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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로운 은둔자 Nov 26. 2021

고양이 집사가 되다

    아내가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장인어른의 영향으로  개와 고양이가 넘쳐나는 집에서 살아온 아내로서는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것을 조금은 부담스러워 했다. 더군다나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크기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고양이가 지낼 만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 준다는 것도 쉬운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감정표현이 풍부한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까칠하고 친해지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내는 싫어하는 무언가도 내가 계속해서 말을 꺼내면 결국 좋아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계속해서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며 한 마리 들여오면 우리 집에 훨씬 생기가 돌 거라고 잊어버릴 만하면 치고 들어갔다. 그렇게 타령을 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아내가 고양이 입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내를 고양이의 매력에 빠지게 하려는 나의 작전이 먹힌 것이었다.


         “마음에 쏙 드는 고양이를 찾았어!” 몇 주를 고양이 입양에 대해 빠져 있던 아내가 말을 꺼냈다. 그 당시 밀려드는 대학원 과제와 팬데믹으로 인한 원격 수업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서 일주일 내내 갇혀 있던 나는 번아웃이 심하게 오는 바람에 골골거리고 있었다. “고양이를 데려오면 너의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이제 아내가 나를 설득하는 양상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아내는 유기묘 보호소 웹사이트에서 에너자이저란 이름의 고양이를 찾아 나에게 보여주며 신나 했다. 에너자이저라… 어렸을 적 봤던 에너자이저 건전지 광고가 생각났다. 유튜브에서 본 부엌 카운터를 마구 뛰어다니며 물건들을 바닥으로 밀어서 깨뜨리는 천방지축 고양이가 연상됐다. 사진을 통해 본 에너자이저는 회색 빛깔 털과 아내와 같은 파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눈빛이 그렇게 친절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 고양이는 불친절할 것 같아…” 걱정하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문 예약 일정을 잡았다.


         미리 주문해 둔 캐리어와 이런저런 용품을 챙겨서 보호소로 갔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반려동물과 살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꿈 같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만난 에너자이저는 이름과는 정반대로 에너지가 하나도 없는 고양이였다. 도대체 누가 이름을 이렇게 성의 없게 지은 거야? 성묘 치고 크기도 작아서 6파운드 밖에 되기 않았다. 사진과는 달리 조그만 몸집과 너무나도 예쁜 눈 때문에 한 번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음식에 크게 욕심을 부리지도 않고 구석 창문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까지 했다. 조금 쓰다듬고 나서 적응할 시간을 주려고 뒤로 조금 물러섰다. 그러자 에너자이저는 우리에게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호소 직원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자비로우신 고양이께서 우리를 간택하신 것을 직감한 아내와 나는 바로 집사로서의 계약 절차를 밟았다. 캐리어에 넣어서 차로 돌아갈 때에 기분은 구름 같은 들뜸과 가족이 늘었다는 책임감으로 섞여 있었다. 혹여나 방지턱 때문에 다칠까 봐, 속도 때문에 멀미를 할까 봐 갓 태어난 신생아를 태우고 운전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둘에서 셋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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