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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산책 Jun 19. 2020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곳

검색으로 찾을 수 없는 보안부대 옛터



저녁에 회식 약속이 있었다. 평소에 걷는 것을 좋아해서 비가 오기 전이어서 날이 뜨겁지 않아서 걸어보기로 했다. 주소를 검색했다. 목적지 회식장소를 놓고 출발지는 평소 알고 있던 지하철역으로 넣었다. 출발지 위치에 따라 걸어야 하는 거리가 달라졌다. 쌍촌역 주변으로 '천주교 광주대교구청', 또는 '카톨릭 평생 교육원'이 있다. 이 주변이 나무들이 많아서 자주 산책을 하러 가던 장소이다. 이 주변을 지도로 보면 넓은 면적의 초록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보인다. 그러나 항상 '카톨릭 평생 교육원'으로 산책을 갔다. 그러다가 회식 장소를 향해 걸어가면서 평소에 가지 않던 골목길로 들어갔다. 모두가 잘 아는 커피 프랜차이즈 뒤로 연결된 골목을 조금 지나가자 "505 보안부대 옛터"라는 조형물이 보였다. 그리고 넓은 면적의 숲과 안에 건물은 굳게 담으로 연결되고 사람들이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부에 CCTV가 있는지 벽에 감시구역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지도에 이곳은 어떤 이름으로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505 보안부대 옛터" 이곳에서 사람들을 고문했다고 안내가 되어 있다. 아직 알지 못하는 과거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앞에서 잠깐 서 있다가 서둘러 회식 장소를 향했다. 그러나 회식장소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고기가 익어 가는 도중에도 정신과 마음에 오랜 시간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505 보안부대 옛터 조형물]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회식이 끝나서 늦은 시간 집에 돌아와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책장에 나란히 두 권의 책이 있다. "묻다" ,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이 두 권의 책이 있다. 이 두권 모두 문선희 작가님의 책이다. 작가님을 처음 만난 장소는 아시아 문화전당이었다. 그곳에서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책에 대한 토크가 있었다. 책에 대한 인터뷰 형식의 토크여서 그때 처음으로 먼 곳에서 작가님의 광주에 대한 이야기와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은 "책과 생활" 독립서점에서였다. 그때 고공농성에 대한 내용을 담은 "거기서 뭐하세요"전시 리플릿을 선물로 받았다. 그렇게 두 번의 만남 이후 첫 번째 만남에서 구입한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 구입한 "묻다"라는 책이 책장에 나란히 자리를 하게 되었다.


"묻다"라는 동사는 같은 발음이지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드러나지 않게 깊숙한 곳에 묻다", "책임을 묻다",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보다"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두 권의 "묻다"라는 책 중 이번에 다시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라는 책을 5월에 읽었다. "마음속에 묻어 놓고 꺼내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묻어 놓은 이야기가 궁금하고 알고 싶지만 물어보지 못하는 이야기"에 대한 책이다.


 1980년 당시에 9살, 10살, 11살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글을 읽어 나갔다.  그 당시는 학교를 가지 않아서 처음에는 좋았다가 언제 학교에 다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  시민군들이 나누어 주는 빵을 먹었던 이야기, 석가탄신일에 절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마음, 불꽃놀이처럼 총알이 날아다녀 처음에는 호기심의 순간이었다가 곧 공포로 바뀌는 순간, 죽음을 눈 앞에서 바라보고 죽을뻔한 순간을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 사이로 어두 컴컴한 방구석에 솜이불로 창을 막고 솜이불을 덮고 누워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책은 "문선희"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 함께 한다. 그들이 살았던 골목골목. 그 사진들의 모습이 내가 길을 걷다가 마주한 '505 보안 부대 옛터의 담벼락"과 닮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막다른 골목이 생각나서 순간 무서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5월의 햇살

아침이나 낮이 되면 의외로 조용했어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때가 5월이니까 굉장히 햇빛이 좋잖아요. 낮에는 마당에 나가서 대나무 의자에서 한가롭게 누워서 놀았어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으니까요.(56번째 이야기)




