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응석 May 16. 2023

[도민시론] 챗봇과 의인화

2023.5.16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영화 ‘중경삼림’에서 실연의 상처를 입은 남자 주인공의 대사다. 그에게 갈수록 작아져 가는 비누와 젖은 수건은 살이 빠지고 눈물에 젖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역할을 연기한 배우 양조위는 인터뷰에서 밝지 않았던 어린 시절 실제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대화(對話)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 받음’이다. 그 대화 상대가 비누, 수건이나 거울에 비친 나처럼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우리는 모두 대상을 의인화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된 ‘챗봇’(대화형 인공지능의 한 종류로 메신저에서 사용자와 소통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내가 던진 말에 적절한 반응까지 한다면 대화한다는 느낌은 더욱 강하게 든다.


사람들은 벽에 던져서 튕겨 나온 공을 받는다고 해서 벽이 내게 공을 던졌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던진 ‘질문’에 챗봇이 관련 정보를 모아서 돌려주면 내게 ‘답’을 했다고 생각한다. 기계와의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그 원리에 대한 ‘논리적 이해’만큼 사람들이 그것을 일반적 대화처럼 여기면서 생기는 ‘정서적 효과’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 의인화 정도의 강화가 다른 문명의 도구들과 달리 챗봇에 대한 의존성이나 경쟁의식 등을 더 쉽고 강하게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영진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챗봇에 대한 폭발적 관심은 채팅이 가지고 있는 의인화 환각에 의한 것임을 지적하며, 기계를 의인화하는 방향으로 서비스가 개발되다 보니 정서적 의존성이나 기능적 의존성 등이 생길 것이라 우려한다. 강민하 번역가는 다른 인터뷰에서 챗봇이 번역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문에 인간이 기계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문제라 말한다. 이건 사람과 기계 중 누가 더 잘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인간과 기계가 서로 다른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출시된 오픈AI의 ‘챗GPT(ChatGPT)’에 이어 지난 10일 구글이 챗봇 ‘바드(Bard)’를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전세계 180개국에서 전면 오픈했다. 이 외에도 중국 바이두의 ‘어니봇’, 네이버의 ‘서치GPT’ 등이 앞으로 챗봇 시장에 참여할 준비 중이다. AI 챗봇 관련 기업들은 기업의 미래를 걸고 그 성능 향상에 힘을 쓰고 있고, 정부 기관이나 학교 및 기업들은 모두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이 깊다. 그 고민의 크기만큼 고민의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것을 보면 항상 정리를 한다. 마치 새로운 책을 사면 책장 어느 부분에 둘지 결정하는 것처럼. 내가 고른 책의 위치는 그 책의 운명이 된다. 다시는 꺼내 보지 않을 수도 있고, 옆에 있는 책들 때문에 다른 느낌의 책이 될 수도 있다. 가끔 어디에 둬야 할지 결정이 어려운 책이 있다. 그런 책은 책장 전체를 훑어보게 한다. 이전에 산 책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하는 것이다. 딩동! 모든 영역에서 관심을 받는 챗봇이 도착했다. 이제 챗봇에 질문이 아니라 한번쯤 답을 할 시간이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매거진의 이전글 [도민시론] 공감할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