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브 Jul 25. 2023

또 한 번 그의 모험기

애스터로이드 시티(2023)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눈이 즐겁다. 그냥 즐거운 게 아니다. 통통 튀게, 감각적으로 신난다.


요즘은 상상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쳐주는 듯하다. N의 감성이라고 하지, 이것저것 따져가며 상상 속 세계를 만드는 능력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크고, 작아지고, 짐짓 명랑해질 수도, 좀 더 진지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세계를 넓혀가는 게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앤더슨은 천재적이다. 특히 이 도시에서 그렇다.



50년대 미국의 황량한 사막에 펼쳐진 이 도시의 궤도는 한계가 없는 상상력의 도로 한가운데에 있다. 외계인이 올 수도 있고, 엄마를 땅에 묻을 수도 있다. 딸기우유는 무제한이고, 자판기 속 공증 문서는 시도 때도 없이 뽑을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라진 아내를 되찾을 수도 있고, 헤어진 아이를 내 곁으로 데려올 수도 있다.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이 또한 극 속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중요한 전제를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중간중간 막이 내리고 새로운 막이 시작된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흐름이 다소 끊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여기는 극 속이다. 실제 세상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뚝뚝 잘리는 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모든 게 머릿속의 상상이기 때문에. 상상을 멈추는 건 막 하나가 끝나는 것과 같고, 마지막 커튼이 닫히는 건 우리 머릿속이 상상하기를 끝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니 적절한 맥 끊기였다고 느껴진다. 새롭다.


외계인이 있다면 정말 저렇게 생겼을까? 길고 마른 외계인의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어딘가에 존재할 인간 외의 생명체와 조우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냥 인사해야 하나? 그러면 저 사람들이 받아주려나? 아니지, 녹색 불빛에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고민이 소용없을 확률이 99% 이상이다. 이것마저도 즐겁다. 넋을 놓고 이런 상상을 할 수 있게 만들다니.


상상 속의 해당 도시는 360도 카메라 워킹에 모두 담기는 아담한 공간이다. 그러나 그곳이 품고 있는 원대한 포부는 결코 작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이곳에 오게 될까? 어떤 학교 어떤 나이의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망원경을 들여다보게 될까? 어떤 천재들이 이곳에서 암기 게임을 하게 될까? 사람들은, 이곳을 기억할까?


흠뻑 동심으로 빠지게 해 줬던 영화가 <문라이즈 킹덤>이라면,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어딘가 있을 법한 미래의 공간, 혹은 이미 지나가버린 원시의 도시를 공상하게 만드는 영화다. 어딘가에 있었으면 좋겠다. 한 번쯤 가보게. 상자를 뒤집어쓰고 하늘만 바라본대도 하루 종일 즐거울 텐데.

매거진의 이전글 싱그러운 푸른빛의 우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