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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림 Feb 27. 2024

진짜가 가려지는 시간

-  지나보니 코로나 

 “쌤, 저 어제 뭐했는지 알아요?”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인 지수는 어느 날, 눈이 반달이 되어 싱글벙글한 채로 들어왔다. 마스크로 가려져 있지만 입이 귀에 걸린 게 보이는 듯 했다. 지수는 친구 커플과 함께 다른 학교 여학생을 만나 2대 2로 같이 놀았다고 했다. 친구 커플이 주선자가 되어 지수와 그 여학생을 서로에게 소개해 준, 일종의 소개팅 같은 거였던 모양이다. 중학생들의 소개팅은 어른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만나서 무얼 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냥 근처 커피숍에서 같이 음료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다 코인 노래방에 간 게 전부란다. 

  “왜? 밥은 같이 안 먹어? 영화 같은 것도 안 봐?”  

  내 물음이 너무 의외였던지 아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에이, 쌤! 처음 본 사이에 어떻게 밥을 먹어요?”

  그 말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눈만 꿈벅거리며 앉아 있자 지수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밥 먹으려면 마스크를 벗어야 되잖아요. 초면에 어떻게 얼굴을 까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몇 년 동안이나 매일 마스크를 쓰는 것에 아이들이 익숙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부터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밖에 나가면 아주 큰일 나는 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기의 본 얼굴을 보여 주는 것도 금기시 되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 만난 남녀가 서로에 대해 탐색을 하며 조금씩 자신을 드러내듯이 아이들도 눈만 보이는 얼굴을 마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 정도 친해지고 나서야 얼굴을 공개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음료를 마시면서도 마스크는 절대 벗지 않고 마스크 안으로 빨대를 넣어 마셨단다. 케익 같은 건 당연히 먹지 않았고 밥도 두 세 번은 만난 뒤에야 같이 먹는다고 했다. 너무 낯선 풍경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마스크로 계속 얼굴을 가리는 것이 마치 상대방을 속이는 것 같아 그건 너무 거짓된 만남이 아니냐고 물었다. 처음부터 얼굴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다가 나중에 마스크를 벗었는데, 자기가 생각했던 얼굴이 아니면 어떡해?” 

  “그 얼굴이 마음에 들면 사귀는 거고, 아니면 안 만나면 되니까, 그게 사기는 아니죠.”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지수를 보면서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게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진짜 모습은 모른 채, 보이는 이미지만 생각하고 만나다가 그 사람의 실체와 본모습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우리의 반응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 모습의 일부만 보여준다고 해서, 그게 상대방을 속이는 건 아니니 어쩌면 지수의 말이 맞는 것일지도 몰랐다. 첫 만남부터 자신을 열고, 깊은 속까지 모두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가 사기꾼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코로나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이후, 사람들이 하나 둘 마스크를 벗게 되었을 때 한 커뮤니티 카페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올라왔었다. 

  “이제 다들 마스크를 벗을 텐데 걱정이에요. 그동안 상사가 개소리를 시전할 때마다 눈으로는 웃으면서 입으로는 쌍욕을 중얼거렸었는데, 이젠 그걸 못할 거 아니에요.” 

