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원 Jul 28. 2024

소로야 미술관

스페인 아스투리아스 당일치기 (2)

소로야는 스페인의 국민화가인데 그와의 첫만남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였어. 프라도 미술관에서 <해변에서의 소년들>을 보고 매료된 나는 그림 앞에 서서 초면인 작가의 이름을 구글에 검색했다.


Boys in the beach


[검색 결과] 호아킨 소로야에 대한 간단한 개요가 떴고, 그 아래엔 마드리드에 있는 소로야 미술관이 소개돼 있었어. 난 미술관의 구글맵 링크를 클릭했고, 그 곳이 여기, 프라도 미술관으로터 버스로 20분 거리에 위치했다는 걸 알았지. 당장 이 곳을 가야 한다는 아주 단호한 결심이 들었다. 규리와 한나에게 소로야 미술관에 다녀오겠다는 연락을 남겼어. 그리고 프라도 미술관 3층에 있는 <델핀의 보물>만 보고 소로야 미술관으로 이동하리라 생각하며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트는 3층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날 옮겼고, 그 곳엔 소외계층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어. 소로야 미술관의 폐관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어 급급했던 난 3층으로 가고자 해당 전시실을 이리저리 헤매다 어떤 그림에서 걸음을 멈췄다. 난쟁이 댄서를 그린 피카소의 그림 옆에 걸린 대규모 유화였어. 제목은 Sad Inheritance. 유전성 매독으로 소아마비를 지니고 태어난 소년들이 수도사의 보호 아래 발렌시아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장면이었어. 직원에게 혹시 작품 촬영이 가능하냐 물었지만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본디 프라도 미술관은 촬영 금지지만 특별전이기에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어쩔 수 없이 나중에 찾아볼 요량으로 그림의 제목과 작가 이름을 옮겨 적는데 철자가… 아주 익숙하다. Joaquín Sorolla. 소로야의 또다른 그림이었던 거야. 즉시 프라도 미술관을 떠나 소로야 미술관을 떠났어. 나중에 알고 보니 <슬픈 유산>은 소로야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해. 그는 이 그림으로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대상을, 1901년 스페인 미술 국전에서 우수상을 받았어.


Sad inheritance

그가 생전에 살던 집을 개조한 소로야 미술관은 작지만 알찬 공간이었어. 마드리드에 갈 일이 있다면 꼭 들리길 추천해. 학생이라면 무료 입장할 수 있어. (물론 국제학생증을 챙겨야겠지.) 화가 소개글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었어. His life was almost boring in its perfection. 그의 삶엔 예술가라면 으레 갖춘 가난과 신경증이 전무하다. 대신 양부모의 풍족한 물질적 지원, 사랑하는 여인과 이룬 행복한 가정, 대중적 인기와 명성 모두를 거둔 화가의 성공 같이 빛나고 따분한 것만이 가득해. 해당 코멘트를 쓴 화자마저 이상적 가정과 천부적 재능, 탄탄대로의 커리어, 그 모든 걸 갖춘 소로야의 삶을 설명하는데 약간의 질투를, 또 권태를 느낀 듯했다. 어쩌면 저 문장 속 ‘boring’은 굴곡 하나 없이 반듯한 인생사를 반복해 늘어놓고 있는 본인의 지루함, 즉 화자의 고발적 중의일거야.


His life was almost boring in its perfection


이야기가 많이 샜다. 다시 아스투리아스. 아무튼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한 난 조금,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슬퍼하다가 근처 카페에서 생각을 정돈하기로 했어. 예상처럼 카페 주인은 영어를 하지 못했어. 난 꿋꿋하게 iced coffee를 외쳤고, 난처한 표정의 그는 이내 주방에서 누군가를 불렀어. 그의 아들인 듯 보이는 직원이 등장했고, 그는 나에게 뜨거운 커피와 얼음컵을 갖다 주었다. 카페에는 오래 있지 않았어. 20분 후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출발했지.


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에 스페인 의류 브랜드 ZARA를 발견했어. 여름시즌 세일 중이라 가격도 저렴하고 신나게 몇 벌 골라 집었다. 탈의실로 갔는데 한 남매가 탈의실 커튼을 사이에 두고 숨바꼭질 중이었어. 나는 의젓하게 그들의 놀이가 끝나길 기다렸다. 조금 후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아이가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탈의실 밖으로 나왔어. 그러나 여동생은 여전히 숨바꼭질에 열중하고 있었지. 오빠는 애타게 동생을 불렀지만, 여동생은 나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결국 탈의실로 재입장한 오빠. 이윽고 여동생이 질질… 끌려 나오는 모습이 웃기고 귀여웠다. 어릴 땐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초조해지잖아? 난 그랬거든. 예컨대 엄마가 금방 나갈테니 엘리베이터 미리 잡아둬!라고 말하고 10분 이상 나오지 않을 때•••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건 별 일이긴 하다…


5시 반. 공항에 도착했어. 그런데… 비행기가 지연됐다. 그것도 2시간 45분이나. 3시간 이상 지연되면 EU261 규정에 의해 250유로를 받을 수 있는데 얄궂은 15분 때문에 보상금도 물 건너갔어. 무엇보다 지연을 미리 알았다면 현대미술관을 포기하지 않았을테지! 이게 앞서 언급한 내 두 번째 불행이야.


글을 어떻게 마칠지 모르겠다. 아무튼 난 오후 8시에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무사히 탔고, 심야버스를 타고 공항에서 기숙사까지 도착했어.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니 오비에도에서의 어제가 벌써 꿈같다. 아무튼, 두 번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오비에도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싱겁게…

작가의 이전글 오비에도의 시드라 마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