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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ice 유니스 Dec 05. 2023

활옷에서 어미의 마음을 읽다.


BTS의 RM이 후원했다고 해서 기사화된 국립고궁박물관의 <활옷> 전시회에 다녀왔다.


활옷은 조선의 공주, 옹주의 혼례복으로, 붉은 비단에 각종 무늬가 한가득 수놓아진 ‘홍장삼’이 활옷의 기원이다. 조선왕실 혼례복을 정확히 구분하면 왕비와 왕세자빈의 혼례복은 ‘적의’이고, 공주와 옹주의 혼례복은 ‘홍장삼’이다.

조선은 신분에 따라 입을 수 있는 옷의 색이나 직물, 장식 등을 엄격히 규제한 사회였으나, 혼례식만큼은 자신의 신분보다 높은 예를 적용할 수 있도록 허하였기에 홍장삼은 민간에까지 전해져 어느 시점부터는 활옷이라 불리게 되었다.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활옷을 보고 있노라면 옷의 앞, 뒤, 소매할 것 없이 빼곡히 자수되어 있는 문양의 화려함에 일단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벌린체 가까이 다가가 빼곡하고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수 놓인 자수 문양의 의미를 살펴보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부부의 화합을 의미하는 봉황, 부귀를 의미하는 모란, 번영과 자손번창을 의미하는 연꽃, 머리카락이 희어질 때까지 해로하기를 기원하는 백로, 변치 않는 부부의 사랑을 염원하는 괴석, 장수를 의미하는 물결,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석류, 부부의 사랑을 의미하는 나비, 불로장생을 의미하는 복숭아, 사군자이면서 장수를 상징하는 매화와 국화, 자손 중에서도 특별히 아들 낳기를 염원하는 동자무늬, ‘남녀의 결합은 만복의 기원’이라는 ‘이성지합 만복지원’의 문자문 등등… 온갖 길상무늬들로 가득하다.


더욱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활옷의 사이즈가 모두 한결같이 작다는 것이었다.

조선시대는 현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수명이 짧은 시대였기에 여성의 경우 평균 15-16세에 결혼을 했고, 현대인보다 체격도 작았기에 현대 기준으로 하면 초등학교 5-6학년 여아의 사이즈정도였다.


그 작은 옷에 온갖 길상무늬들로 빼곡히 가득 찬 붉은 활옷을 보고 있노라니 어린 자녀를 시집보내는 어미의 마음이 읽혀져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눈에는 활옷에 새겨진 무늬들이 어미가 시집가는 어린아이에게 꾹꾹 눌러쓰는 축복의 편지, 당부의 편지로 보여 글자들로 읽히는 듯했다.

어쩌면 어미의 따스한 품을 떠나 험난한 세상 속으로 아이를 떠나보내며 신께 아이의 안위를 부탁하는 기도문이기도 하겠다.

내가 매일 아침 두 딸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그 마음과 같으리라.


비록 공주와 옹주의 홍장삼은 상의원에서 만들었겠지만 자식을 떠나보내는 어미의 마음만큼은 울컥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훔치며 한 땀 한 땀 수 놓았을 민가의 어미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어미들의 사랑과 염원과 기도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온 우주를 가득 메우고 있다.



 

#RM후원

#무료전시

#국립고궁박물관

#활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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