이는 그 잃어버렸던 소리의 구멍을 비로소 제대로 막을 수 있었던 거였다. 나도 이런 소리를 낼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처음 자신의 귀로 확인했을 때의 감격이 아이의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난 안 되려나 봐. 난 못 해.”

  늘 조금만 노력하고는 이런 말을 일삼는 아이에게 나는 그동안 ‘의지’가 부족하다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재촉하고 다그쳐 왔다. 그러나 그 의지와 노력이라는 것도 아주 작은 ‘성취’나마 느껴본 자에게만 따라온다는 것을 난 잊고 있었다. 한 번도 뭔가를 이뤄낸 경험이 없을 때는 그런 의지마저도 바닥 나 버린다는 것을, 그러니 제대로 된 노력을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 해내는 ‘성취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을 혼자 설정하고 외면하는 동안 아이는 그 성취의 기회를 여러 번 빼앗겼다. 어쩌면 쉽게 주저앉아 버리고, 좌절하는 아이를 만든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높은 음으로 연주하는 <비행기>를 알고 있었듯이 대부분의 경우, 아이는 이미 길을 알고 있다. 나는 그저 그 말을 믿어주고 할 수 있다고 지지해주고 지켜봐 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난 그 중,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연주를 마치고 설레어하던 아이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내가 아이의 말대로 따라주고 믿어주었을 때 아이가 어떤 행복을 느끼는지 그제야 비로소 볼 수 있었다. 아이가 스스로 멜로디를 연주한 게 아이의 '작은 성취'였다면, 아이가 저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해지는 것을 목격하는 일. 그것이 내가 이룬 ‘작은 성취’였다. 이젠 그것을 위한 나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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