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유성 Sep 03. 2021

도전의 인플레이션

자신의 선택에 불안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를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유행가처럼 퍼진 말이 있다. 도전에는 나이가 없다고. 시작하는 지금이 가장 빠른 때라고. 내가 대학시절부터 간직하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젊은 날의 많은 경험이 삶의 지혜가 되어 어느 시점에 닿으면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도 좋은 선택을 지속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나도 모르는 사이 가치관이 되어 마주한 일의 경중을 판단하고, 선택과 거부의 기준이 되었다.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니 주어진 선택지 속에서 나의 태도는 비슷했고, 결과마저 예상 가능했다. 보이지 않는 이런 기준이 습관이 되어 나를 집어삼키는 괴물이 될 줄 몰랐다.


변변치 않지만 그나마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결혼을 준비하던 때 처가댁과 아내에게 그렇게 미안했다. 당시 나의 경제적 상황은 좋지 않았으며, 정신적인 성숙도 역시 결혼을 연애의 연장선 정도로 생각했을 뿐 그다음의 일은 거의 내다보지 못했다. 당시의 나는 결혼을 삶 속 하나의 도전과제 정도로 생각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잘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만 가득했다.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 퇴보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는 당시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 여러 면에서 나의 능력을 과신하면서 전 직장은 커리어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잠시 지나치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방황을 도전의 일부라고 착각했다.

결혼식을 3개월 앞둔 시점에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다.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급여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도보로 출퇴근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운 것이 장점이었다. 일하면서 이직을 준비하거나 혹은 커리어를 높일 수 있는 공부를 병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결혼식과 신혼여행 등 입사 후 곧바로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내게 지금의 직장은 많은 배려를 제공했다. 그런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1년만 다니겠다고 계획했던 이곳에서 이제 4년 차가 되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고, 모르는 동료가 없을 정도로 이곳에 익숙해졌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려고 불리한 상황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내 커리어로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하며 입사지원서를 꾸준히 넣었지만 서류 및 면접 탈락의 고배를 반복하면서 잡서치와 공부를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언제고 떠날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저조한 업무 의욕에 따른 평가 또한 좋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더 이상 팀에 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시점부터는 지금 회사에서 일을 배우고 인정받아 관련 업종으로 이직하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지금의 직장과 결혼생활이 이어질수록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났고, 유지하기 위해 매달 받는 용돈 같은 급여가 너무 필요했다. 그렇게 지금 상황으로부터 도주하지 않으려고 '월급'이 필요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어느 날 아내는 말했다. 자신이 벌고 있으니 6개월 정도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원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이런 감사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준비하리라 약속하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적당히 남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살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더 나은 일이라는 가능성을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아내에게 더 풍족한 미래를 약속하지 못해 미안했지만 이 길 위에서도 우리는 행복하리라 믿었다. 외출을 삼가고, 집안일을 돕는 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노력했다.


내년 3월에는 입이 하나 늘어난다. 직업과 이직에 대해서 만큼은 아내가 나를 보며 불안해하지 않도록 앞서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 방향을 정했어야 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만족하는 척 아무 일도 없을 거란 거짓된 행동을 했던 스스로가 너무 원망스럽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내와 함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합심해야 할 텐데, 지금 난 가족의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과거 나의 오류로 인한 내적 갈등에 사로잡힌 상태다. 이대로면 나의 마음 상태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결혼하기 전에, 지금 월급에 만족하기 전에, 아이가 생기기 전에 도전할 걸 후회가 된다. 매일같이 '도전의 비용이' 높아지는 줄도 모르고, 나 자신과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시간을 끌고 기만했다. 오늘로 허울뿐인 마음은 잠시 미루고, 계획과 행동의 일치로 불안한 마음을 식혀야겠다.


- 또다시 같은 길을 걷게 되더라도 새롭게 받아들일 용기가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 `21.09.02(목)

작가의 이전글 아내의 품에서 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