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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lmz error Aug 26. 2021

<도쿄!> : 3부_흔들리는 도쿄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그리고 사랑이 시작되다


11년간 히키코모리로 살아왔던 남자가 또 다른 히키코모리를 꺼내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온다. 남자의 삶은 빈틈 없이 평화롭고 고립된 나날이었다. ‘절대로 배달원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규칙이 깨지자 그가 살던 세계, 도쿄는 흔들린다.



도쿄는 남자가 살고 있는 공간적 배경이다. 거대한 도시지만 남자의 집은 그런 도쿄의 축소판이다. 모든것이 정리정돈 되어있고 깨끗하지만 언제나 혼자인 최적의 은둔 공간. 남자가 11년만에 사랑을 찾기 위해 용기내어 나온 세상은 놀랍게도 모두가 히키코모리가 되어 침잠하는 세계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 마저 은둔자가 될 까봐 필사적으로 그녀를 꺼내고자 한다. “지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하게 돼요.” 남자는 여자가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까 걱정한다.


그는 히키코모리가 되기 전, 뜨거운 태양과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싫었다고 회상한다. 도쿄는 크지만 그만큼 사람들로 가득 차 부대끼고 땀흘리는 공간, 비좁은 틈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닿지 않기 위해 애쓰다 못해 집으로 도망치는 도시로 비춰진다.


남자는 다시 바깥으로 나가기를 결심하고도 이틀이나 지나서야 이를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영화는 태양이 내리 쬐는 무더운 세계로 다시 진입한 남자를 긍정적으로 비추는 듯 하다. 바깥 세상으로 나온 그의삶이 동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할 것을 은유하듯 세상은 진동한다. 남자는 여자의 팔에 있던 버튼을 누른다. 여자가 웃는다. ‘사랑’이 시작된다.


봉준호는 어딘가에 틀어박혀 기생하거나 나오지 않으려 하는 태도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히키코모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식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지 않는 태도나 타성에 젖은 방식을 고수하거나 그 순리를 따르려는 인물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플란다스의 개>의 고윤주가 그러하고 <살인의 추억>의 형사들이 그러하고 <괴물>의 의사나 경찰, 군인 집단, <설국열차>의 커티스가 그러하다.


봉준호의 멜로는 이런 식이다. 생각지 못한 사랑이 다가왔을 때 그 세계는 정말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인물의 내면을 보여줄 수는 없다.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또 그것을 그럴듯 하게 만드는 봉준호의 능력은 멜로영화에서도 잘 적용되는 듯 하다. 사회 풍자 혹은 뒤틀린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던 봉준호의 영화 중 가장 결을 달리하는 <도쿄>. 봉준호가 만드는 멜로도 이렇게 달큰할 수 있구나. 봉의 한계는 어디까지였을까, 그리고 여전히 장편 멜로는 찍지 않지만, <도쿄>를 보고 난 뒤라면 내심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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