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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발도르프 학교에서 국제학교 선생님을 만나다

이런 인연이!


어제는 제주 발도르프 학교에 강의를 들으러 다녀왔다. 가을 페스티벌을 열어서 11월 동안 들을 수 있는 강의가 있다. 이번에는 발도르프 학교에서의 8년이라는 강의 주제로 선생님이 오셨다.


발도르프 학교는 8년 제이다. 6학년이면 초등학교가 끝나는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교육 학제이다. 발도르프는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8년 담임제 이후에는 상급과정으로 올라간다고 한다.


그런데, 딱 봐도 선생님 같아 보이는 분이 강의을 듣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끼리는 서로 알아본다고 했던가. 다이어리를 딱 꺼내서 필기하는 포스가 마치 학교 회의에서 만난 느낌을 풍겼다.


수업을 마치고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혹시 선생님이신가요?' 그랬더니 제주 국제학교 국어선생님이라고 소개를 해 주셨다.




영어도시에 살면서도 국제학교 국어선생님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발도르프 강의에서 만나게 되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어쩌다 보니 집 방향이 같아서 같이 차를 타고 가서 차를 마시게 되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국제학교를 첫 학교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공교육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많이 놀라셨다. 내부에서 보면 절대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외부에서 보면 보인다. 우리나라 공교육 선생님들은 선생님이 아니라 행정직이라고 할 만큼 놀랍도록 업무를 많이 한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고 쭈욱 내려오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벗어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전국에 있는 모든 학교가 똑같이 업무가 많다. 서로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으면서 내 업무를 누가 가져가 주길. 이번 해에는 뽑기가 좀 잘 되길 바라는 것이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10년 전에 비하면 힘든 일이 되어버렸지만 국제학교 교사와 대한민국 공교사의 가장 큰 차이는 '업무'인 것 같다.


선생님이 그런 일도 하냐며 놀라는 국제학교 선생님. 내 말을 다 듣더니, "그러면 선생님은 국제학교 가시면 편하실 수도 있겠어요. 정말 수업만 하니까요." 라고 말한다.




그럼 공교육 선생님들은 수업만 안 하고 뭘 해온 거지. 그럼 그 일들을 국제학교에서는 누가 해주는 거지? 아니. 그 일들이 정말 필요한 일이기는 했나.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이지는 않았나.


그런데도 분명한 것은 학교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다. 교육청 예산을 받아 0원 만드는 것도. 연말에 문서를 몽땅 뽑아서 노란 서류철에 정리하는 것도. 날짜를 적고 도장을 찍고 쪽번호를 일일이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도. 2025년에도 선생님들은 그렇게 문서정리를 하고 계시겠지.


강사를 뽑고, 강사 월급을 매달 품의하고, 예산 사용에 맞춰서 지급하는 일도. 계획서와 보고서와 그 모든 서류업무가 끝이 없다. 1차, 2차, 3차 기초학력 시험을 봐서 일일이 결과 보고도 해야 하고.


기초학력 업무를 했는데 그렇게 하면 정말 기초학력 보강이 되는 걸까. 업무적으로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 (수업 준비 할 에너지를 업무에 다 쏟으면서) 기초학력 업무를 마치고 나면 나는 수업 준비를 잘 못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쁨이 업무에는 업다. 그렇다 보니 수업 준비를 못하면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낮아지고 내가 바라왔던 교사의 모습이 아닌 업무에 찌든 교사가 되었다. 그럼 수업준비를 하면 되지 않냐고. 그래 하면 된다! 10분 20분 잠시 짬을 내어서. 잠깐. 교과서를 훑으면서.


정말로 진실로 교육 경력이 높아질수록 수업의 비중보다 업무의 비중이 훨씬 높다. 부장님들은 엄청난 업무에 치이면서도 수업을 열심히 하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신다. 업무가 수업을 넘어서는 걸 보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기초학력, 학생 교육과정 평가 업무에 1, 2학년군 부장을 단 첫 해였다.




학교에는 절대적으로 업무가 많다. 왜냐면 이 모든 것이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업무도 많다. 학교폭력, 기초학력 이런 것들은 아예 법으로 규정이 되어있다. 현장체험학습도 사전 점검하고 예산 사용하고 결과 보고도 해야 한다.


학기 초에 규정되어 있는 범교과 영역(성교육, 디지털 윤리교육, 안전교육 등등...)을 창체 시수에 알맞게 집어넣는 일은 거의 기적과도 같다. 그게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그걸 맞추는 프로그램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


공교육 선생님들은 그걸 당연히 해야 하는 교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년 그것을 반복한다. 또다시 새해가 돌아오고 또다시.. 반복.




아이들이 힘들다. 학부모가 힘들다. 그런 말이 많은데 그전에 업무부터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에너지를 좀 다른 쪽으로 쓸 수 있을 텐데.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부나, 정부나, 이미 만들어진 모든 법규들이나 그런 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교육이 싫으면 선생님이 학교에서 나와야 한다.


신규부터 부장님들 교감 교장 선생님들까지. 모든 선생님들이 엄청난 환경에서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한다. 그 일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 근무할 때 나 자신에게 '나는 왜 이렇게 못하지?'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또 내가 잘 못하면 학교 업무에 큰 구멍이 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건 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너무 많기 때문이다. 차라리 업무가 적던 신규때는 수업을 더 잘 준비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선생님들 잘하고 있으니 힘내세요! 벌써 연말이 다가오고 성적 정리를 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네요. 이제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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