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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스 FINDERS Jan 10. 2022

우체국 사람들

인류가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낭만적 에피소드가 무수히 탄생했습니다. 그 너머에는 이를 현실로 이끌어준 우체국 사람들의 노력이 숨어 있지요. 자신이 맡은 구역을 묵묵히 누비는 집배원과 늘 새로운 우표 디자인에 골몰하는 우표 디자인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그 과정을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군자동의 청년 집배원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은 오랜 기간 온기가 담긴 편지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체국 로고인 빨간 제비는 신속하고 정확하면서 친절하기까지 한 집배원의 이미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동네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지역 주민과 교감을 주고받던 집배원의 이미지는 아련한 노스탤지어처럼 기억 속으로 저물어갔다. 더 이상 우편함에서 편지를 기다리지 않는 시대. 실제 손 편지를 부칠 때 이용하던 우체통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동네 구석구석을 묵묵히 누비는 집배원이 존재한다. 광진우체국의 한창훈 집배원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의 하루를 동행하며 ‘요즘’ 집배원의 일상을 관찰했다.


집배원의 고독한 하루

4년 차 집배원 한창훈 씨는 하루를 이르게 시작한다. 오전 7시 30분. 우체국으로 출근해 전날 분류해둔 우편물을 일일이 확인한다. 그리고 8시 30분부터 본격적으로 우편물 배달 업무를 시작한다. 한창훈 씨의 담당 구역은 군자동. 광진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집배원 180명 중에 군자동을 담당하는 팀원은 17명이다. 1994년생인 한창훈 씨는 집배실의 막내이기도 하다. 


우체국을 나서는 그는 선배 집배원들에게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오토바이에 오른다. 하루에 배달하는 우편물의 양은 등기와 일반우편, 소포를 포함해 1,000여 건에 달한다. “일을 하다 보면 노하우가 하나씩 생겨요. 우편함만 봐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고, 동네 지름길도 파악하게 되죠.” 코로나19 이후에는 비대면 배달이 일상화되었지만 간혹 음료수나 간식을 챙겨주는 분들을 만날 때도 있다고. “가벼운 인사지만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마음을 받으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곤 해요.” 


오후 3시쯤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복귀한다. 이제는 추가로 배달해야 할 등기우편과 다음 날 배달할 일반우편물 정리가 남아 있다. 동네별로 나눠놓은 격자무늬 수납함에 재빠르게 우편물을 분류해 넣고 나면 어느새 오후 5시, 퇴근 시간이다. “집배실에서 우편물을 분류하다 보면 사실 공과금 납부서가 대부분이에요. 간혹 손 편지를 발견할 때도 있죠. 그럴 때면 좀 더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혹시라도 잘못 전달되면 안 되니까요.” 


집배원이 브이로그를 찍는 이유

매일 같은 구역을 반복해서 배달 업무를 하는 집배원의 일상이 지겨울 법도 할 터. 한창훈 씨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배달을 나갈 때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해요. 저는 하늘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같은 시간대라도 또 다른 풍경이 보이거든요.” 


배달 업무 도중, 한창훈 씨는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틈틈이 영상으로 기록한 브이로그를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서라고. 그의 유튜브 채널 ‘창훈이는 창훈해’는 집배원의 업무 과정부터 친구들과 보낸 일상까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영상 편집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지만 과감하게 시작해봤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점에서 유튜브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주변에서 직업으로서 집배원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생소한 직업의 세계를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튜브를 계속해볼 생각입니다."


우표 디자인실에서 만난
우표 장인들

우표 장인들을 만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 6층 우표 디자인실로 향했다. 디지털 작업이 일상이지만, 사무실 한편에는 손으로 스케치하고 책장을 넘기며 자료를 찾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2명의 우표 디자이너와 대화를 나누며 정부에서 여전히 우표를 발행하는 이유와 우표가 지닌 의미를 알게 됐다.


자세히 보아야 열리는 무한한 세계

모든 우표 디자인 작업이 소중하지만 2020년 3월 발행한 ‘한국의 옛 건축(궁궐)’ 기념우표는 유지형 디자이너에게 특별하다. “국내 훌륭한 건축물을 소개하는 시리즈 우표인데, 첫 번째 묶음으로 궁궐을 발행했어요. 대비들의 침전으로 쓰인 경복궁 자경전, 잔치를 베풀던 창경궁 부용전과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창경궁의 명정전, 왕의 침전(침실)과 정전(업무) 공간이던 덕수궁 석조전을 담았죠. 사진 촬영과 자료 조사를 위해 석조전을 방문한 기억이 생생해요. 그전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화려한 서양식 건물 뒤에 숨겨진 아픈 역사와 상처가 보이더라고요.”


우표 배경지에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경을 그린 동궐도를 넣었다. 금박, 투명 필름, 엠보싱 등 특수 효과로 궁궐들을 돋보이게 했다. “우표가 작다고 디자인도 작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작은 물리적 공간에 담아야 할 요소는 너무나 많아요. 기념하는 가치, 의미, 메시지, 상징 등 어느 하나 버릴 수 없는 요소들이죠. 이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정확하고 조화롭게 우표에 넣어요. 자세히 오래 보면 우표에서 무한한 세상을 만날 수 있어요.”


우표와 함께 걷는 즐거움

어린 시절 일본에서 일하던 아빠와 편지를 주고받은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정은영 디자이너는 우표 이미지를 색연필로 따라 그리기도 하고, 아빠 얼굴을 우표 크기만큼 작게 그려서 우표 옆에 붙여 보내는 등 우표와 함께 자랐다. 


정은영 디자이너에게 기억에 남는 우표는 2020년 9월 국내 최초로 실크 소재로 발행한 ‘유관순 열사 순국 100주년’ 기념우표다.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오래 마주하고 있으니, 그의 강한 정신과 굳은 의지가 마음을 뜨겁게 하더라고요. 나라면 어땠을까, 나를 돌아보게 했고요. 독립만세운동을 이끄는 유관순 열사의 당당한 모습과 일본 헌병대에 잡힌 후 일갈한 한마디를 우표에 담았습니다. 작업하는 내내 먹먹하더라고요.”


절취선을 액자 삼아, 잊고 지내던 소중한 가치를 자주 들여다보고 기억하게 하는 게 우표의 매력이다. 우표를 통해 역사를 배우거나 마음을 잇고, 우표 수집이란 취미로 재미를 찾는다. 기후변화 위기, 에너지 절약 방법, 멸종위기 해양보호생물 등 주요 이슈를 담으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는 것 역시 우표의 역할이다. 우표에 담긴 이야기를 더 많이 알리고자 우표 디자인실에서도 새로운 개념의 우표를 추구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2. 레터 보내는 사람들'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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