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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구 Feb 06. 2022

산에서 내려올 때는 천천히 가자, 유키야!

[유키와 액티브 마이라이프] 운길산과 수종사 둘러보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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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와 수종사에서 나와 계단길로 내려왔다. 계단길 끝나는 지점 오른쪽으로 운길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다. 등고선이 있는 지도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10미터마다 있는 선의 간격을 보면 그 경사도를 짐작할 수 있다. 좁을수록 경사가 급한 것이다. 선이 안쪽으로 들어가 있으면 계곡이 된다.

산행 출발점과 도착점은 일주문 앞 주차장. 여기서 정상까지 바로 가면 1.3킬로미터 정도밖에 안된다. 왼쪽 고도표에서 1.0km 표시 전 등산로가 가파르게 시작되는 것이 보인다.

유키는 경사로를 올라가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 가볍게 통통 튀며 바위계단을 오른다. 유키의 가벼운 몸동작을 보면 내가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젊어지는 것 같다. 등산로 주변에는 참나무 계통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다. 햇볕이 안 드는 작은 음지에는 눈이 녹지 않고 흔적을 남기고 있다. 유키는 잘 오르다가도 낙엽 더미 속에서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달려가서 코를 박고 숨을 깊이 들이킨다.


영하 10도 아래라고 하지만 바람 없고 볕이 잘 드니 가볍게 입은 옷차림에도 땀이 흘렀다. 나는 산에 갈 때는 거의 대부분 노르딕워킹 폴을 가지고 간다. 노르딕워킹 폴은 손을 스트랩으로 완전히 감싼 채 손잡이에 고정하기 때문에 폴을 가볍게 쥘 수 있다. 이렇게 해야 폴 잡은 팔을 앞다리처럼 사용해 유키와 같이 네 다리로 걸을 수 있다. 산에 오를 때 네 발걸음은 특히 유용하다. 앞다리(팔)에 힘을 주고 당길 수 있어 뒷다리에 가해지는 힘을 분산시켜 피로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네 발걸음의 유용함은 유키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다만 유키와 함께 갈 때 노르딕워킹 폴 사용에 한 가지 불편함이 있다. 유키가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고 왔다 갔다 하기에 목줄 끈이 폴에 가끔 걸린다는 것이다. 유키의 목줄을 잡고 노르딕워킹 폴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이젠 노하우가 생겨서 처음처럼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가파른 경사로 400미터를 오르면 능선길과 만난다. 정상까지의 능선길 400미터도 경사가 좀 있지만 처음에 비하면 평탄한 길이라 할 수 있다. 능선길에 올라서자 바람이 차가웠다. 몸에 땀 좀 흘러 살짝 추위를 느꼈다. 짧은 거리 산행이라 생각해 배낭에 여벌의 옷도 준비하지 않았다. 유키의 속도에 맞춰 빨리 걸었다.

유키와 정상에 오른 산이 몇 개더라? 6부 능선까지 차로 가서 좀 찝찝하지만 하여간 운길산 정상에 섰다. 저쪽 뒤로 갑산~적갑산~예봉산 능성이 이어진다. 

정상은 바람이 더 셌다. 추웠다. 사진 몇 장만 찍고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나보다 바로 먼저 온 젊은 남녀가 내게 두 사람의 정상석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열심히 찍었다. 여자분이 나와 유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래, 유키야, 너와 내가 함께 나온 사진이 없으니 한 장 찍자. 


유키는 품에 잘 안 안긴다. 오라고 하면 한 걸음 떨어진 곳까지는 오지만 손에 잡힐 만큼은 안 온다. 유키를 강제로 안고 포즈를 취하게 한 다음 사진을 찍어야 한다. 간식을 가지고 유혹을 했지만 이번에도 둘이 다정스럽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얻지 못했다. 

운길산 정상에서 유키의 눈높이로 바라보면 그 멋진 풍광도 별도인 듯하다. 역시 운길산 조망은 수종사 다실이나 500년 은행나무 옆이 최고인 것 같다.

춥다. 햇볕은 좋았지만 찬 바람이 세게 부는 정상에서 땀 흘린 몸을 가벼운 옷차림으로 견딜 수는 없었다. 빨리 내려가기로 했다. 유키는 내려갈 때는 나와 보조를 맞추기 힘들다. 한꺼번에 몇 걸음씩 먼저 내려가기 때문에 자칫 내가 끌려가면서 넘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좀 빠른 걸음을 내딛거나 유키 목을 강하게 당겨 유키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


가파르고 얼어 있고 바위가 많은 산길을 빨리 내려가는 것은 위험하다. 하는 수 없이 유키의 목을 자주 강하게 당기며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유키가 목줄 없이 나를 잘 따라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가 시바견에 대해 공부한 바로는 그런 날이 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하다.


내리막에서 가속도가 붙어 유키가 나를 끌면 순간적으로 힘이 부칠 때가 있다. 내리막길 중간에 유키가 낙엽더미 속으로 뛰어들려고 나를 강하게 끌어 살짝 미끄러졌다.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내가 '앗' 소리를 내자 유키가 멈칫하며 나를 쳐다본다. 계속 끌고 가지는 않는다. 유키가 그냥 막무가내 자기 욕심만 차리지는 않는구나. 속으로 대견하다는 느낌과 함께 안심이 되었다.


다시 일주문 앞에 섰다. 햇빛의 밝기와 세기, 색깔이 예쁘다. 유키를 일주문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 싶었다. 목줄을 묶을 만한 곳은 일주문 기둥 밖에 없었다. 유키가 얌전히 있다. 나하고 같이 사진 찍으려 하면 그리 발버둥 치는 놈이 이리 얌전하다니. 그래, 오는 수종사에서 미륵불의 은총을 가득 받았길 바란다.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수종사를 한자로 보니 물 수에 쇠북 종자를 쓰는구나. 어디서 이름이 유래했을까. 이 절에 유명한 종이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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