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내 병에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비 오는 날 정상인과 우울증과 조울증이 함께 모였을 때.
나는 날씨의 영향을 참 많이 받는 편이다.
그리고 비가 계속 오면 축축 늘어져 동굴로 한없이 들어간다.
더 깊은 동굴을 찾아 더 깊이... 더 깊이...
이럴 때의 나는 최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비교하는 나만 살아있어 나를 골로 보내버린다.
돈은 못 버는데 소비만 하는 나.
항상 호구가 되는 나.
본업조차 제 돈 받고 일하지도 못하는 나.
뭐, 그건 그렇다 치자.
이렇게 비 오는 날엔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 본업 때문에 정상인과 우울증과 조울증인 내가 할 수 없이 함께 모였다.
그런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질 않는 거다.
"죄송한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제가 오늘은 도저히 머리가 안 돌아가서..." -나
"그럼 어디 가서 기분 전환도 할 겸 맛난 거라도 먹고 가죠." -정상인
"그.. 럴까요?"-우울증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의 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였다.
정상인은 몰라도 우울증 친구의 속은 몰라도 나는 사실 집에 가고 싶었지만 집에 가도 우울할 것은 뻔했기에 따라가기로 했다. 매운 게 당겼는데 가게 된 곳은 이태리 식당... 하지만 거기서도 나는 분위기가 다운되어서 영 헤어 나오질 못했다.
"......"
"......"
"......"
우리 셋은 시련이라도 당한 것처럼 말이 없었다.
정상인 친구는 결국 참다못했는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장례식장 분위기는 처음 본다면서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했고,
나는 그제야 분위기를 눈치챘으며,
우울증 친구는 내가 자꾸 다운되니까 자기도 덩달아 다운이 된다고 했다.
아... 미안해라.
그때서 나는 처음으로 웃었다.
그날 처음으로 웃는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분위기는 시원찮았고 밥만 먹고 얼른 나오는 게 상책이다 싶어 "빨리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미안하다. 도저히 마음이 안 올라온다."며 나오게 됐다.
나오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다음부턴 기분이 이런 날엔 조금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미안하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