술에 취한 멍한 눈의 계엄군

유동 삼거리는 바로 시내 인근이어서 진압군들이 경계근무를 섰어요. 집 앞이랑 골목에 진압군으로 온 공수부대원들이 경계근무를 섰는데, 그 사람들한테서 술 냄새가 어마어마하게 났어요. 사람이 잠을 며칠 못 자면 눈이 풀리잖아요. 꼭 그런 상태였어요. 술에 취해서 빨갛게 된 얼굴에 초점이 흐려진 눈과 마주쳤을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보다 그때가 더 무서웠어요(14번째 이야기)

계엄군들도 온전한 정신으로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술에 의지해서 멍한 상태에서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사람이 아닌 초점이 사라진 멍한 시선으로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그 멍한 시선과 술에 취한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지면서도 연민이 느껴진다


6.25 전쟁 그리고 솜이불

엄마가 솜이불을 문을 다 가렸어요. 우리 엄마 세대는 6.25를 겪은 세대니까 그렇게 솜이불로 문을 막으면 총알이 못 뚫는다는 걸 아셨어요. 밤에 이불속에서 엄마는 우리들에게 전쟁 때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지금이 6.25 때보다 총소리가 더 심하다고 하셨어요. (56번째 이야기)

총알을 막으려면 솜이불이 최고라는 것을 6.25를 경험한 세대는 알았다. 5월 저녁에 솜이불로 창과 문을 막고 솜이불을 덮고 잔다. 불빛이 나가는 것도 막아야 되고 조용히 숨을 죽이고 지내야 하는 시간, 솜이불이 고맙기도 하지만 솜이불로 인해 땀이 나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도 솜이불이 조금이라도 포근한 느낌을 줄 수 있었을까? 총소리에 솜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옆에 있는 가족들에 의지하여 버티어 냈을 시간이 이마에 식은땀으로 흘러내린다.


막다른 골목

제일 무서웠던 기억은 우리 집 바로 옆에 골목이 있었는데 그 골목이 막다른 골목이었어요. 밖에서 보면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길이 딱 끝나는 그런 골목이요. 밤에 도망치던 사람들이 거기가 뚫린 골목인 줄 알고 그 길로 들어가곤 했어요. (56번째 이야기)

글을 읽으면서 어두컴컴한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이 그려졌다. 광주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이 길 뒤로 골목으로 가면 지름길이 나올 듯해서 들어갔다가 막힌 길이어서 돌아 나온 경험이 몇 번 있다. 그때의 골목길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순간 살갗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면서 공포가 느껴졌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낮 시간에도 골목길로 걷는 것이 약간 두려워졌다.


군인은 좋은 사람

어? 군인은 원래 우리 편인데?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군인들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P.68)


나도 계엄군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공수부대, 그러면 대한민국 군인들이 저렇게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대하고 총을 쏘고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간첩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나도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위문편지를 쓰고 "우리의 주적은 ~"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설마~", "에이 뭔가 이상하잖아"하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그러나 점점 머리가 커지고 하나의 시각이 아닌 입체적인 시각을 가지면서 영화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5.18 기념 배지

 걱정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은 주먹밥을 만들어서 올려주면서 걱정을 하기도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불안해한다. 그때 상황을 보면 참여했다는 이유로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주먹밥을 나눠주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도청에 마지막까지 남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언론도 외면한 상황에서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미시사와 거시사

민주화 항쟁이라는 역사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당시 초등학생의 인터뷰를 통해서 살펴본 이 책은 그동안 읽었던 교과서적인 텍스트 하고는 다른 느낌을 전해 주었다. 최근에 읽은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에서 언급한 미시사와 거시사에 대한 내용이 생각이 났다.

특별히 내가 어린이들에게 주목한 이유는 그들은 현장에 있었지만 누구도 도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들의 증언 속에는 당시 시민들의 용기와 희생 같은 숭고한 꽃들뿐만 아니라 혼란, 불안, 공포,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까지 여과 없이 드러났다. (서문-이 작업은 기록이 아닌, 기억에 관한 것이다)

도적적인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감정'이 숨김없이 담겨 있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오해와 불신 그리고 혼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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