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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May 26. 2023

예쁜 것은? 선생니임!

마흔일곱도 예쁠 수 있다.

초등학교로 책놀이 특강을 나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이다.

물론 기가 쭉쭉 빨릴 때도 있다. 하지만 고갈된 에너지를  다시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보람 있다. 수업 계획안 작성부터 자료 준비, 재료 소분, 실제 수업, 마무리까지. 긴장의 연속이지만 어느 것 하나 즐겁지 않은 일이 없다. "오늘 수업 재밌었어요."라는 아이들의 말에, "선생님 수업,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라는 담임선생님들의 말씀에, 입 안 가득 영양제를 털어 넣은 듯 힘이 난다.




지난해 시월, 독서 프로젝트 시간에 '가을 '을 주제로 초1 아이들과 끝말잇기를 했다.


"호박은 가을이다.", "가을은 낙엽이다.", "낙엽은 빨갛다.", "빨간 것은 맵다"..(중략).. "하늘은 예쁘다.", "예쁜 것은..."


마지막 차례인 남자아이가 머뭇거렸다. "예쁜 것이 뭐가 있을까?"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어주긴 했지만 10여 초의 시간이 적막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입을 뗐다.

"예쁜 것은... 음... 몰라요."

"그래. 그럼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생각나면 알려줄래?"

"네."

"예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선생님도 생각이 잘 안 나네. 아, 그거 있잖아!"

뒤돌아 칠판 쪽으로 향하던 내가 외쳤다.

궁금한 표정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예쁜 것은?........ 선생니임~!"

내가, 내 얼굴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든 채 말했다.


"에이, 아닌데요!!!"


남자아이들이 외쳤다.

몇몇 여자아이들은 두 팔로 X자 모양을 만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끝말잇기 마지막 차례였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다.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져 있다.


참 재미없는 내가 아이들 앞에서는 이런 농담도 한다. 아이들과의 수업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이리라.




"선생님, 선물이에요."


수업이 끝나고 다음 교실로 향하는 내게 두 아이가 다가왔다. 한 아이의 손에는 포스트잇이, 다른 아이의 손에는 흰 종이가 들려있다. 쉬는 시간, 친구들과 놀 시간을 아껴 적어준 글과 그림이 너무도 고맙다. 마흔일곱, 이 나이에 내가 어디 가서 예쁘단 소리를 듣겠는가. 남편과 아들들이 들으면 콧방귀 뀔 일이다. (후에 아들들에게 그림을 보여주었는데, 엄마를 공주로 그린 아이들 그림을 보고는 한참 비웃던 사춘기 아들들. 그 사이로 "그래도 뭐, 우리 엄마 정도면 괜찮아."라는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나 뭐라나~)


"선생님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뭐에요?" 라는 물음에 '분홍돌고래'라 했더니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려주었다.


온전히 우리 집 아이들에게 쏟던 사랑과 에너지를 이제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사춘기가 된 아들들을 조금씩 독립시키며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독립하고 있다. 매우 즐겁게, 아주 예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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