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의 복(伏) 날을 보내며
고래가 사는 세상
전에는 굳이 복날이라고 삼계탕 같은 걸 챙겨 먹은 적은 없지만 남들이 복날이라고 몸보신 운운하며 수선을 떠니 나도 덩달아 뭔가 먹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꼭 복날이 아니더라도 그즈음에 삼계탕을 먹은 기억이 있다. 밖에서 사 먹기도 했지만 정성을 들여 집에서 해 먹으면 말 그대로 몸보신을 한 것 같았는데 요즘은 점점 귀찮아지는 바람에 많은 회사에서 나오는 간편식 삼계탕인 밀키트를 사다 먹으며 복날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 복날에는 친구들이 불러 내는 바람에 초복, 중복 모두 밖에서 먹게 되었는데 유명 삼계탕집은 대기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대부분 나와 같은 노땅들로 그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이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하여간 중복인 어제 들린 보신탕집도 마찬 가지였다. 유난히 이런 날을 챙기는 친구들 덕분에 가게 되었는데 평생 보신탕을 먹어본 것은 손꼽을 정도 여서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먹을 정도로 좋아하진 않았는데 모처럼 오랜만에 먹긴 했는데 거부감 없이 그냥 괜찮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식당 안 사람들 하는 말을 들어보니 개식용 금지법이 통과되어 앞으로 3년 후면 보신탕도 먹을 수 없게 됐는데
그게 다누구 때문이라며 흥분해서 떠들어 대는 사람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릴 때 시골에서 개 잡는 광경을 목격한적이 있는 나는 내게 큰충격을 주었었는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 하다. 개를 나무에 매달고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는 그 장면 이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선지 하여간 전에는 남들이 보신탕을 먹을 때 난 혼자 삼계탕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음식이던 가릴 이유가 없는 나이라 생각하니 그저 먹게 되면 먹는 거지 굳이 피할 생각은 없었다. 전에 쓴 글에서 언급한 적도 있지만 미국에 사는 보신탕 마니아 들은 멕시코산 냉동 개고기로 보신탕을 몰래 만드는 식당을 찾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복(伏) 자는 사람과 개가 더위에 지쳐 누워 있는 형상으로 더위를 잘 이겨 낼 수 있고 정력을 보충해 주는 보양식이라고 하는데 실은 고대 진, 한나라때 삼복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고기를 챙겨 먹었었고 무더운 외부와의 온도와
신체온도를 맞추기 위함이라기도 한다. 어찌 됐던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의 식문화로 다산 정약용도 즐겨 먹었다는 개장국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다. 허기야 개장국 말고도 삼계탕이나 일본의 복날(7월 24일. 8월 5일)에 먹는 장어요리 아니면 추어탕등 선택의 여지는 많으니 점점 개가 대접받는 세상에서 보신탕 마니아들의 설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동의보감에 나오는 개고기의 여러 영양 성분과 장점을 많은 사람들에게 대놓고 홍보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사양화될 음식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다. 개고기에 얽힌 얘기는 한도 끝도 없지만 막상 앞으로 보신탕을 먹을 수 없게 된다니 시원 섭섭하다고나 할까. 아파트 내에서 캐리어에 탄 강아지가 아무에게나 시끄럽게 짖어 댈 때 너 된장 바른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것만 같은 적이 가끔 있긴 하지만 강아지를 자식보다도 더 애지중지하는 행동이나 죄송하다는 주인의 표정에서 안 좋은 말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 개가 이렇게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장례식장에서 통곡하는 어느 여성의 모습에서 우리와 멍멍이는 쉽게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런 만큼 삼복이 모두 지나가면 어느 절에 가서 복날 희생당한 꼬꼬와 멍멍이들 특히 똥개들의 영혼을 달래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며 오래전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던 개그린 버스( 그레이 하운드)가 갑자기 생각 나는 무더운 여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