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유난히 추운듯하다. 어쩌면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실은 작년의 혹은 재작년의 겨울은 추웠는지 아니면 춥지 않았는지, 하다못해 몇 달 전 올해 여름이 유난히 더운 해였는지, 아니면 유난히 덥지 않은 해였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평균(그런 기준이 있다면 말이다.) 같은 해였는지 조차 기억 못 한다. 그러면서 나는 지금 겪고 있는 계절을 표현하면서 항상 '유난히'라는 부사를 붙이곤 한다. 아마 내년 겨울에도 올해의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며 유난히 추운 겨울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환경(개별의 난방을 갖지 않는 1 LDK)에서는 여름이 아무래도 막걸리 만들기 더 용이한 계절임이 분명하다(그 해가 유난히 더운 여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여름철이 막걸리 발효에 적합한 온도인 20-25도 사이를 맞추기에 좀 더 편하기 때문이다. 겨울이면 적정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난방을 주기적으로 틀어줘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난방으로 온 집안을 따듯함(으로 인한 답답함)으로 채우기보다는 공기는 조금 서늘하게 두되, 걸치는 옷을 따듯하게 하고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에 비해 여름에 그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에어컨을 틀거나 틀지 않거나 하는 것은 선택사항일 뿐이다. 냉방을 하여도, 하지 않아도 집안 온도가 20-25도 사이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를 만들어지고 싶어지는 계절은 거의 언제나 겨울이다.
2017년 겨울, 처음 만들어본 막걸리는 이제 4번의 겨울을 지나가면서 만들고 있다. 거의 매년 비슷한, 가장 간단하고 적은 시간이 필요한 단양주 방식으로만 만들어 왔지만 올해는 유난히 좀 더 정성스레 그리고 본격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버렸다. 그리하여 올해 처음으로 밑술을 만들어 덧술에 더하는 이양주나 삼양주 방식으로 만들어보고 있는데, 전의 막걸리들은 과히 실패였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맛과 질의 차이가 크다.
나는 왜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한 것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막걸리를 여러 주종 중에서 유난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단지 그 '술'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해서였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조금 귀찮은 성격을 가지기도 했기 때문이며, 그 해 유난히 시간이 남아돌았고, 그 당시 내 조그만 방에서 직접 만들기 가장 적합한(혹은 유일한) 술이 막걸리여서였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마시는 술은 촌스럽게도 여전히 소주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증류식 소주를 만들기에는 그 방식이 너무나도 수고스럽고, 비용도 제법 들 것이며,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만들어질 맛도 시중의 소주의 것과 비교했을 때 좋을 가능성이 지극히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만드는 막걸리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술인가? 막걸리라는 술이 빚기 아주 간단하거나, 아니면 그 비용이 거의 들지 않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시중의 막걸리와 비교했을 때 뛰어난 향과 맛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다. 집에서 막걸리 직접 만든다면, 그것 또한 꽤나 유난이다.
아무리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어도 막걸리를 만들기에 최소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리고, 올해 만들고 있는 막걸리들은 짧게 잡아도 3-4주의 기간이 걸리는 방식으로 빚고 있다. 일련의 프로세스를 통해 우리 집 안에서 알코올이 생성된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매번 신기하고 일종의 경이로움까지 느끼지만, 그 과정이란 것이 여간 까다롭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지금 당장 사는 건물 1층 편의점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이 시중의 막걸리이다. 또한, 저전통주는 인터넷으로도 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가양주의 존재가치는 더욱 애매해진다.
