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딸 - 남편의 삼각관계
우리 집에는 대표적인 불화고리가 몇 개 있다. 모든 집집마다 있을 건데, 자주 반복되는 불화 패턴을 살펴보는 것이다. 나와 첫째 아이와의 관계에서 주로 일어나는 일이다. 첫째의 알 수 없는 짜증, 감정 폭발에 내가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멍- 하다가 나름대로 좋게 해결해 보려고 애쓰다가, 결국엔 터져버리는 상황 말이다. 이 와중에 보다 못한 남편이 개입되고, 남편이 아이를 ‘강압’하는 모습을 보면 거기서 나의 ‘분노’와 ’ 원망‘이 솟구치며 남편에게 화살이 간다. 이런 역동이 나를 너무 시달리게 하고,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한 번은 남편의 반응에 불안이 증폭되어, 남편과 아이 사이에서 싸움을 말리다가 내가 거의 실신 직전이 된 적이 있다. 남편도 놀랐고, 아이들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싸움을 말리려다가, 중재하다가 가운데에서 폭발했다. 너무 괴로웠다. 그러고 보니, 자주 그랬던 것 같다. 내 몸을 던져서 싸움을 말리는 것, 불안을 못 견뎌서 내가 끼어드는 패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왜 이제야 나를 보는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웅크린 아이가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역동에서 아이의 문제보다 나에게 시선을 두는 것이 조금 더 빠르게 문제 해결로 갈 수 있다. 내 마음을 살펴보면 첫째, 나는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들면 화가 난다. 무례한 것을 못 참는다. 특히 감정적인 호소로 사람을 시달리게 하는 것에 지친다. 둘째, 남편이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가 억울하게 혼나면 화가 난다. 왜 어른이 돼서 그러는지 나의 어버이 자아가 남편을 비난하게 된다.
이 밑바닥에는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린 시절에 나는 내 감정을 아무도 세심하게 챙겨주지 않았다. 나는 상처받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아픈데 이런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착한 아이라고, 의젓하다고, 어른스럽다고 좋아하고 내게 기대고, 나를 통해 감정을 해소했지. 나를 보호해주진 않았다. 내 마음을 살펴주지 않았다.
사실은 나는 돌봄 받고 싶다. 내 마음이 어떤지 누가 물어봐주었으면 좋겠다. 괜찮은지 물어봐줬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게 내 마음을 보호하는 일이다. 역으로 내가 마음을 쓰며 타인을 돌보는 일을 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누군가가 나를 돌봐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실망감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밑바닥에는 아직 다 괜찮지 않은 어린아이가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실로 내가 중요한 존재이며, 네가 느끼는 감정은 옳다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다.
어떻게 이 가족역동을 넘어설까. 그때의 나에게 다정한 내가 되는 것, 다채롭고 단단한 애착을 형성하는 것, 내 문제를 꺼내놓고 기대는 것, 사랑받을 때 그대로 받아 누리는 것, 원망의 마음을 털고 용서와 화해의 길을 걸어가는 것, 괜찮은 척 넘어가지 않는 것, 내 원함을 자각하고 일치적으로 의사소통하는 것, 내 마음에 타당성을 부여하며 내 편이 되어주면서 넘어서고 있다. 잘 되진 않지만, 지금 다독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내 내면아이에게 묻고 싶다. 보다 괜찮아졌냐고, 지금 안녕하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