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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병묵 Mar 01. 2024

말수저 강호동 님, 대수저 유재석 님

MC이자 예능인으로 ‘유강천하’를 형성했던 유재석 님과 강호동 님은 ‘재치 있는 입담’으로 오랜 세월 시청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외모만큼이나 ‘입담’ 스타일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  강호동 님은 말 잘하는 말수저, 유재석 님은 대화 잘하는 대수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 님의 말은 톤이 높고 텐션 있는 목소리를 유지한다.  조금은 과장된 리액션으로 주변인들의 집중을 유도하며 분위기를 리드한다.  강호동 님은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에 대한 피드백으로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말한다.  목소리의 톤과 속도, 표정과 신체언어를 통한 빠른 리액션을 가미하여 타인의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솜씨 있게 표출할 줄 안다.  말 잘하는 말수저의 전형으로 소위 ‘쎈케’를 가지고 있다.


반면 유재석 님은 착한 이미지를 무기로 질문과 경청을 기본으로 대화를 잘 이끌어 간다.  출연자들의 감정에 대한 공감, 상대가 전달하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이해, 동등함에 대한 인식에서 묻어나는 존중과 배려의 질문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  대화를 불러오는 전형적인 대수저이다.  유재석 님의 말은 상대방이 생각의 프라이버시를 자연스럽게 해제시키도록 유도한다.  무뚝뚝한 노인이나 어린이, 대학교수나 의사 등 얼핏 대화와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과도 웃으면서 대화한다.  대화 참가자들의 밝은 웃음은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여 소통하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다.  한 사람이 말로 표현한 생각이 대화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조금씩 상대방의 생각을 수용하여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대화는 생각을 교류하여 서로 공유하는 폭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다.  말은 자기중심적이며 지식, 정보, 감정의 일방적이고 설득적인 전달을 중시한다.  대화는 상호 협력적이며 생각의 교류를 통해 참가자들이 공유하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낸다.  말을 잘하는 능력은 대화를 소통에 이르게 하는 데 있어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중연설이나 프레젠테이션 등 제한된 시간 내에 다수의 청중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 말 잘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서로 의존적인 관계 속에서 대화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는 생각을 만들고 서로 연대하는 힘은 대화에서 나온다.  일개인의 혁신적 생각도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생겨난다.  갈등상황을 해결하고 협상을 통해 윈윈의 지속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동력도 대화다.


강호동 님의 말수저 역량이 가장 돋보였던 프로그램은 ‘1박 2일’과 ‘무릎팍도사’였다.  센케와 하이텐션을 무기로 ‘말’로 출연자를 곤란하게 만들어 시청자들의 웃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강호동 님의 난처한 질문에 대한 출연자들의 대응, 그리고 이어지는 강호동 님의 과한 리액션은 웃음을 자아낸다.  강호동 님은 출연자들의 ‘말’로 표현된 생각에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하지만  항상 주인공이다.  이수근 님, 유세윤 님 등의 보조 출연자들이 강호동 님의 피드백을 강화하여 리액션의 크기를 강화하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실질적으로는 출연자와 MC, 출연자와 보조 출연자 사이 위계에 대한 존중과 배반이 반복되며 계급장이 웃음의 주요한 소재가 된다.  ‘당신은’을 중심으로 한 2인칭 질문보다는 ‘나는’으로 시작되는 피드백이 중심을 이룬다.


유느님의 대화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프로그램은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다.  연예인, 특정 분야 전문가, 일반인, 어린이 등 이 세상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는 유재석 님의 대수저로서의 재능이 돋보인다.  유느님의 대수저 능력은 메타인지 역량과 2인칭 질문을 통한 경청에서 나온다.  자신과 상대의 생각을 면밀히 관찰하고 질문을 통해서 상대 생각의 프라이버시를 자연스럽게 해제시킨다.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필자의 지인은 유느님의 대화 능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재석 님은 출연자뿐만 아니라 시청자, PD와 작가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낸다.  생각을 말하면 질문을 통해서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생각으로 대화를 유도했다.  유재석 씨가 많은 질문을 통해서 리액션하고 피드백했던 부분만 편집되어 본방 되었다.’  


유느님의 메타인지 역량은 출연자와의 교감을 넘어서 편집자, 시청자의 생각까지도 관찰한다.  2인칭 질문을 통해서 출연자의 생각에 대해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피드백을 전달하면서 모두가 관심 있어하는 영역으로 대화를 끌고 간다.  출연자와 시청자가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대화가 진행될수록 같이 공유하는 새로운 생각이 탄생한다.  공감대가 형성되고 교훈이나 깨달음도 전달된다.  유느님이 출연자와 시청자를 서로 마주 보고 한자리에 앉힌다.  유느님의 고지능 메타인지에 나온 2인칭 질문에 출연자들은 점점 눈높이를 맞추고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신나게 표출한다.  출연자들의 생각이, 출연자들의 탤런트가 반짝반짝 인다.  시청자들은 예능을 보고 웃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대화 속에서 공감하며 웃는 것이다.


강호동 님, 유재석 님 모두 말수저와 대수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는 분석의 편의를 위해 차이가 나는 부분을 현미경을 들이대 확대 해석하였다.  말수저를 포기하고 대수저가 되라는 것도 아니다.  두 부분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었으며 상황에 따라 말수저가 되어야 하는지 대수저가 되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대화가 소통하기 위해서는 말수저는 필요조건이지만, 대수저는 필요충분조건임을 명심하면 된다.  




우리는 산업화, 서구화의 진전과 더불어 말수저가 대접받고 출세하는 세상에서 살았다.  과제 발표, 구직 면접, 대중 연설 등에서 의견을 논리적이고 설득적으로 ‘말 잘하는 능력’은 출세를 위한 도구였다.  사색과 대화를 통한 새로운 생각의 탄생보다 검증된 생각을 넓고 빠르게 공유하여 효율을 높이는 것을 중시했다.  자연과학보다는 공학이, 인문학보다는 경영학 등 응용학문이 인재를 양성한다고 믿었다.  임원회의 시간에 숫자와 도표로 가득 찬 파워포인트를 화면을 두고 프로페셔널 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무선 마이크를 차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혁신과 자신감의 아이콘이 되었다.  경영자도, 정치인도, 일반인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생각을 효율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덕이었다.


디지털 세상 유튜브에는 말 잘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는 것을 넘어서 사실을 왜곡하여 주장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설득을 위해서라면 진리와 정의도 상대적인 기준으로 바라보았던 그리스 시대 소피스트들로 가득 차고 있다.  대화가 사라지고 일방적인 주장만 넘쳐나면서 국가나 지역사회, 가정과 회사 등 집단의 연대는 약해지고 있다.  핵개인들에게는 세상은 휴대폰 속에 존재한다.  관계를 맺고, 협상하고, 조정하는 대화가 줄어들면서 크고 작은 갈등이 상존해 있다.  소피스트들의 반대편에는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그는 시장 상인들과도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하면서 ‘무지의 지’를 같이 깨닫고 새로운 생각을 같이 만드는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제 소크라테스가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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