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수난 백서 - 1
“쯧쯧,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윤 기사는 숭례문 앞을 지나면서 투덜거렸다. 룸미러로 보이는 국보 1호는 그 위용도, 가치도 전혀 남아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애꿎은 남대문에 불을 지른 늙은이도 그렇지만 그걸 몇 년째 보수하면서 공사비를 떼먹어? 우라질 놈들 같으니….”
윤 기사는 혼자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신세계백화점 쪽으로 차를 몰았다. 용산 국제빌딩 앞에 손님을 내려주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단 한 사람도 택시를 타려는 사람이 없었다.
윤 기사는 사납금조차 맞추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부아가 돋는 중이었다. 다시 둘러봐도 남대문시장 주변에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는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신세계백화점 앞에 차를 대놓고 잠시 오늘 번 수입을 헤아리려는데 백화점에서 여자 손님이 막 나오더니 두리번거리는 게 보인다.
스파게티처럼 파마한 중년의 여자가 끙끙거리며 커다란 짐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윤 기사는 얼른 차를 대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고맙습니다. 마침맞게 택시가 왔네요.”
“하하하, 손님 오실 줄 알고 미리 기다렸지요.”
윤 기사는 제법 큰 포장박스를 트렁크에 싣고는 운전석에 올랐다. 먼저 뒷좌석에 오른 여자가 말끝을 흐린다.
“좀 멀리 가야 하는데….”
“어디든 말씀만 하십쇼.”
어디든 못 가랴. 요즘처럼 손님 태우기가 힘들 때 장거리 승객이야말로 가장 반가운 손님이다.
“대구까지 가야 하는데.”
“대구요?”
윤 기사는 짐짓 곤란하다는 듯 대응하면서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대구는 왕복요금을 주셔야….”
“왕복요금과 통행료를 낼 테니 가능한 한 빨리 좀 가주실 수 있을까요.”
귀부인 티가 나는 여자 손님은 후한 인심을 쓰면서 동시에 서둘러주기를 부탁했다. 그러잖아도 서둘러 다녀와야 교대시간에 맞출 듯싶었다. 윤 기사는 바로 출발해서 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천안휴게소에서 음료수와 햄버거 두 개씩을 사 들고 뒷좌석에 오른 스파게티 파마 아줌마는 햄버거 포장을 반쯤 펼쳐 먹기 좋게 해서 윤 기사에게 권했다.
파마 아줌마의 시댁은 대구 인근의 경산에서 과수원을 하며, 둘째 며느리인 그녀는 남편과 함께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상을 한다고 했다. 오늘 저녁에 대구 G 호텔에서 열리는 시아버지의 팔순 잔치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물건 내보내고 가느라고 늦었지 뭐예요.”
그녀는 먼 길의 운전자가 지루하지 않게끔, 간간이 맑은 웃음소리를 내가며 얘기를 풀어나갔다.
교양과 품위를 적당히 갖춘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윤 기사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차를 몰았다.
경부고속도로는 약간의 정체 구간 말고는 충분히 속도를 낼만큼 여유로웠다. 맑고 쾌청한 초봄 날씨에 노란 개나리 꽃잎이 윤 기사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했다.
- 더도 말고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윤 기사는 오전 내내 손님을 찾아다니느라 스트레스를 받은 사실도 까맣게 잊고 모처럼 여행 떠나는 기분에 젖어들었다.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을 정리한 지 1년, 먹고살 궁리를 하다가 택시 운전을 시작한 게 반년 남짓 된다. 솔직히 단 한 하루도 맘 편한 날이 없었다. 겨우 몇십만 원의 월수입으로 버텨오면서도 달리 방안이 없어 핸들을 놓지 못하고 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학력이나, 크진 않지만 어엿한 중소제조업체의 사장이었다는 이력은 이제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걸 떠벌리는 자체가 제 얼굴에 침 뱉는 것처럼 흉이 되고 만 게 지금의 현실이다.
- 아아, 얼마나 오랫동안 얼굴을 펴지 못하고 살았던가. 또 얼마나 더 찌푸린 하늘을 보며 한숨을 지어야 할 것인가.
윤 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제 얼굴을 흘깃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 모처럼 쌈빡한 기분을 흉한 생각으로 망치지 말자.
