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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스푼 Jul 15. 2022

어릴 땐 크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세상이 아름다운 건 어려서 그래

Sub. Title 어릴 땐 크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어릴 때, 어른이 되고 싶었던 이유로 주사기가 생각난다. 주사는 아프고, 무서운데 어른들은 인상도 찌푸리지 않고 주사 맞는 걸 보고 어른이 되면 주사가 안 아픈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아빠가 되어 있는 지금, 주사는 똑같이 아프다. 최근에 코로나 백신 주사 팔에 맞는데 2차는 왜 이리 아프던지. 어른이라 아프다고도 못하고 참았을 뿐이다. 어른이 되어 어릴 때 기대와 다른 것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어른은 제사상도 잘 차리고, 길을 잃어버리지도 않으며, 뭔가 있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어른들은 뭘 하든 어떤 형식이 있고 그래서 실수 없이 모든 일을 의심 없이 해내는 존재였다. 그래서 어른이 곁에 있으면 든든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른이 되기를 기대했던 이유는 어른이 되면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어른은 차도 있고, 가끔 뵈면 인사만 잘해도 용돈을 주셨으니 어른은 모두 부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막연히 어른이 되면 주사가 안 아플 거라는 기대와 함께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나이까지 왔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도 주사는 아프고, 저절로 부자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주변의 같이 어른 된 친구들을 봐도 별 다를 게 없다. 하나같이 모두 기대했던 어른은 아니다. 

막상 나이로는 어른의 기준을 당연히 넘었지만, 차례상 놓는 법 모르겠고, 아직도 동네 친구들 만나면 어릴 때나 마찬가지로 이 자식 저 자식 소리가 자연스럽고, 지천명의 나이에 브롤스타즈 캐릭터 하나 받고도 기뻐한다. 옛날 어른들도 그랬을까 싶다. 그랬다면 그분들께 실망, 그렇지 않았다면 나에게 실망하게 되지 않을까.

어느 날, 왜 어른이 됐는데 부자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대학생 때는 취직을 안 했으니까 돈 없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군대 있을 때는 군인이니까 당연했고, 취업을 할 때는 IMF라서 당연하다 생각했고, 취업한 뒤에는 회사가 작아서 당연하다 생각했다. 연봉협상에는 흥정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후배들 만나면 술 사주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주변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면 돈 몇 푼 정도야 빌려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당연히 살아온 결과 당연히 돈이 없다. 

왜 직장 다닌다는 정도를 가지고 스스로 살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왜 중형차 한 대 뽑으면서 내가 중산층이라 생각했는지, 왜 남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갚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왜 야근은 내가 하는데 월급은 똑같은지, 왜 아파트는 갈수록 값이 오르는지, 왜 내가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는지, 왜 회사는 언제까지나 나를 원할 거라 생각했는지, 그리고 이 모든 왜? 에 대해서 왜 그동안 고민을 안 해봤는지 나도 그 이유가 궁금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그 많은 습관들, 또 부지불식간에 지나간 까닭 모를 생각들에 대해 누가 ‘이상하지 않아?’라고 귀띔을 해 준 적이 없다. 더욱이 혼자 힘으로는 이상한지 아닌지 알 수도 없었다. 

어쩌면 가난이 주는 불편함이 과거만큼은 아닌 탓일 수 있다. 옛날에는 부자들만 가지고 있던 가전제품이 우리 집에도 있고, 자동차도 있다. 가끔은 해외여행도 갈 수 있고, 연예인들이 갔던 식당에 나도 기분 내면 갈 수 있고, 광고에서 보던 옷을 나도 살 수 있었다. 부자들이 하는 행동의 일부는 나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보니 그들과 별 차이가 안 나는 것처럼 생각, 아니 착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난이란 것을 인내해 볼 만한 상황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어릴 때 어른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셔서 정말로 어른으로 보이긴 했지만 정작 세상 사는 이야기는 거의 안 해 주셨다. 심지어 돈 이야기는 너무 아름답게만 말씀해 주셨던 것 같다. ‘돈은 있으면 좋으나 없다고 나쁜 것은 아니다.’ ‘가난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군자는 도를 걱정하고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君優道 不優貧).’ 좋은 말씀이다. 적어도 그런 말씀 듣고 자란 가난한 집 아이의 자존감은 많이 성장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좋았다. 결혼을 생각하기 전 까지는.

나는 당시의 국민소득보다 더 벌고 있었다. 2005년 우리나라 연간 국민소득은 17,000달러였으니 내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직장인은 그것보다 더 벌었을 테지만, 잘 길러진 나의 자존감은 그것 좀 더 번다고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마치 중산층이 나인 것처럼.

문제는 결혼을 하고 싶은 데에서 시작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에도 집은 쉽지 않았다. 살고 싶은 집은 언제나 비싸고, 들어가고 싶은 직장은 언제나 어려웠다. 2억 정도 전세금이 필요했다. 아니, 2억은 여태 회사 다니며 받은 돈을 다 모아도 어려운 돈이다. 그동안 뭘 한 거지? 다들 어떻게 결혼한 거지? 난 왜 살 곳도 없는데 모은 돈도 없는 거지?

빌려준 돈부터 받으려고 연락했다. 대부분 못 받았다. 없어서 빌렸는데 갑자기 없던 돈이 생길 리 없다고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어떤 친구는 연락도 끊겼다. 한참 후에 모르는 번호로 다시 연락이 왔다. 돈 오십만 원만 해달란다. 연락을 끊었던 그놈이다. 점점 호구가 되어가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한심했다. 이쯤 되면 나의 인간관계 이전에 나라는 인간이 문제 아닌가.

이 난국은 결국 내가 자초한 일인데 원인은 내가 돈을 몰랐던 탓이다. 사실 뭔가 이상하다 생각은 했지만 결혼할 즈음에도 돈을 알았다 할 수 없고, 그 뒤로도 한동안 별 관심 없었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삶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역시 배부르면 딴생각을 못하는 동물인가 보다. 

그 뒤 직장생활의 절벽을 마주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생은 아름답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이제는 아내가 있고 아장아장 아이도 있다. 내가 없어도 이 가족들은 살게 하고 싶었다. 유전자를 보존하고 싶은 본능일 수도 있지만 가장의 역할은 그래야 한다는 각오가 생겼다. 나의 노동이 없어도 지속 가능한 가족이어야 했다. 뭐가 있을까 고민의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 나도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아이의 경제적 배경이 되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건 아이에게 돈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는 것이다. 어른 된다고 부자가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심어주거나 실리 없는 도덕과 의리를 말해주고 싶지 않다. 내가 마흔 중반에 깨달은 돈의 세상을 10년만 일찍 알았더라면 하고 아쉬워한 적이 있다. 아이에겐 더 일찍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자본, 즉 돈을 모른다는 것은 유명한 빵집에 가서 아메리카노만 먹고 있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면서 자본주의를 비판만 하는 것은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아버지 흉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의 아이는 아빠의 실수와 무지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배운 것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려 한다. 아이의 자본주의 입성이 멀지 않다. 10년 뒤면 아이도 자본주의 세상에 홀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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