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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와가치 Sep 10. 2021

현지 학교 적응기 1

베트남 이야기 7

베트남의 다양한 이야기를 글로 쓰는 중이라, 다음 내용은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베트남 현지 중고등학교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하던 참이었다. 공교롭게도 오늘(2021년 9월 9일 목요일), 큰딸이 현재 다니고 있는 베트남 대학교의(미국 분교지만 딸만 빼고는 모두 베트남 학생들이므로 편의 상) 페이스북에 지난 학기 연속으로 장학금을 받게 된 두 학생의 인터뷰 장면이 나왔는데 그중에 한 명이 우리 딸이었다. 하하. 부모는 기분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리는데 큰딸은 시큰둥하게 한 마디 한다. "하버드 대학도 아닌데, 뭘...."




2014년 8월, 두 딸은 베트남 현지 학교(Nguyen Binh Khiem)에 8학년, 4학년으로 어렵게 입학을 했다. 베트남어를 모르면 입학이 안 된다는 각 학교들의 방침 때문이었다. 또한 외국인은 국립학교(거의 무료)에는 들어갈 수 없는 시스템이어서 우리보다 먼저 출발했던 남편이 사립학교(유료)들 위주로 몇 군데 알아보았으나 여러 번 낭패를 봤다. 그나마 딱 한 곳에서, 작은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니 지금부터라도 베트남어를 열심히 한다고 하면 입학을 시켜줄 수도 있지만 8학년인 큰딸은 입학하기에 늦은 나이라며 받아주지 않으려고 했다. 


베트남어가 가능한 지인과 함께 우리 가족이 그 학교로 갔을 때, 동생은 받아줄 수 있다는 그 틈으로 큰딸이 자기도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피력하자 딸의 의지가 확고한 것을 확인한 학교 측에서 좀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니 3일쯤 지나서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았다면서 서류를 준비해 오라는 연락을 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8학년이라 이제부터 베트남어를 시작해서 친구들을 따라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베트남어 배워본다 생각하고 1년만 한 번 다녀 보라고 선심 쓰듯 말했다.


우리는 그때서야 알았다. 고등학교를 가려고 해도 학력고사를 치러야 되고, 좋은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나중에 대학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한국처럼 대학 수능시험이 있기 때문에 중학교부터 내신 성적을 관리하고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혹시나 이것 때문에 큰딸이 학교 생활에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될까 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국 국제학교도 있으니 거기로 가도 된다고 말을 해도 딸은 단호했다. (한국에서 발생했던 친구들과의 문제 때문이었는지) 한국 학교에 갈 마음이 없고, 무엇보다도 베트남으로 이주했으니 현지 학교에 다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큰딸의 논리였다. 반면에 작은딸은 자기 혼자 다니는 것은 싫고, 현지 학교든 한국 학교든 상관없이 언니가 다니는 학교에 같이 다니고 싶다는 순진한 논리만 가지고 있었다. 

 



베트남 엄마들의 교육열도 한국 엄마들 못지않았다. 부모들은 잘로(ZALO, 한국의 카톡 같은)방에 각자의  의견을 내놓으며 수시로 담임 선생님과 연락을 취하고, 학교에 빈번하게 드나들었다. 남편이 먼저 베트남어를 시작하긴 했어도 6 성조이다 보니 현지에서의 언어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데다가(억양이 조금만 틀려도 현지인들은 못 알아듣는다) 나 또한 베트남어가 전혀 안 되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는 늘상 걱정만 되었다. 열심히 학교를 드나드는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아침마다 열심히 보내는 일뿐이었다. 


학교 수업은 아침 7시 30분에 시작되었다. 6시 50분 스쿨버스를 태워 보내야 하니 가족 모두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했다. 복잡하고 위험한 베트남 도로에서 스쿨버스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교복에는 항상 빨간 스카프를 목에 둘러야 했다. 문제가 생겨 하루 정도 교복을 못 입을 수는 있어도 빨간 스카프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게 학교의 규칙이었다. 그런 사소한 것보다도 아이들이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반드시 낮잠을 자야 하는 일이었다. 작은딸은 종종 집에 와서, 졸리지도 않은데 자꾸만 자라고 하는 선생님이 마음에 안 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딸들 모두 학교에서 낮잠을 잘 자게 된 것은 물론 그 외의 학교 생활에도 잘 적응해 가는 듯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베트남 중학생들 (퍼옴)


그러나 학습 문제에 있어서는 아이들 나름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아베쎄데(A, B, C, Đ)도 모르던 아이들이 제 친구들의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고, 미리 각오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더군다나 중학생부터 아이들의 성적을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해놓은 시스템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선생님만 알고 있어야 하는 반 학생들의 점수, 평균, 석차까지 자세하게 정리된 파일은 언제든 볼 수 있게 잘로방에 올려졌다. 10점이 만점이라 이제 겨우 2점, 3점에서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고, 특히 승부욕이 강한 큰딸의 자존심은 자주 바닥으로 내려앉곤 했다. 그렇지만 딸은 다시 힘을 내어 열심히 공부했다. 최선을 다 하는 게 보였다.