“기사님,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지만….”
잠시의 침묵을 깨고 파마 아줌마는 겸연쩍게 웃으며 말을 흐렸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십쇼.”
“기사님은 택시 운전하실 분처럼 보이지 않아서요.”
“택시 운전하는 사람이 따로 있나요,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기사님은 왠지 택시 하곤 어울리지 않아요.”
“좋게 봐주시는 거죠?”
“호호호, 네.”
“작년 초까지 조그맣게 사업을 하다가 홀랑 망했거든요. 하하하!”
“그러셨군요. 무슨 사업을 하셨어요?”
“아웃도어 제품 공장을 했었습니다.”
“아웃도어면?”
“주로 등산복을 생산했어요.”
“어머! 등산복이요?”
파마 아줌마는 몸을 일으키며 반색을 했다.
- 아, 의류 유통이랬지.
윤 기사는 아줌마가 반색하는 이유를 감 잡았다.
“공장을 직접 운영하셨나요?”
“네. 디자인부터 생산에…, 시장개척도 했고요.”
“직접 마케팅도 하셨군요.”
“…….”
“제 남편이 등산의류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전, 더 벌리는 걸 원치 않는데 남편은 자꾸 등산용 제품에 손대고 싶어 안달이더라고요.”
“아, 그러시군요.”
“등산 인구가 천정부지로 늘어나는 데다 부가가치가 무척 높은 편이라면서.”
맞는 말이다. 틀리지 않은 판단이다. 그러나 윤 기사는 다소 톤이 높아진 그녀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제기랄, 그때 부도만 맞지 않았더라도 지금 택시 모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티셔츠와 바지, 조끼와 양말을 생산하는 정도였지만 좀 더 기반이 잡히면 겨울용 파카와 점퍼까지 생산 규모를 넓혀갈 생각이었다.
윤 기사는 지난 일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납품대금으로 받은 수십 장의 어음이 하나같이 휴짓조각이 되어 남아있다. 세상은 자기 혼자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한만큼 얻어지는 게 절대 아님을 윤 기사는 사업을 하며 뼈저리게 깨우쳤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자던 아웃도어 판매업체의 박 사장은 저만 살려고 잠수해버렸다. 3억 원이 넘는 완제품 납품대금을 대손貸損으로 처리하게 하고 해외로 날라버린 것이다.
수년간 의류 원단을 팔아 돈깨나 긁어모았던 김 사장은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싹싹하게 굴며 원단을 공급해주더니 납품처의 낌새가 불안 하자 제일 먼저 공장 기계를 압류했다.
회사 장부는 온통 빨간 줄, 빨간 글씨 투성이었다. 윤 기사, 아니 윤 사장은 돌아버리기 직전에 공장을 처분하고, 폐업신고를 냈다.
다시는 의류에 손대지 않으리라.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업종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침체하였고 앞으로도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먹구름 속에 가려있다시피 했는데 그 먹구름을 뚫고 빛을 보려는 이들은 대개 양두구륙羊頭狗肉의 가면을 쓴 자들이었다.
저 살기 위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의식구조, 사회 전반에 만연된 이기주의. 불황을 더 악화시키는 건 정의의 부재不在였다. 사업가는 없고 장사치만 있었다. 신뢰는 땅에 곤두박질쳤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 그간 비싼 수업료 냈다며 나 자신을 추스르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노숙자 신세가 되어있을지도….
윤 기사는 은근히 파마 아줌마의 화제가 바뀌기를 바랐다. 지난날이 너무 아리다. 아직도 편안하게 들어줄 화두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이 아주머니는 목소리를 더 높였다.
“이거, 저희 매장 명함이거든요. 언제 쉬시는 날 한 번 연락 주실래요.”
남대문 B 상가, 운동복과 작업복에서 점퍼와 코트까지 한눈에 봐도 다양한 의류를 종합적으로 취급하는 도매업체라는 걸 알 수 있다.
“호호! 잘하면 윈윈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기사님도 다시 한번 재기하실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말예요.”
- 윈윈? 재기?
순간 윤 기사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의식했다.
- 내가 다시 택시를 몰지 않고도 살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