  한여름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일이 갑갑하고 숨이 막혀 괴롭기도 했지만 사실 마스크로부터 보호 받은 것이 꽤 많았다. 마스크가 우리를 적당히 가려주었기 때문에 보기 싫은 사람에게 남몰래 욕을 날릴 수도 있었고, 억지  웃음을 짓지 않아도 되었으며, 굳이 아침마다 귀찮게 화장을 할 필요도 없었다. 환절기마다 절기 행사처럼 치르는 감기에서도 얼마간 자유로웠던 것이 사실이다. 눈만 빼꼼 내민 채, 얼굴의 나머지 부분을 모두 가리고 다닌다는 것이 이 정도로 안도감을 주는지 우리는 미처 몰랐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집합 금지 명령으로 인해 집에 머물게 되면서 나는 오히려 코로나에게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대부분 아이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대부분의 수업이 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이의 남다른 면은 크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었다. 화면 속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아이들이 서로서로 대답을 하겠다고 손을 들고, 큰소리로 떠들면서 이내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되었다. 때로 어떤 아이가 질문과 상관없는 엉뚱한 대답을 함으로써 아이들이 와하하, 하고 웃음이라도 터뜨리는 날엔 우리 아이도 그렇게 주목을 받고 싶어 안달을 내는 모습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면 밖,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말을 하려는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손짓을 하고, 그럼에도 말을 듣지 않으면 서둘러 ‘음소거’ 버튼을 누르곤 했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에게 내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절대 아이에게 직접 터치를 하거나 말을 걸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줌 수업마저도 없어져, 해당 날짜의 영상을 보면 출석을 인정해 주는 방식으로 수업이 바뀌었다. 나로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게 되자, 엄마들은 아이의 사회성을 걱정하며 얼른 집합 금지가 해제되길 바랐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아야 할 시간에 나는 서둘러 아이의 사회성 수업을 신청했고 부지런히 센터를 들락거렸다. 다른 아이들이 집에 있을 때 우리 아이는 너댓 명의 또래들과 센터 교실 안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친구와 어울릴 때의 올바른 행동 지침과 태도 등을 배웠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익숙해졌다 싶으면, 가상의 경우를 만들어 역할극을 진행하기도 했다. 놀이터에서 직접 아이들과 부딪히기 전, 그곳에서의 훈련으로 아이는 일종의 예방 주사를 맞은 셈이었다. 다시 현장 수업이 시작되는 날까지 우리 아이를 조금이라도 평범의 선 가까이에 놓기 위해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적극 활용해야 했다. 

  학교에서 새학기마다 진행하는 총회 모임이나 학부모 참관 수업, 녹색 어머니회 등도 모두 사라졌는데, 덕분에  자연스럽게 엄마들의 모임은 줄어들었다. 누가 우리 아이와 같은 반인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엄마들을 보면서 인사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엄마들의 모임에 나가 다른 아이와 비슷한 학원에 보내고 비슷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연기하지 않아도 됐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으면서도 평범한 아이를 키우는 보통 엄마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러니 다시 학교에 나가게 되는 날까지 조금이라도 더 시간이 유예되길, 그래서 부디 우리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때가 조금이라도 늦춰지길 나는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마냥 모든 것을 감출 수만 있던 것도 아니다.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진실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맘 때쯤 나는 휘문고에 다니는 고3 남학생 은섭이를 가르치고 있었다. 은섭이와의 수업은 한 수학 선생님의 소개로 시작되었는데, 이 선생님은 나랑 같은 재수생을 가르치면서 알게 된 인연이었다. 오랫동안 과외 수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선생님들은 이 일의 자유로움을 즐기면서도 그 생활이 긴 시간 이어졌을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외로움에 힘겨워 하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날 수학 선생님에게 갑자기 연락이 왔을 때 나는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다. 처음 만났던 날, 그동안 쌤을 꼭 만나고 싶었어요, 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고 있던 선생님의 눈이 떠오른다. 무척이나 선하고 따뜻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외로움에 지쳐 있던 건 그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던지 우리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둘은 만나면 주로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이나 수업을 하면서 생기는 고충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은섭이를 소개해 준 후, 그 선생님은 종종 은섭이의 수업 태도에 대해 물어봤는데 은섭이의 수학 등급이 잘 나오지 않아 걱정인 모양이었다. 선생님이 보기에 소위 ‘문과형 아이’인 은섭이는 수학을 가르치면서 벽을 만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선생님이 은섭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업, 살고 있는 집의 자가 여부, 연봉 등을 거의 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 선생님은 내가 어느 정도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자신의 수익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수학이 다른 과목에 비해 조금 단가가 높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 선생님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현재 자신은 월 천만 원 이상의 돈을 벌고 있고, 돈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지금보다 수업료를 올려보라는 조언을 서슴지 않았다. 

  “쌤, 제가 높은 수업료를 받을 수 있는 팁 하나 알려줄까요?”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갑자기 은밀해지는 말투에 나는 조금 흥미가 생기기도 했으나, 딱히 팁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높은 수업료라는 것은 선생님의 능력이나 아이의 성적과 직결되는 것이니, 수업의 질을 높이고 아이 성적을 올리는 것 말고 다른 팁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거랑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높은 수업료가 보장된 집이 있어요. 바로 맞벌이 집이요!” 

