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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 은둔자 Aug 23. 2021

얼굴 없는 자들의 도시

아파트에서 나와 쉐리단 도로 교차로에서 그리스 정교회 건물을 끼고 좌회전. 그리고 미시간 호수를 따라 강변도로를 달리다 보면 약 10분 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마천루가 위치한 시카고의 중심부가 보인다. 얽히고 설킨 혈관을 따라 수많은 자동차와 전철이 고동치는 도시의 심장 속으로 그리고 심장으로부터 이동한다. 차라리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이다. 이 생명체를 유지 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세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하기 바쁘게 오고 간다. 하나의 조직을 위해, 그러나 홀로. 그들은 생김새도, 이동 경로도, 머무는 곳도 제각각이지만 오로지 표정만은 한결 같다. 애써 타인의 눈과 마주치기를 피해 방황하는 초점 없는 눈길. 마치 존재의 의미를 잃은 듯한, 그러나 또한 냉정하기까지 한 시선. 그들은 최소한의 단어를 엮어서 겨우 문장으로 만들어 타인과 소통하는 것을 최상의 미덕이자 최고의 노력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다.



쓰레기와 오물을 찾아 시카고의 뒷골목과 지하로 이주한 쥐와 바퀴벌레 무리처럼 그들 또한 꿈을 좇아 구비치는 거대한 물결 속에 몸을 던졌지만 결국 그렇게 초점을 잃고 말았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들은 높이 치솟은 건물들의 꼭대기만을 향해 오직 위를 바라보며 살아감으로써 타인을 배재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울타리 안에 가두었다. 저항할 수도, 적응할 수도 없는 대도시의 고독과 허무. 누구도 그들에게 이것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시카고 생활 지침서를 통해 ‘반드시 숙지해야 할 도시의 특성’ 부문을 만들어서 미리 알려 주었더라면 조금 더 마음의 준비를 했을 텐데.



그래서 사람들은 아프다. 어떻게 주변 사람들을 품고 위로해야 하는지에 대해 서툴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해 다른 운전자와 시비가 붙는 일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면역이 생긴  오래다. 실생활에서 교감하고 애정을 쏟기보다는 가상 세계에서의 관계와 시선을  의식하는 사회. 데카르트가 자신이 보고 느끼고 인식한 모든 것들을 집요하게 의심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면 시카고의 시민들은 가상에서의 세계를 현실과 동일시 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잠시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나요? 외롭지는 않습니까? 만약 이렇게 질문을 하면 마음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은 애써 눈물을 억누르고 표정을 지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일 것이 틀림없다.



언젠가 길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수많은 노숙자를 보아 왔지만 그는 잠시 잠을 청하는 중이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는 느낌을 풍겼다. 다행히 먼저 그를 발견한 중년의 여자가 구급차를 부른 차였다. 남자의 상태에 대해 나도 여자도 무덤덤한 어투로 간단하게 의견을 주고 받을 뿐이었다. 나도 결국 이 얼굴 없는 사회에 동화된 것일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도 거리에서 쓰러지게 되면 이렇게 무심한 관찰과 최소한의 조치만 취해 지겠지.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도, 마약에 취해 흥청거리는 사람도,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내면에서는 썩어가는 사람도, 시카고의 마천루는 그렇게 모든 것들을 높은 고도에서 그저 지켜 볼 뿐이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여겨지는 곳일 수록, 인간의 꿈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곳일 수록 생활이 아닌 삶에 대해 더 고찰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화려한 파티가 시끄럽게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서는 싱그러운 생명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하나의 거대한 파티장 같은 이 대도시에서 사람들은 소모된다. 저녁이 되면 아파트로 돌아가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자축하며 저녁을 먹고 때가 되면 불을 끄고 기억의 세계 너머로 침잠한다. 나쁘지 않은 또 하나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하여. 숲내음을 맡을 수 없는 이곳에서 피상적인 관계로만 이루어진 삭막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곳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즐기는 이들은 사막이든 정글이든 거대한 놀이터로 여길 수 있는 상상력을 보유한 어린이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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