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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 Feb 26. 2022

합목적성과 법적 안정성은 어떻게 충돌하는가

사실적시명예훼손 폐지에 관하여

2020년 10월에 작성한 글입니다.


  오늘날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의 생산자 및 유통자로서 개인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현대의 매스컴에서는 특정인에 대한 개인의 폭로와 고발이 빈번하다. 예컨대 현 시점에도 SNS를 통한 유튜브 ‘가짜 사나이’ 출연진에 대한 개인들의 폭로가 이슈이다. 이러한 폭로 행위는 범죄를 저지른 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영위하는 것에 대해 개인적 폭로를 통해서라도 그 사람을 응징하겠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이처럼 인터넷의 발전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촉발하는 새로운 권리회복의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 미투 운동은 이러한 정의회복의 수단으로써 개인의 폭로행위가 지니는 순기능을 조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미투 운동을 통해 대중은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수많은 범죄 사실에 분노하며 가해자의 명예 박탈이라는 사회적 처벌을 능동적으로 부과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 체계로부터 제대로 피해를 보상받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할 수 있는 또다른 구제수단: ‘사실 적시’를 행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이 사회적 흐름에 따라 진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처벌이 가능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국민의 폐지 요구가 불거지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미투운동과 같은 건전한 자정운동의 동력을 약화시키며 국민의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그 요구의 근거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신중하다.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만큼 개인의 명예 역시 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명예권을 포함하는 인격권은 헌법 10조에 의해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다. 대중의 요구가 변했다고 하여 헌법 상의 기본권 침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즉시 법을 바꾸긴 어렵다. (첨언하자면 이때의 명예란 ‘특별한 공적의 일부에게 부가되는 자랑 혹은 품위’가 아니다. 모든 인간이 지닌 ’사회적 동물로서의 기본 본성에 대한 충족‘이다. 사회로부터 내부 구성원으로 인식되어, 타인이 나의 말을 귀 담아듣고 그에 호응하는 기초 상호작용이 가능한 상태를 일컫는 것이다.) 또한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폐지 근거로 주장되는 표현의 자유과 관련하여 형법 제 310조는 "제307조 제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며 개인의 명예와 표현의 자유라는 상충되는 두 법익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따라서 사실적시명예훼손죄의 폐지는 명예권이라는 기존의 합당한 법익과 기존의 법질서가 이미 마련해둔 법익 간의 충돌에 대한 대책을 부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을 침해한다.


 또한 헌법재판소가 정의회복을 명분으로 해당 법률을 폐지 시 이는 사법체계의 존재목적을 스스로 부정해버리는 것이 된다. 정의실현의 공적 수단인 법이 범죄피해를 제대로 구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폭로라는 사적 수단을 통해 정의를 회복하라며 사법체계의 무능력을 뻔뻔히 인정해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결정은 법에 따른 객관적 판결없이 일반 대중이 개인의 폭로 내용만을 근거로 특정인을 범죄자로 판정하고 신랄한 비난을 가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국가의 형벌 의무뿐 아니라 형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백히 침해한다. 이는 국가형벌권의 역할과 대전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다.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명예권과 국가 형벌권의 보존을 위해 법적 안정성을 고려하여 사실적시명예훼손죄 폐지를 반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결코 국민의 정의관념과 분리될 수 없다. 현재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의 합헌 결정을 뒤로 두고 사실적시명예훼손죄 폐지에 대한 공개변론을 또다시 진행 중이다. 이는 국민의 정의관념과 법적 안정성, 그 무한한 충돌, 그 무수한 충돌의 일례다. 그 지긋한 대립이 사법계를 넘어 사회의 무수한 변화를 이끌었고, 이끌며, 이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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