  수학 선생님이 말한 소위 ‘비결’은 이것이었다. 맞벌이 부모인 집 아이를 가르치면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된 집이므로 높은 수업료를 부르는 것에 부담이 없고, 자신이 수업하는 내용을 엄마들이 일일이 듣거나 확인하지 않아 아이 성적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도 그걸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수업을 잘 하는지 못 하는지는 다들 아시죠. 눈 앞에 안 보인다고 과연 모르시나요? 아이 문제집이나 수업한 자료만 봐도 딱 답이 나올 텐데.” 

  그러자 수학 선생님은 깔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쌤, 의외로 되게 순진하시다! 엄마들이 그런 거 일일이 확인할 거 같아요? 안 해요오. 은근 허술하다니까요. 엄마들 낌새가 이상하다 싶을 때쯤 전화 상담으로 이야기하면 엄마들은 또 선생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아이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아이의 불성실함이나 성향의 한계 등을 원인으로 짚으며 어머님께 선수를 친하고 했다. 그러면 어머님들은 오히려 선생님에게 아이를 더욱 믿고 맡기며 수업 횟수까지 늘린다고 하니 뭔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수학 선생님이 수업하고 있는 아이들은 모두 어머니들이 전문직에 종사하고 계신 집이거나, 아버님들의 수입이 상당한 집들이었다. 아마도 집에서 계속 아이를 케어하지 못한다는 부모님의 죄책감이 그 선생님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게 아닌가 싶어, 이야기를 듣는 내내 거부감이 들었다. ‘그건 사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차마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그저 입꼬리를 한 쪽으로 올린 채 그런 학부모들을 비웃는 듯 실실거리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선하게만 봤던 선생님의 눈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날 은섭이 수업을 하러 갔는데, 그날따라 아이가 뾰루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말을 걸어도 단답형으로만 대답을 하고, 내 눈을 자꾸 피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어도 수업 분위기가 늘 좋았기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 있나 싶어 염려가 되었다. 그 무렵, 초등학교 교사였던 은섭이 어머님은 늘 일이 바빠 아이를 챙겨주지 못하시다가 코로나로 현장 수업이 줄어들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었다. 그래서 고3인 은섭이와 오히려 부딪히는 일이 많았는데 나는 그 때문인가 싶어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님께 조심스레 무슨 일인지 여쭤 보았다. 그런데 은섭이 어머님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선생님이 우리 은섭이 때문에 많이 속상하셨다면서요. 선생님이 많이 힘들어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은섭이가 좀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은섭이 때문에 힘든 점이 없었다고 거듭 말씀을 드려도 어머니는 믿지 않으셨고 은섭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이냐 여쭤봐도 어머니는 난처한 표정으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셨다. 

  그러다 며칠 뒤, 수학 선생님을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대뜸 요즘 은섭이의 수업 태도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지 않았냐고 물으셨다. 

  “글쎄요. 저랑은 딱히 문제가 없었어서, 더 좋아지거나 그런 건 모르겠고…. 다만, 제가 자기 때문에 힘들어 했다고 오해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은섭이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없는데.”

  그러자 수학 선생님이 마구 깔깔대고 웃으며 그 말은 자기가 한 거였다고 실토를 했다. 은섭이 수업 태도가 너무 안 좋아져서 나를 팔았다는 것이었다. 

