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친구
승윤이는 준이와 같은 반 친구이다. 오며 가며 얼굴을 봐 왔고, 승윤이 엄마하고 인사도 하고 지냈지만, 승윤이와 준이가 친해지게 된 건 올해의 일이었다. 지난 번 우리 집에 잠깐 들렀던 승윤이는 현관문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만나서 놀 수 있어?”
눈치를 살피듯 나를 보는 준이에게 승윤이 엄마와 시간을 이야기 해 볼게, 라고만 말해놓고 나는 그 대화를 잊고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헤어지며 의례적으로 건네는 ‘다음에 보자’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들의 고정 멘트. 그러나 그 ‘다음’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는 그런 것.
그런데 오늘 아침 승윤이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이들이 오전 10시에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놀아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늘 정상 발달 아이들 틈에서 준이는 조금씩 비껴 서 있었다. 선뜻 용기내어 아이들이 들어차 있는 원 안으로 들어가도 이미 그곳에 한 자리씩을 차지한 아이들의 힘에 밀려 튕겨져 나오거나, 빽빽한 틈으로 발도 넣어 보지 못한 채 나온 적이 많았다. 그래도 고생 끝에 그 원 안으로 들어가면 이리저리 아이들에게 치이느라 자신의 몸을 양껏 쭉 펴지도 못하고 주눅 들어 있는 것이 보였었다. 그런데 승윤이와는 달랐다. 준이가 뭐라고 말을 하면, 승윤이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승윤이의 요구도 준이는 곧잘 들어주었다. 지금까지 만난 아이들과의 만남이 일방통행이었다면, 이번에는 서로 쌍방통행을 하는 기분이랄까.
나는 늘 그런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엄마가 개입해서 도와주지 않아도 성향이 맞는 저희들끼리 친해져서 서로서로 약속을 정하고 만나서 노는, 지극히 일상적인 루틴. 그런 루틴대로 아이가 친구를 만나고 놀다가 신나고 충만한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말이다. 억지로 내가 다른 학부모의 번호를 따서 연락을 주고 받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아이들이 같이 놀 것을 제안하고, 만남을 성사시키는 기존의 방식은 이제 점점 한계에 봉착하는 중이었다. 아니, 사실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 바로 아이들과의 만남이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의 다른 면을 들키게 되지는 않을까, 그리고 우리 아이와 노는 것을 상대방이 꺼리게 되지는 않을까, 노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가 상처 받을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늘 노심초사해야 하는 만남의 과정이 나에게는 숙제이자 짐이었다. 이제는 아이들도 알기 때문이다. 내 성향에 맞는 친구가 누구인지. 저 친구는 나보다 약한지 강한지. 나보다 모자란지 아닌지. 무시해도 되는지 아닌지.
그런데 오늘 내가 꿈꾸던 일이 일어났다. 아이들끼리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재미있게 놀다 온 것이다.
물론 승윤이도 평범한 아이는 아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우리 아이보다 더 문제가 있어 보이는 유형이고, 같은 반 친구들도 승윤이를 싫어하거나 ‘이상한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운 채 피하고 있었다. 학부모 공개 수업 때 학교에 방문했다가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아이만 신경쓰느라 다른 아이를 볼 겨를이 없었음에도 그 아이는 눈에 띄게 산만하고 착석이 잘 되지 않았다. 앉은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수업에 집중하고 있던 우리 아이 옆에서 승윤이는 자꾸 뒤를 돌아보고, 의자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다가 급기야 의자를 쓰러뜨리기까지 했다.
나에게 글쓰기를 배우고 있으면서 준이와 같은 반인 민준이는 반에서 제일 싫어하는 아이가 승윤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늘 이상한 얼굴로 웃는다고 했다. 자기는 그 표정이 너무 기분 나쁘고 싫단다. 그리고 역시 같은 반 하령이는 나에게 이렇게 묻기도 했다.
“준이랑 승윤이랑 친해요?”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자, 하령이는 검지 손가락을 머리 옆에 두고 빙글빙글 돌리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걔 좀 이상한 앤데. 걔랑 같이 다니면 안 돼요.”
그런 말들을 들어와서인지 나는 옹졸하게도 초반에 우리 아이가 승윤이와 친한 것에 대해 염려를 했다. 혹시라도 우리 아이가 이상해 보이면 어떡하나? 승윤이랑 논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아이가 다른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닐까?