아이들이 이제는 좀 적응하는가 보다 하고 마음 놓고 있던 어느 날, 1년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큰딸의 담임 선생님이 나를 호출을 했다. 그날 학교에 가서야 베트남 학교 시스템을 좀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에 반을 맡은 선생님은 초등학교를 마치는 5학년까지 담임을 맡으며(같은 반 아이들도 바뀌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6학년(중1)에 담임을 맡은 선생님은 9학년(중 4)까지 담임을 맡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1년 전에 만난 큰딸의 담임 선생님 앞에 또 앉게 된 것이다. 


어설프게라도 어느 정도 베트남어가 가능해진 딸이 선생님 이야기를 엄마에게 통역도 해주고, 중간중간에는 선생님 질문에 대답도 하면서 상담이 진행되었다. 선생님의 요지는 이랬다. 1년을 지켜본 결과, 예상했던 대로 딸이 너무 늦은 나이에 베트남 학교에 왔고 이렇게 해서는 내신 성적을 기대할 수 없으니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를 하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8학년에 받아준 것도 큰 배려였다면서.  통역을 해주는 딸 목소리가 젖으니 듣는 내 귀도 젖었다. 내 생각으로는 이제 겨우 1년밖에 안된 거고 언어도 배우는 중에 있는 아이가 3점 4점이나 받아오는 것도 기특한데 선생님 입장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학교를 옮기겠다는 대답을 끝까지 하지 않는 딸 앞에 선생님은 잠시 후, A4 용지를 내려놓으며 뭘 쓰라고 했다. 거기에는 '각서'라는 무시무시한 베트남어가 쓰여있었다. 그리고는 딸에게 선생님 말을 참고해서 쓰라며 내용을 불러 주었다. 그동안에 점수를 더 올리지 못한 이유와 바로 다음 시험에서 문학 시험은 반. 드. 시 5점을 넘기겠다, 만약에 5점을 넘기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하겠다는 각서를 쓰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아니꼽고 치사해서 다 그만두자고 딸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서고 싶었지만, 촉촉이 젖은 눈으로 차분하게 선생님의 요구대로 각서를 완성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그러질 못했다. 딸의 모습에 덩달아 눈물이 나는 그 와중에도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베트남어를 능숙하게 써내려 가는 딸의 글씨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딸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겨우 1년 되어서 기본적인 것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너무 한다고 하소연을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로서는 이제 그만하자, 그동안 열심히 했다, 이제는 한국학교로 옮겨보자며 딸을 설득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딸은, 여기서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베트남 시험은 사지선다 형식시험이 아니다. 모든 과목이 다 주관식 이다. 더구나 문학이라는 과목은 베트남 현지 아이들도 5점을 받으면 잘 받는 거라며 만족해 하는데 외국인인 우리 딸더러 다음 시험까지 5점을 받아야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게 해 주겠다는 거다. 이건 횡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학생들의 성적이 나쁠 경우 담임 선생님이 학교 이사회에 시말서를 제출한다고 한다)


독해진 딸이 공부에 더 매달렸다. 문학 점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곤 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딸은 중간고사 시험을 치렀다. 딸의 문학 점수는 5.2점이었다. 그만하면 반에서도 중간 이상은 되는 점수였다. 그 후로 담임 선생님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고 한다. 그 어려운 문학을 어떻게 공부한 거야? 하고 물으니 딸이 대답했다. 

"베트남 문학은 이해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선생님이 필기해 주셨던 거 그냥 다 외워버렸어."

딸이 엄마에게 내민 노트는 베트남 문학 노트였다. 네 페이지를 다 외웠다고 한다. 내 딸이지만 다시 보였다.

딸이 필기한 베트남어 노트, 네 쪽을 다 찍어둔 것 같은데 두 쪽만 남아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치른 고등학교 입학 학력고사에서도 원하는 점수를 받아 딸이 계획했던 대로, 그동안 다니던 중학교와 붙어 있는 고등학교에 무사히 입학할 수 있었다. 2016년 9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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