  “저는 아이들이 수업 태도가 안 좋아지면, 아이를 바꾸는 방법이 하나 있어요. 바로 제가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애를 쓰는데, 아이들이 그걸 따라오지 못하면 선생으로서 얼마나 속상하고 안타까운지 어필하는 거죠.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면 애들이 또 그거에 마음이 약해지는지 잘 따라오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은섭이를 야단치던 날은 눈물이 안 나오더란다. 허벅지를 꼬집고, 하품을 해 가면서 눈물을 빼려고 애써 봤는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자, 마음이 급해졌단다. 그래서 내가 즉, 국어 선생님이 은섭이가 수업을 잘 따라오지 않아 힘들다고 하시며 울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자기 눈물이 나오지 않자, 내가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아이에게 말함으로써 충격 요법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은섭이와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좋은 분위기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본 6월 모의고사에서도 1등급이 나왔고, 기말고사 대비 글쓰기 수행에서는 만점을 받아 내가 기프티콘 선물까지 주면서 파이팅을 외쳤었다. 그런데 수학 선생님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은섭이가 얼마나 당황스럽고 배신감을 느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사과하세요, 선생님!”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혀 나도 모르게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은섭이뿐 아니라, 사전에 의논 한 마디 없이 나를 함부로 판 것에 대해서도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 아이 수업 태도 개선을 위해 선생으로서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아이 성적을 위해서 선생님도 그 정도는 용납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사전 의논도 없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과 행동으로 거짓말을 해 나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 점, 오히려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점, 그로 인해 은섭이에게 상처를 준 점 등. 그 선생님이 저지른 잘못을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웠는데 선생님은 그것을 모두 ‘아이의 수업 태도 개선’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었다고 잡아 뗐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수학 선생님이 제 입으로는 사실을 말할 것 같지 않아, 직접 어머니께 말씀드리기로 결심했다. 은섭이 수업이 끝난 후 어머님과 단 둘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는데, 어머님은 조금 놀라신 듯 했지만 차분히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제가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으면서 의도치 않게 수업 중에 방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국어 시간엔 은섭이 대답 소리도 곧잘 들리고, 웃음 소리도 들리는데 수학 시간에는 오로지 선생님 소리만 들리더라고요. 그것도… 수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주로 선생님의 사담이었어요. 남자친구와 만났던 이야기라든가, 다른 학생 이야기, 혹은 선생님이 재미있게 본 영화나 책 이야기들이요. 은섭이한테 수업 시간에 대해 물어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원래 선생님이 그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주 하시는지 물어봤죠. 아이는 자기가 문제를 풀고 있는 동안 선생님께서 심심하다며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제가 계속 일을 하느라 밖에 나가 있었다면 알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고민 끝에 수학 선생님께 수업을 잠시 쉬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때 수학 선생님은 아이의 수업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모양이었다. 은섭이가 집중력이 약하고 수학 머리가 없는 ‘문과형 아이’라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요즘 유난히 아이의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아, 수업에 집중을 시키기 위해 그런 사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환기를 시켰던 것이고 그건 순전히 아이의 수업 태도 개선을 위한 자신의 노력이었다고 어필했다. 그러다 내 이야기를 꺼내며 일명 ‘국어 선생님의 눈물 사건’까지 만들어낸 것이었다. 

  결국 수학 선생님과 은섭이의 수업은 정리되었다. 은섭이 어머님은 수학 선생님에게 전후 사정을 알고 있다는 건 알리지 않으셨고, 그저 은섭이가 수학을 너무 힘들어 해서 잠시 쉬겠다고만 하셨다고 한다. 나는 괜히 나 때문에 수학 선생님의 생계에 피해를 준 것은 아닌지 죄책감이 일기도 했지만, 이미 수학 선생님에겐 제2, 제3의 은섭이들이 수두룩했다. 거기서는 또 누구의 이름을 팔면서 위기를 모면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나 역시 수학 선생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코로나는 감기의 일종처럼 익숙한 것이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강박적으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내내 마스크를 쓴 상대의 얼굴만 보다가 벗은 후의 낯선 느낌에 당황하지도 않는다. 학교에서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줌 수업은 진행하지 않으며 아이들은 서로 침을 튀기면서 대화를 나누고 몸의 터치도 자연스럽게 일삼는다. 곳곳의 놀이터도 다시 아이들의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맞벌이 부모들은 여전히 집에 아이만 있는 시간에 진행되는 과외 수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알지 못하고, 학원에서도 그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올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진짜인 듯 아닌 듯, 마스크 속에 감춰두었던 것들을 내 안의 어느 곳에 숨긴 채 사람들을 만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석연찮은 믿음을 갖는다. 진짜 모습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보는 것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끝이 났지만, 내 안에 코로나는 계속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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