일반 아이들과 어울릴 때마다 남모르게 뒤처지는 준이를 보며 마음 아파 하면서도 나는 내심 우리 아이가 일반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똑같이 문제 있는 아이랑 놀면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일반 아이들로부터 더욱 멀어질까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이중적인 마음인가. 내가 승윤이를 보는 시선이, 일반 아이의 엄마들이 우리 아이를 볼 때의 마음이라 생각하면, 하... 아찔하다.
사회성 선생님은 승윤이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경계성 지능의 아이일 거라고 추측하셨다. 그래서 특수반에서도 아마 그 아이를 받아주지는 못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우리 아이와 같은 ADHD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뭐 확실한 건 알 수 없는 일이다.
준이는 틈만 나면 미니북을 만든다. 자기가 좋아하는 어몽어스와 레고, 베이블레이드를 짬뽕 시킨 만화를 그리고는 나에게 읽어주고 싶다고 갖고 온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가득하고, 이따금 유튜브 영상에서 본 유행어 같은 것들만 잔뜩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내용이 재미도 없었거니와 아이가 그런 데에 시간을 쏟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책을 보여주려고 하면 늘 건성으로 쳐다 보고, 다른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막기 급급했다. 같은 또래 아이들은 준이가 직접 그린 책이라며 보여주기라도 할라치면 눈길도 주지 않고 “나 그거 관심없어.”라고 말하면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기 바빴다. 그쯤에서 멈춰주면 좋으련만, 준이는 눈치도 없이,
“그럼 넌 뭘 좋아해? 니가 좋아하는 거 내가 그려줄게!”
라며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철저히 외면받는 것도 모른 채, 계속 그들 속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준이의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서 나는 더욱 아이가 아무한테도 직접 그린 책을 보여주지 못하도록 막은 것인지도 몰랐다. 준이가 용감하게 시도하면 할수록 그 아이들과 우리 아이가 다르다는 것이 눈 앞에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다.
그런데 승윤이는 달랐다. 우리 아이가 그린 책들을 꼼꼼히 읽어 보더니 이내 다음 권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늘 다른 아이들에게 외면받기 일쑤였던 준이가 다른 책을 요청받고 나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지는 가히 짐작이 된다. 그날 저녁 준이는 다음 날 학교에 가져가겠다며, 승윤이에게 보여줄 다음 권을 열심히, 정성스레 그렸다. 그래서 나는 승윤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이미지가 안 좋거나 경계성 지능 장애라 할지라도, 우리 아이의 책이 가진 가치를 알아봐 주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고마웠다.
여느 때처럼 등교하는 준이를 배웅하며 정원에서 아이를 보던 날이었다. 준이가 걸어가고 있는데 멀리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승윤이었다. 승윤이가 두 팔을 벌리고 달려오자 준이도 두 팔을 벌렸고 두 아이는 뭐가 그렇게 반가운지 서로 껴안더니만 손을 잡고 나란히 학교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꿈꾸던 아이의 모습이었다. 한 명이라도 좋으니, 마음이 통하는 진실된 친구를 얻는 것. 그렇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괜스레 든든하고 힘이 생기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 아이에게 드디어 힘들 때 돌아볼 곳이 생긴 것 같아서, 거절 당하는 두려움 없이 손을 내밀면 잡아줄 따뜻한 손이 생긴 것 같아서 나는 감격스런 마음으로 둘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두 아이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스킨십을 좋아하고 친한 친구 관계에 목말라 하고 있었던 것이 느껴진다. 우리 집에서 잠깐 놀다 가면서도 승윤이는 내내 준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집에 가려고 뒤돌아 섰다가도 다시 와서 손을 부둥켜 잡았다. 아마 그 맞잡은 손에서 우리 아이와 승윤이는 그동안의 외로움을 채우는 무언가를 느꼈던 것 같다. 학교 가는 길에 친구와 마주쳐 반갑게 인사하는 기쁨, 서로 안았을 때의 따뜻한 체온. 함께 공통 관심사를 이야기하는 즐거움,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기대감. 그 모든 것이 아이에게는 새로우면서도 가슴 뿌듯해지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절대 먼저 만들어 줄 수 없다. 저희끼리 마음이 통해야 가능해지는 일이다.
앞으로 점점 가족보다는 친구를 찾는 나이가 되고, 내 품에서 준이가 벗어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다. 그런 시기가 되어도 준이가 여전히 혼자일까봐 두려운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아이의 '다음'을 기약하는 즐거움과 기대감이 생겼다.
- 23년 9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