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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 친구들과 이모

episode.03

by 프리여니v


나이가 사람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아마 나이 자체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기에는 한계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나이대에 비슷한 세대를 관통해 온 만큼이나 나이란 것의 힘을 무시할 수도 없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작년에 내가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나는 마치 내가 드라마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각오를 새로 다졌다. 오랜만에 다시 대학생이 된 만큼 의기소침하기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활기차게 대학생활에 임해보자고 다짐한 것이다. 과거의 나라면 주저 없이 포기하곤 했던 모임에 빠짐없이 나가는 것으로 나의 다짐은 행동으로 옮겨졌다.


개강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신입생을 위한 환영회가 있었다. 신입생들인 우리는 6-7명씩 조를 이뤄 한 테이블씩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으니 모임 장소였던 가게가 과 학생들로만으로도 가득 차 북적거렸다. 환영회답게 곳곳에서 상기된 목소리들이 가게를 가득 채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나는 웅성대는 소음 너머로 테이블을 빙 둘러앉은 같은 조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앳된 얼굴의 그 아이들은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며 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별 수 없는 한 가지 공통된 표정을 엿볼 수가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옅게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가게를 둘러싼 시끌벅적한 소음과는 대비를 이룬 침묵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미미하게 흐르는 가운데, 불쑥 한 친구의 목소리가 용기 있게 침묵의 틈을 비집고 들려왔다. 그러자 자연스레 모든 친구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그리고 예상처럼 역시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05년생들이었고, 그 사이에서 나는 쭈뼛거리며, 그러나 망설임 없이 내 나이를 소개했다. “어... 전 나이가 좀 있어요. 서른다섯(?!)이에요. 반가워요.”



사회적 분위기가 예전만큼 보수적이진 않아서인지, 아니면 뒤늦게 시작하는 사람이 비교적 흔한 과 자체의 특성 때문인지 내 나이에 그다지 특별한 반응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어색한 건 오히려 내 쪽인 것 같았다. “어, 반갑습니다. 저희 이모랑 동갑이신 것 같아요.” “아 진짜요?” 내 소개가 끝나자 반가운 목소리로 한 아이가 말했다. 나는 그 점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고, 내 나이에 대해 공통점을 찾아내고자 한 그 친구의 노력이 썩 갸륵해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니 그 말에 어떤 타격을 받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그 말이 내 가슴에 남아 이따금 내 가슴을 두드리곤 했다.


그건 아마 ‘당위성’ 때문인지 몰랐다. ‘내가 정말로 이 꼬맹이들과 1학년으로서 대학 생활을 마땅히 누려도 되는가?’ 이것이 당시 나의 투명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 생각이 조금은 희석되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생텍쥐 베리가 말한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인 '우정'을 발견한 사건이 내 대학 생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건 가슴으로 들어와 내 내면의 갈등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을에 내리는 보슬비와 여름에 내리는 소나기와 같은 나이 격차에도, 마음 맞는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여느 대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었다. 그건 생각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첫 친구와의 인연은 개강 후 2주 정도부터 시작되었다. 인문학 수업이 끝난 직후였는데, 안 그래도 나도 눈여겨보던 친구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어, 안녕하세요. 혹시 언어치료학과 아니에요?” 공교롭게도 그 친구와 나는 꽤 인연이 깊었는데, 오티 전체 모임 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때 스치듯 옆자리를 공유한 적이 있었고, 같은 교양 수업을 들었으며, 같은 학과인 것은 물론 동아리 마저 같은 걸 선택한 터였다. 물꼬를 트니 친구 무리를 짓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다음 친구는 동아리 모임을 나갔다가 만났고, 그다음 친구는 엠티에서 만나 안면을 텄다.


사실 가장 큰 교류의 장이 되어준 건 인문학 수업이었다.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친구 덕분에 우리는 세명의 친구 무리가 되었다. 서너 명이 모여 다니자 선뜻 용기를 내주는 친구가 생겼다. "어... 저 저번부터 말 걸고 싶었는데, 저도 언어치료학과예요!" 그녀의 당찬 인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 나는 오래오래 그 친구를 놀려 먹었다. "이 친구는 얼마나 당찬지 몰라~ 본받고 싶어!" 전공 조별 활동을 하다가 한 학기 내내 옆자리에 앉게 된 친구도 있었고, 친구의 기숙사 룸메로 뒤늦게 합류한 친구도 있었다. 한 명이 둘이 되고, 둘이 셋, 셋이 네다섯이 되었을 때, 내가 마음을 터놓고 웃는 횟수도 점차 늘어났다. 함께 하는 것의 힘은 대단한 편에 속했다.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라고 끊임없이 되묻는 ‘내 선택의 마땅함’에 대한 의심이 점차 몸집을 줄여 나갔으니 말이다.


1년을 보내며 나는 알아차리기로 했다. 나를 가둔 건 나 자신에 대한 편견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때로는 사람의 ‘행할 의지’만으로도 ‘해도 될 충분한 가치’가 되기도 한다는 걸 말이다. 마음을 열어 교류를 하면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것이 뻔했다. 꼬맹이와 이모만큼 나이차가 나지만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때로는 노래방도 가면서 마음을 나누는데 아무런 이상도 없는 걸 보니, 나이란 단지 내가 가둔 새장일 뿐이었던 거였다.


우리가 함께 했던 순간들의 기록:)
가끔씩 찍어둔 먹을거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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