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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인구 Mar 01. 2022

연민의 정...'비폭력대화법'을 배워야겠다

[숙기씨와 이별여행] 어머니와 코로나 동반자가격리 6일째

어머니 재택치료를 위한 동반격리 5일째(법적으로는 검진일부터 6일째). 


어머니는 이제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다. 가끔 기침을 거듭할 때가 있어 긴장되어 그때마다 체온을 재보지만 37도까지 가는 적은 없다. 어머니가 별 증상이 없어도 시럽형 기침약은 하루 두번 드시게 한다. 늘 약간의 기침은 있기에 이 약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코감기 기운이 좀 있고 목이 좀 따갑긴 하지만 코로나 증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약하다. 이런 정도의 느낌은 내가 컨디션이 안좋을 때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평상시 하던 운동을 못했더니 근육이 풀리면서 힘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약간의 근육통도 있는데, 이것 또한 평상시 운동을 몇일 못하면 나타나던 근육풀림에 따른 피로통이다.

어머니 재택치료 법정기한은 내일(3월2일) 24시까지다. 그러니까 3일부터 어머니는 다른 검사 없이 자가격리 해제된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 나에 대한 지침이 애매하다. 어머니 확진 판정이 났을 때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되더니 해제될 때는 그런 통보도 없고 문의해도 정확한 답변이 없다.


그냥 내가 알아서 행동하라는 뜻인것 같다. 아무런 검사 안하고 그냥 주변에는 음성이라고 말하고 생활해도 무방한 듯 하다. 그럼에도 직장 다니는 큰 아들을 생각해 내일 선별진료소에 가서 피씨알 검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어머니 격리 해제시 공식적인 음성 판정을 받아야 마음이 가벼울 것 같아서다.


어머니는 집에만 머물러 있으니 시공간 감각이 자주 혼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가끔 낮잠을 주무시고 나서 주간보호센터 갈 준비 해야 한다고 하던가, 어떤 때는 집에 가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방 문을 열고는 시도 때도 없이 밥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쌀도 없고 찬도 없으니 나가서 사 먹으라고 돈을 주신다. 자식을 위하는 가련한 마음인 줄은 알겠지만 계속 반복되니 답하는 것 자체가 감정에너지 소비를 크게 만든다.


큰아들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몇 마디 하다가 내가 유키 보고 싶어할거라며 유키에게 카메라를 댄다. 나는 핸폰 너머로 유키를 불러본다. 내 목소리에 반응 하는 것 같던 유키는 이내 무관심 해진다. 유키가 반갑기는 하지만 내 마음속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아무리 그래도 역시 사람이 우선이니까.


아내가 어느날 유키를 무릎에 앉히고 털을 빗어주며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강아지에게는 이렇게 정성을 들일 수 있는데, 왜 부모에게는 안될까.' 유키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집안을 어지럽혀도, 오줌을 제대로 못가려도. 그런데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쓰레기를 주워서 장농 속에 넣어 둔 것을 보면 화가 난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왜 그럴까. 왜 유키에게 하는 것만큼 어머니에게 관대하지 못할까. 언뜻 떠오르는 이론은 '기대-성취/실패' 이론이다. 사람에게는 강아지에게 보다 기대가 더 크기 때문에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화가 나는 것일 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연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친구가 '비폭력 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을 소개해 주었다. 비폭력대화에 기초한 치매인과의 대화법을 가르쳐 주는 책도 소개해 주었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 책소개와 목차를 보았다. 비폭력대화라는 명칭이 내게 영감을 주었다. 사실 내가 어머니와의 대화 뿐 아니라 가족,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비난하거나 깎아 내리는 말이 아닌 힘을 주는 대화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어머니는 내게 아침 차려 준다고 후라이팬에 두유를 4팩 넣고 물을 붓고 끓이고 있었다. 3일 전 어머니가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달걀 10개를 삶는다고 불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나는 어머니에게 엄청 크게 화를 냈다. 그런데 비폭력대화라는 말만 들었음에도, 두유 사건에 대해서는 별로 화를 내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위해 뭔가 하려고 하는 마음에 대한 연민의 눈길로 어머니를 보았기 때문이다.


'연민의 마음, 눈길'. 사실 어머니가 내가 있을 때 나를 괴롭히는 말의 대부분은 자식에 대한 걱정과 배려에서 나오는 것이다. 밥을 할 줄도 모르면서 자식에게 밥해주겠다고 찬장을 뒤지고 냉장고를 열어 무언가 끊임없이 하려고 하는 것, 돈없다고 살고 싶지 않다고 하여 돈을 주면 어느덧 다가와서 내가 돈 있으면 뭐하냐 너 써라 하고 주고나서는 다시 돈 없다고 한탄하는 것.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고 화가 나려는 순간 연민의 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면 나의 화도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도는 깨우치기 보다 지속하는 것이 힘들다고 한다. 깨우침은 끊임없이 수련하고 수양해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이런 깨우침이 치매가 깊어지는 어머니와의 긴 이별시간 동안 유지되어 어머니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나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 감정에너지 소모에 지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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