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에서 끈을 놓고서야, 구름과 나무가 보였다.
나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누구도 나에게 이런 방식으로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온전히 나의 의지로 살아온 시간이지만, 그때의 내가 나를 돌봐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종종 잘못 꿰어진 인생의 단추는 정신, 육체를 포함해 가족, 친구, 연애와 같은 인간관계도 엇나가게 만든다. 이 순간에도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엇갈린 단추를 붙잡고 버티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본인을 돌보는 방법을 잊은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본인을 안아줄 수 있길 바란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자아실현하던 때가 있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휘몰아치던 그 시기, 청춘의 멍에는 그토록 무거웠다. 출퇴근 왕복 4시간도 커리어를 위해서 괜찮다고 자위했다. 야근을 당연시 여기던 날들. 회사를 위해 나의 주말도 기꺼이 반납했다. 외근 후, 밤 9시에 회사를 복귀하는 것도 모두 직장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막내라는 이유로 새벽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잔업을 마무리 짓는 것이 책임을 다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마땅한 대가와 페이 없는 책임과 의무에 충실했다.
내가 긁히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나의 삶의 이유를 망각했다. 인생의 꿈은 잊은 지 오래다. 바쁜 현실을 잘 이겨내고 버티는 게 삶의 목적이 되었다. 집은 잠시 몸을 누위는 곳이 되었고, 나의 온 신경은 회사에 가있었다. 회사 상사들의 가스 라이팅으로 나는 길들여졌고 덕분에 나의 일상도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쇼핑을 좋아한다. 월급의 절반은 쇼핑으로 지출한다.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지만 과감하게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구매했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 번화가에서 약속을 틈 없이 잡고, 내가 없는 나의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술을 마시고 있으라고 한다. 퇴근하고 바로 술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없으면 혼자 마시고 잠에 든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고, 이 모든 게 나에게 다 도움이 되는 일이다. 아, 그리고 오늘은 아침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근무를 했다. 이렇게 고생한 날 위해 성형외과에 가서 시술을 받고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았다. 음,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위한 힐링. 이렇게 엄청난 착각을 하며 살았다.
1년 3개월, 사회 초년생이 얻은 것은 조울증, 기면증, 기억력 감퇴, 환청이었다.
나의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쇼핑, 음주, 모임, 시술은 조울증 증상이었다.
내가 즐거운 것이 아니라, 아파서 그런 것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우연히 한 권의 책을 읽었다. 나와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쓴 책이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본인의 증상을 조울증이라고 진단했다. 자신감이 생겨서 쇼핑한 옷들은 단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하고, 옷장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 덕분에 통장 잔고는 반토막. 일주일의 절반 이상 뇌는 술에 취해있었다. 사람들과 놀고 나서 느끼는 공허함을 이기지 못했다. 보상심리로 큰돈을 쓰고 충족되지 않는 부분들을 충동적으로 해결하는 것 모두 조울증 때문이었다.
엉망이 된 수면 패턴과 스트레스로 기면증까지 왔다. 서있다가 잠들어서 넘어지고, 화장실에서 잠들기도 했다. 일하다가 잠드는 것은 부지기수. 더불어 기억력 감퇴는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령 오른쪽 서랍에 가위를 넣어두고 서랍을 닫자마자 내가 어디에 넣었는지 찾아다니거나, 메모를 해놓고 보는 것 자체를 까먹는 게 일상이 되었다. 점점 내가 미친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회사 상사가 내 이름을 부르는 날이 부쩍 늘었다. 내 이름을 불러서 대답하면 부른 적이 없다고 약 올린다. 내 이름을 부르면서 따라 나오라고 말했다. 뒤따라서 나가는데 상사는 정작 아무 말도 안 하고 왜 여기 있냐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나를 부르지 않았냐고 물었다. 상사가 놀라는 표정으로 너 진짜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상사는 날 부른 적이 없었다. 이지경이 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그다음 날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이 상태가 되도록 퇴사하지 못한 이유가 있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그렇게 회사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길래, 상사들의 가스 라이팅 덕에 모두가 다 그렇게 회사 생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그만두면 사회생활 못하는 나약한 패배자, 사회생활에서 버림받은 실패자가 되는 두려움이 컸다. 다시는 다른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절벽 끝에서 끈을 놓았다. 절벽이라고 생각한 그곳은 낮은 높이의 계단 한 칸에 불과했다. 나는 아주 부드럽고 평평하고 푹신한 땅에 착지했다. 고개를 들자 구름과 나무가 보였다. 퇴사 날, 내가 사는 동네의 모든 가로수 나무가 네모나게 다듬어져 있는 것을 1년 3개월 만에 알았다.
나, 그동안 구름과 나무를 볼 여유가 없었구나.
1년 3개월. 사회초년생이 퇴사한 그날의 날씨는 참으로 완벽했다. 퇴사하고 사무실 밖으로 나온 나는 마치 이혼하고 나온 니콜 키드먼과 같았다. 완벽하게 맑은 5월의 날씨와 햇빛, 그리고 해방감. 그 해방감의 짜릿함은 5년이 지나도 선명하다.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처음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이제 혼자서 첫 해외여행 갈 거야. 8박 9일 동안 혼자 가는 게 무섭지 않냐고? 아니! 너무 기대돼.
퇴사를 고민하는 것은 1년이 넘게 걸렸는데, 한국을 떠나는 것은 이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비행기표를 끊고, 숙소를 잡았다. 스탬프 하나 찍히지 않은 여권이 그렇게 소중했다. 여권을 두고 갈까 몇 번이고 다시 챙겼다. 나는 무엇으로 그렇게 망설였던 것인가! 우물 안의 개구리는 첫 비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