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14
저는 아침을 커피 한 잔과 함께 시작합니다. 가끔 제자들과 함께 마시기 위해 여러 잔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카페에서 컵마다 음료의 종류를 펜으로 써주거나 스티커를 붙여서 구분해줍니다. 컵이 불투명하니 내용물을 알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대중에게 사건사고를 전하던 이전의 신문이나 뉴스들이 이런 불투명한 컵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사건사고를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그들의 말을 믿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뉴미디어의 발달로 대중들이 사건을 실시간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미디어는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뉴스의 ‘즉시 접속성’과 ‘투명성’은 사건 관련자들이 빠르게 입장을 표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뉴스가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사건 당사자들의 늦장 대응은 이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다수 대중에게 더 느리게 느껴지고 무책임하다는 부정적 여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과는 빨라야 하고 그 표현양식은 신중해야 합니다.
얼마 전 이태원에서 너무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슬퍼하기도 전에 정부는 ‘참사’와 ‘희생자’라는 말 대신 ‘사고’와 ‘사망자’라는 이름을 고착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외신 회견에서 국무총리도 사고라는 뜻의 ‘incident’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국민 다수가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외신도 참사를 뜻하는 ‘disaster’로 보도하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및 한겨레 등 일간지의 중문판 기사도 모두 참사라는 뜻의 ‘ ’을 사용하는 데 정부만 다른 프레임을 구축하려 하는 모습이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및 국민 정서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는 것만 보여준 꼴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사망자’는 ‘죽은 사람’이고, ‘희생자’는 ‘희생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 해석을 의미적으로 보면 전자는 독립적이지만 후자는 관계적이라 원인이 강조됩니다. 그래서인지 법을 잘 아는 판검사 출신 대통령과 관료들이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뉘앙스를 피하기 위해 해당 용어를 피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 큰 문제입니다. 정부와 국민의 관계에 법정 은유를 사용하면 그것이 가져올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같은 아픔이 이후에 재발하지 않으려면 먼저 사고의 원인을 분명히 규명하고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데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호와 정재승의 ‘쿨하게 사과하라’에서는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순간 법적 대가를 치르는 ‘법정의 논리’ 때문에 기업이나 정부가 어떤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고 나면 자신을 방어할 논리를 찾는 데 집중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론의 논리’도 고려해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론은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자세를 통해 누그러지기 때문입니다. 국정 지지율이 이렇게 낮은데도 정부가 여전히 ‘여론의 논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미래가 밝지 않습니다.
더 늦기 전에 공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