그렇다면 비용의 문제에서는 어떤가. 아마도 막걸리 만드는 데에만 필요할 몇 가지 물품을 사는데 필요한 금액도 금액이지만, 막걸리를 만들려면 굉장히 많은 쌀이 필요하다. 막걸리를 빚다 보면 왜 과거 금주령이 존재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 곡물이 귀하거나 식수가 모자란 시대는 아니니 오직 드는 비용으로만 따지자면 집에서 만드는 막걸리에 필요한 비용은 시중의 가장 저렴한 막걸리와 최근 인기인 프리미엄 막걸리 그 사이 어느 정도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맛에 관하여. 이는 주관적인 영역이기에 혼자서도 평가하기도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만드는 막걸리 특징상, 같은 재료로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도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집에서 만든 막걸리의 맛이라는 것을 정의 내릴 수는 없다. 지난번의 맛이 이번의 맛과 다를 것이고, 이번의 맛이 다음번의 그것도 같지 않을 것이기에. 이 점이 방구석 막걸이의 매우 특징적인 장점이며, 또 매우 결정적인 단점이 된다. 애초에 술맛이라는 것이 그 가장 공장화 된 술일 소주조차 어떤 날은 달고, 어떤 날은 쓰지 않나. 앞의 구차한 변명들을 모두 차치하고 나면, 사실 굳이 직접 만들만한 수준의 맛을 아직 만들어 내지 못한다. 세상에는 이미 너무 다양한 막걸리가 있고, 사실 맛이 웬만큼 다 훌륭하다. 그에 비해 집에서는 빚는 방식이, 또 그 환경이 주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울뿐더러 개선할 여지도 낮다. 막걸리를 위해서 이사를 갈 순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시중의 막걸리는 (입맛에 따라서)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내가 파는 대부분의 막걸리를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판매하는 보통의 막걸리에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감미료는 술을 필요 이상으로 달게 만든다. 직접 만드는 술은 당도를 입맛에 맞게 조절 가능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확실한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 가양주의 또 하나 강력한 장점은 시중의 막걸리보다 도수를 높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당도와 도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맛에 포함시킨다면, 맛에서 역시 너무 후지지도 또 너무 대단하지도 않은 정도일 것이다.
이러한 애매한 점에도 불구하고 막걸리를 꾸준히 만들게 하는 내 안의 동기는 무엇인가. 말장난 같지만 바로 이런 애매한 점 때문인 것 같다. 아주 뛰어난 것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만든 것이 아주 조악하지는 않다는 점이 그 사이에서 어떠한 지점에서의 효능감을 느끼게 하고, 실제로 원동력이 되어 주는 것 같다. 마치 매우 잘 만든 영화를 보면, 어떤 이는 다른 뛰어난 영화를 보고 싶어 하거나, 다른 이들은 그러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나는 그것을 보고 그다지 특출 날것 없는 단편영화라도 스스로 만들면 그것에 아주 만족하는 타입인 것이다.
더불어 막걸리를 빚고, 또 그것을 나눠먹다 보면, 몇몇의 에피소드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병입한 막걸리가 과발효되어 개봉하는 과정에서 탄산이 터져 천장까지 막걸리가 튀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귀여운 사고라던지, 열심히 만든 막걸리가 굉장히 입맛에 맞지 않아 굳어가는 표정을 숨기기 어렵던 친한 친구, 내 막걸리를 먹어보고 본인도 만들기 시작한 우리 친형 같은 것들 말이다. 막걸리에 관한 추억은 내가 만드는 그것이 시중의 막걸리들보다 유난히 맛있지도 않지만 그것을 애정하게 하고, 지금 빚고 있는 막걸리가 지난번보다 유난히 맛이 더 좋거나 향이 깊기 어렵겠지만 또다시 귀찮음을 감수하고 다음 것을 만들게 한다. 물론 구매한 발효조나, 누룩이 아까워서기도 하다.(누구는 이런 것들을 매몰비용이고 포기할 줄 알아야 된다고 하더라. )
2022년 1월 19일 우리 집에서 익어가고 있는 막걸리는 현재,
1. 1달 전 이번 겨울 처음 빚은 삼양주 , 냉장고 안
2. 3주 전 빚기 시작한 삼양주, 옷장 속
3. 2주 전 만든 이양주, 거실 아이스박스 속
4. 어제 시작한 삼양주의 밑술, 3번의 바로 옆
그리고 내일도 4번의 덧술을 만들고, 또 다른 술의 밑술을 만들 것이다.
참 유난이다. 그렇게 잘 만들지도 애초에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럼 올해도. 막걸리. 유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