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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원 Jun 29. 2024

마당이 있는 집에 고양이도 산다.

17살, 우리 집 묘르신

나는 아파트보다 주택을 좋아한다. 

내가 마당이 있는 곳에서 살았고 좋았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마당이 있는 곳에서 컸으면 했다.

마당은 비단, 아이들 뿐 아니라 고양이에게도 좋다. 


17년을 함께 산 나의 고양이는 산책하는 고양이다.

보통 저녁에 집사들에게 문을 좀 열어달라고 야옹한다.

문을 열어주면 30분 정도 산책을 하고 돌아와 문 앞에서 야옹한다.

도대체 혼자 뭘 하고 다니는지 매우 궁금하지만 17년이란 세월이 믿음을 주기에 그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오랜 기간 어느 동네 어느 집을 가도 항상 그래왔다. 다들 어떻게 그렇게 집을 찾아오냐고 했는데 나도 신기하다. 심지어 해외살이도 했었는데 돌아왔다. 중국에서 잠시 살 때였는데 그땐 한두 번 나갔다 오더니 뭐가 맘에 안 들었나 중국에서는 산책을 자주 하지는 않았었다. 3년 정도 살다 한국에 돌아오니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기준이 뭐냐. 


젊으시던 시절에는 슈퍼나 세탁소까지는 함께 다녀오고 정류장 직전까지 배웅도 하고 돌아오곤 했는데 요즘은 인간들 따위와 발맞춰 걷는 게 싫은 건지 혼자 나갔다가 온다. 우리 인간 따위야 묘르신의 의중을 다 알 순 없으니 그냥 서운하지만 존중해 드린다.


처음 만남은 미대 조교를 할 때였다.

  조교실 창고에 쥐가 있는 거 같은데 쥐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던 나는 고양이가 살기만 해도 쥐가 안 올 것이라는 누군가에 조언을 듣고 고양이 카페에서 덜컥 100일도 안된 집고양이 엄마가 낳은 아가를 데려왔다. 

어린 녀석이 얼마나 울던지,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뭐가 불편한가 조바심을 냈었는데 그냥 말이 많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늙어서 말도 줄고, 사고도 안쳐서 한편으로는 짠한 내 새끼다.


17살, 집고양이와 길고양이의 중간쯤이니 사람나이로는 100살쯤 되려나.
고양이를 보고싶은 꼬꼬마들이 종종 방문하기도 한다.
햇살에 뜨끈해진 마당 돌바닥 위에서 뒹굴.
몸의 반절은 햇살을 받고 반절은 그늘 밑에 두고 지나가는 모두를 구경할 수 있는 VIP 관람석

원래는 내가 같은 침대에서 데리고 안고 자던 녀석인데 첫째 출산 후 면역력이 떨어져서 인지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생겨버려서 지금은 각방 생활을 하고 있다. 첫째는 내가 알레르기가 없는 채로 낳아서 괜찮은데 둘째는 내가 알레르기가 생긴 채로 낳았더니 이 녀석도 털알레르기가 있어서 서로 가까이할 수 없는 애틋한 사이다.


공동육아를 하는 고양이 습성으로 엄청 기대했었는데 섣부르게 아기에게 다가서거나 하지는 않았다.

거리를 두고 조금씩 다가오고 귀찮게 좀 해도 우리 애들은 봐준다. 고마운 녀석. 건강하게 사는데 산책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말리진 않는데 가끔은 무리가 될까 좀 걱정도 된다. 어쨌든 오래오래 좀 더 내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내가 면역력이 좋아져서 다시 맘껏 안아줄 때까지 기다려주면 좋겠다.


오늘은 비가 많이 오네. 비가 오면 우리 로이 산책은 어려운데. 창밖만 보며 시간을 보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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