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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다른 길을 허용하라!

by 프리여니v


언어는 갈수록 전문화된다.



신경언어장애를 공부하다 보면 인간의 뇌와 밀접하게 마주하게 된다. 가장 기초적인 배경지식은 좌반구가 언어나 논리적 추론을 담당하고, 우반구가 감정과 정서를 주로 담당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개인차는 존재하나, 보편적인 연구 결과는 뇌가 이토록 치밀한 분업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 발달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개념이 바로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이다. 이는 뇌가 경험, 학습, 환경의 변화, 혹은 외부의 손상에 대응하여 신경 회로의 구조와 기능을 스스로 재구성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뇌는 나이가 들면서 발달하며 특히 2세에서 5세 사이 그 유연함이 정점에 이른다. 이후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 연결은 제거되고, 자주 사용하는 시냅스는 더욱 확고하고 안정되게 자리를 잡는다. 영유아기에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뇌가 성인이 될수록 특정 범위에 집중하며 효율성을 찾는 과정이다. 언어 습득 또한 이 흐름을 따른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 전 세계의 모든 말소리를 지각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지만, 성장하며 모국어에 집중하도록 뇌가 세팅된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 뇌 손상을 입더라도 다른 부위가 그 기능을 신속히 양도받아 수행하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골든타임’ 안에 언어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공자로서 3년쯤 살다 보니, 어느 날 아침 문득 ‘뇌의 가소성’이라는 단어가 내 고민의 답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오래전 마음에 남은 상흔을 직면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의 불행을 어떻게 인식할까? 예상치 못한 비극적인 사건 때문일까, 아니면 내면의 잠재된 불행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일까? 당시의 나는 그것이 불행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확신에 찬 비난을 품은 마음일 뿐이었다.


내 마음의 균열을 인식하고 지속시킨 최초의 기억은 친오빠의 게임 중독 사건이었다. 아빠와 사별 후,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견뎌내고 있었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 늘 집을 비웠고 삼 남매는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나는 잠으로, 동생은 TV로, 그리고 오빠는 컴퓨터 앞에 머물렀다. 그리고 내 기억 단편 속, 주말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오빠에게 퍼붓던 잔소리가 가장 크게 튀어 오르곤 했다. “게임 좀 그만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나는 오빠의 행위에서 오직 ‘불성실함’만을 보았다. 오랫동안 그 생각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오빠는 틀렸고 나는 옳았으니까. 불성실은 잘못된 것이며, 생존을 위협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이 견고한 믿음은 꿈속에서도 나를 추격했다. 꿈속에서 오빠에게 쫓기던 내용을 글로 남기다 깨달았다. 그것은 내 발목을 잡아온, 가소성을 잃어버린 ‘굳은 믿음’ 중 하나였다. 내 뇌에는 이미 이런 회로가 안정화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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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오빠는 불성실의 상징이야. 그렇게 살면 큰일 나. 그러니 나만은 절대로 불성실해선 안 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믿음을 움켜쥐고 도망치려 할수록,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내 곁에 머물며 끊임없이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그리고 그 문제의 끝에는 늘 ‘불행’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사회적 통념상 불성실은 명백히 나쁜 것이다. 우리는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격언을 아주 많이 듣고 자랐다. 수용적인 태도로 삶을 대해온 내가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순서였으리라.


하지만 멈춰 서서 내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곳에는 내뱉지 못한 슬픔을 간직한 아주 작은 어린아이와 ‘좋은 사람’을 연기하느라 비대해진 성인이 있었다. 불성실함을 적으로 돌리고 스스로를 억눌러왔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면의 불행을 직면하지 않는 한, 마음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레바퀴에 갇힌 미스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신도 혹시 굳어버린 뇌의 회로 속에 갇혀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어떤 지점에서 멈춰 있지는 않을까? 다행히 우리 뇌에는 다시 유연해질 기회가 있다. 새로운 시야를 받아들이려 노력할 때, 굳어진 믿음을 발견하고 직면할 때, 뇌는 다시 가소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정말 그 믿음이 진실일까? 다수가 옳다고 해서, 혹은 도덕적으로 정답이라서 내 삶이 불행해진다면 그것을 과연 '옳다'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모든 가치 판단을 받아들이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이제 우리는 옮겨가야 한다. 아무리 옳아 보이는 가치일지라도 그것이 내 삶을 파괴한다면 과감히 물길을 바꿔야 한다. 어린아이의 뇌가 손상된 부위를 대신해 다른 경로를 개척하며 끝내 자신의 언어를 지켜내듯, 우리 마음도 굳어진 길을 버리고 새로운 통로를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만 마음이 살고, 그리고 그래야만 언어가 보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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