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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한촌닭 Apr 10. 2024

Gisela

동네할머니

우리 동네에는 작은 시골마을이라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아주 많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아빠는 수습기간이라 일이 많고 휴가도 병가도 못써서 늘 엄마랑 둘이서 집에서 놀았었다.  그때는 차가 없어서 어딜 마음대로 갈 수도 없고 교통편도 아주 불편해서 엄마랑 둘이서 동네산책만 하고 놀았다.  베를린 살 때 큰 개 때문에 무서운 일들이 몇 번 있어서 엄마는 큰 개만 나타나면 나를 감쌌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랑 산책 중에 목줄 없는 큰 개를 만나서 엄마는 나를 안았다.

그렇게 우린 기젤라를 만났다.  기젤라는 무서워하는 엄마와 나에게 개 아무 짓도안한다고 무서워말라며 이 동네에 새로 이사 왔냐며 말을 붙였고 엄마와 나는 이곳에서 처음 친구를 만들었다.  기젤라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일하고 이제는 은퇴한 할머닌데 집집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키가 크고 허리가 곧고 날씬하고 목소리가 크고 늘 활기차고 호탕하며 당당했고 에너지가 넘쳤으며 아주 멋쟁이다.  기젤라는 하루에도 여러 번 동네를 산책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더우나 추우나.  자주 오티(개이름)와, 혹은 혼자, 가끔 파울(남편)과, 가끔은 손주들과 딸 아들 며느리와.

엄마랑 나도 늘 가든이나 동네에서 놀고 있어서 자주 정말 자주 만났다.  슈퍼에서 놀이터에서 산책길에서 약국에서 또 카페에서 한 번은 함부르크에서도 우연히 만났다.  기젤라는 4명의 손주들이 있는데 그중 첫째 손녀가 노아다.  노아는 자주 할머니집에 맡겨져서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노아랑도 친해서 같이 논다.  노아도 우리 집에 놀러 오고 나도 기젤라집에 가서 노아랑 같이 논다.  나는 독일할머니할아버지가 없어서 노아가 많이 부러웠다.  그래서 노아가 오면 나도 할머니랑 같이 노는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기젤라집에 가면 같이 모닥불도 피우고, 뜨개질도 배우고, 키우던 닭들이 낳은 알을 줍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놀이터도 가고, 같이 요리도 하고 늘 재밌었다.  우리 엄마의 좋은 친구이고, 엄마를 만나면 항상 따뜻하게 안아줬고, 우리의 안부를 걱정해 주며, 우리가 휴가를 가면 우리 집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보고 있다고 걱정 말고 잘 놀아라고 메시지를 보내주며,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갈 때 나를 돌봐줬고, 내 생일, 동생 생일, 입학식,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등 우리에게 선물해 주고 초대해 주고 사랑을 나눠주던 단 한 명.  그게 Gisela이다.  엄마는 기젤라가 우리만 특별히 이뻐해 준 건 아니라고 했다.  그냥 그건 기젤라의 성격이라고.  그렇지만 우리에겐 유일한 한 사람이라 더 귀하다고 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진짜 그랬다.  그런 사람은 기젤라 한 명이다.  나는 친할머니할아버지도 없기에 더더욱 그랬다.  두어 달 전 엄마는 동생과 나를 학교에 보내고 기젤라고 보고 싶어서 아침에 찾아갔다고 한다.  차는 없고, 창고문은 그렇듯 열려있고 오티는 집에 있는데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자전거 타고 나갔나보다 하며 그냥 돌아왔단다.  그러곤 일주일쯤 뒤에 아빠도 요즘 기젤라 안 보이는데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도 우연히 자주 만나지만 안보이기 시작하면 또 오랫동안 안 마주치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곤 엄마가 아침에 동네 고깃집에 갔다가 파울을 만났다고 한다.  

파울 파울 잘 지내? Gisela는? 오랫동안 안 보여  

너 소식 못 들었어?

뭐? 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Gisela 지금 8주째 코마상태야...

화창했던 어느 날 우리 집 위를 아주 낮게 지나가던 헬기가 있었다. 방에서 동생이랑 놀다가 엄청 신기해해며 쳐다봤었었다.  나는 엄마에게 우리 집을 이렇게 가깝게 지나간 헬기는 처음이야라고 했고, 동생은 멀리서 올 때부터 엄청 신기해하며 창문에 붙어서 쳐다봤기에 그날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 헬기가 Gisela를 태워간 헬기였다.  정말 건강했는데 그때 한번 쓰러져서 의식은 없고 기계에 의지해 연명 중이라고 한다.

엄마는 당장 기젤라를 만나고 싶어서 병원에 가봐도 되냐고 물어보니 파울이 남편인 자기도 안 간다고 가봐야 아무것도 못하고 애들이 잘 챙기고 있단다.  엄마는 이럴 때 참 독일과 한국이 다르단다.  어떻게던 엄마는 기젤라 얼굴이라도 보고 싶다며 파울이 밉단다.  활동적인 기젤라가 침상에 8주나 누워있는 것도 곤욕일 텐데 파울은 고기가 넘어가서 고기 사러 정육점 오냐며 욕했다.  병원 못 가게 하는 거는 더더더욱 밉단다.  기젤라는 집이 얼마나 그리울까. 이 동네서 나고 자라 여기가 젤 편하고 좋을 텐데 어디 가서 누워있는 건지. 멋쟁이 Gisela, 내가 이쁘게 하고 있음 네가 더 좋아했는데 이쁘게 입고 화려한 꽃 들고 기젤라한테 가고 싶다.  

오티와 노아 기젤라

그러고 얼마 뒤, 기젤라는 하늘에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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