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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lmz error Sep 03. 2021

<랑종>

공포 장르의 윤리학

영화를 보며 내내 들었던 생각 중 하나는 프로덕션 디자인과 미술팀이 정말 고생했겠다는 것.... 


캐주얼하게 써 내려간 <랑종> 리뷰


나는 절대로 혼자서 공포영화를 볼 수 없는 쫄보기 때문에 봤던 공포 장르영화의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도 않고 큰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름 벌벌떨고 난리 부르스를 추며 영화를 관람했지만, <랑종>을 보고 느낀 생각을 한마디로 정리 해보자면 이거다: '형식 뒤에 숨은 게으른 공포'


쫄보인 내가 굳이 굳이 <랑종>을 보러 극장에 갔던 이유는 '나홍진'과 '반종 피산다나쿤'이라는 레전더리 조합의 결과물이 궁금했으며 그것이 한국영화, 혹은 아시아계 공포영화의 한 획을 긋는 자취를 남기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가 이렇게 클리셰 투성이에 최소한의 떡밥 회수마저 하지 못하는, 심지어는 불필요한 과잉의 향연을 이루는 영화임을 알았더라면...... 그래도 궁금해서 보긴 봤을것 같다... (할인쿠폰 적용해서 보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종>은 몇몇 윤리적 이슈로 인해 필요 이상의 욕을 먹고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인 영화긴 하다. 그러나 이건 장르영화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끔찍한 묘사들에 대해 감안하고 볼 필요가 있지 않나? 그 경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지금부터는 여러 관점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나 내용들에 대해 언급해본다.


1. '밍'에 관하여: <랑종>이 썩 훌륭한 영화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다시 보고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이유는 소위 말해 '맛탱이 가버린'연기를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하게 해내는 '밍'역의 나릴야 군몽콘켓(어렵다....)의 연기를 한번 더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내게는 그 연기가 대단해보였다. 귀신에 씌여 혼자만 미쳐가는 밍의 연기를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해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불필요한 씬들도 꽤 있었고... (이것은 이후에 다룬다)


2. 흥미로웠던 것은 '님'과 그녀의 언니, 오빠 등 '랑종'의 가족관계가 사건의 진행에 있어 영향을 끼친다는 설정이다. 보통 엑소시즘을 테마로 한 영화나 <곡성>만 하더라도 귀신을 퇴치하는 존재는 어떤 절대적인 아우라를 뒤집어 쓴 채 그가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하던 그 아우라에서 뿜어나오는 기운들로 다 무마가 되거나,(저러는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게되는) 또는 정말로 이유가 있기에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랑종>의 님과 그 가족은 단절된 가족이기에 서로를 의심하고 또 그런 단절로부터 사태가 심각해지곤 한다. 님은 조카 밍을 위해 여기저기 뽈뽈 다니면서 뭔가는 하는것 같은데, 그걸 절대로 노이 에게 설명하지 않거나 / 애 끓는 노이가 어떻게든 밍을 혼령의 손길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그게 밍에게 잡귀를 더 들러붙게하여 사태를 심각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어버린다. 더 의아한 것은 열심히 뭔가를 하는것처럼 보이는 님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헛다리를 짚은 무의미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님은 그렇게 영험한 랑종이 아니었던 것이다.


3. 노이는 자신과 딸이 겪는 초현실적인 일들을 피하고자 여러 종교에 의탁하며 이 고리를 끊어내고자 애씀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한다. 반면 악귀들은 기세등등히 위압을 뿜어내며 그 영향력를 공고히한다. 굿날을 대체 누가 정해주느냐- 는 노이 그리고 님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나 영화는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답을 알 수 없다. '알수 없다'는 것은 곡성에서도 이어지는 나홍진의 영화세계를 관통하는 철학이기도 하다.


4. 근친의 테마는 굳이 왜 들어갔는가? 밍과 자살로 세상을 떠난 오빠가 서로 부적절한 애정관계였다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이 것이 영화의 전개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도 아니었고 충분히 다른것으로 대체 가능한 부분인데 굳이? 왜? 그저 자극적인 소재를 흥미요소로 집어넣었다는 의도 외에는 읽히지 않는다. 심지어는 오빠가 왜 자살했는지조차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저주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기엔 무리가 있는것 같고...


5. 밍이 악귀에 사로잡힌 뒤부터 보이는 행위 중 직장에서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는 장면이 묘사된다. 카메라는 cctv라는 설정 뒤에 숨어 이를 관음하는데 이런 비겁한 촬영방식은 이미 숱하게 행해졌던 구태의연함일 뿐이며 불쾌감을 주는데 성공했지만 이 장면으로 인해 <랑종>은 게으르고 구태의연한, 클리셰 범벅의 타성에 젖은 그저그런 공포라는 것을 공고히 해버렸다. 귀신 씌인 여성의 신체를 월경과 하혈로 표현하다니. 포궁이 없으면 포궁에 대해 말 하지 말라.


6. 모큐멘터리 장르의 공포는 <블레어 위치>를 시작으로 <파라노말 액티비티>시리즈 까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럼에도 이 형식을 차용한 이유는 평범한 정극 공포로 가기엔 기대 수위나 서사가 너무 빈약하고 빈틈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모큐멘터리가 갖는 장점이 분명 있기에 그러려니 하지만 여전히 떡밥 회수조차 못하고 퉁치고 밀어붙이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리... 특히 마지막 단체 좀비 씬에서는 정내미가 뚝떨어지더라. 뭐꼬 이게......


7. 이 영화의 히어로는 럭키라고 생각. 연기 미쳤다....


8. 마지막으로 영아살해, 동물 학대, 불필요한 관음증(생리, cctv) 그리고 성교 장면에 대해서 윤리적인 비판을 가하는 목소리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관음증적 묘사는 특히 공포 모큐멘터리 장르에서 빠질수 없는 부분이기에 어쩔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사실 영화라는 매체 특성이 관음의 성질을 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밍이 여러 남자와 성교하는 묘사를 다루거나 하혈을 처리하는 모습을 관음하는 것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니다. 귀신에 씌인것과 여성의 색정증이 하등 무슨 관계인가? 그저 포르노로 소비되는듯 해서 불쾌했다. 동물학대나 생고기 섭취 영아 살해 등은 사실 예전에도 수많은 공포영화, 슬래셔 장르에서 있어왔던 묘사였기에 충격적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시국을 고려한다면 묘사에 대한 검열은 좀더 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가도... 사실 이쯤되면 이런 요소들이 다 빠지면 대체 위압적인 악의 모습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남을것 같기는 하다. 장르영화는 장르영화로 소비되어야 하지 않나? 그렇다면 그 경계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허나 결국 제약이 많아지다 보면 안전한 영화만 만들게 되는것은 아닌가? 그것이 과연 예술이 지향하는 바인가? 예술은 PC해야만 하는가?완전무결한 PC예술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는가? 결과적으로 모든 표현이 다 가능한 세계가 도래해야 비로소 동등한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에 참여하는 동물, 자연, 인간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예술이란 이름 하에 진정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버리며 리뷰를 마친다....;;;


이 글에 남겨지는 어떤 의견도 환영합니다. 나에대한 일방적 비난 빼고

+)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유튜브에 나온 랑종에 대한 설명이 영화의 빈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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