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판 Nov 05. 2021

『꼭대기의 수줍음』

언젠가부터 감성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감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위해 이것저것을 덧대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괴물이 되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감성은 싸이월드 감성이다. 이것보다 더 적당한 단어를 찾고 싶은데 아직 생각이 나지 않는다. SNS는 늘어났지만 어쩐지 몽글몽글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는 줄어든 것 같다. 비밀 계정을 돌려서 수줍은 마음을 털어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다이어리라면 가능할 지도?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유계영의 글이 싸이월드 감성의 진화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미 이 시인이자 비평가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에 혀를 내두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리 느꼈다.


책 첫 머리에는 비둘기 이야기가 나온다. 비 오는 날 전선의 비둘기는 비를 피하려 어디로 가있을까? 비둘기가 싫다면 다른 새를 상상해도 좋을 것이다. 반려인인 저자는 산책하는 반려견을 두고 파쇼라는 어마무시한 비유를 쓰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반려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반려견의 산책을 저자는 학교에 비유한다. 최근에 반려인과 산책을 할 일이 있었다. 산책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사려 깊은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않고 넘어갔을 것이다. 서로의 시선을 빌린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실 대부분의 문장들을 읽고, 잊었다. 그런 문장들이니까. 내가 저자가 아닌 이상 가닿지 못하는 글이니까. 그래도 마치 잊고 있었던 느낌을 되살아났다. 나도 한때 이런 글을 썼었는데, 언제부턴가 쓰지 않게 되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역시 답은 나오지 않는다. 문학에 답이 있는 건가. 그런 거라면 나는 가장 답이 멀리 있는 다른 영역으로 도망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저자에게서 답을 얻는다. 아직은 내가 가장 도망칠 수 있는 자리가 문학이다.


『꼭대기의 수줍음』



작가의 이전글 『아이 틴더 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