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라고 하면,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같은 뭔가 거창하고 위험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동시에 다시 집어 들어 클릭하는 것은 어떤가요? 유튜브 한 편만 봐야지 하고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려고 누웠다가 알림음에 벌떡 일어나 확인하고, 누워서도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온라인과 관련된 중독 초기 증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첨단 IT 기술의 메카인 미국의 실리콘 밸리를 한 번 볼까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본사가 있는 전 세계 IT 산업의 중심지이자 기술혁신의 도시이죠. 이곳에서는 자녀들에게 스마트 기기 사용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자녀들이 아이패드를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써본 적이 없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아이들이 13세가 되고 나서야 휴대폰을 사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리콘 밸리 중심부의 발도르프 학교 '그린우드'에서는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직장에서 첨단 기기를 생산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는데 열중하는 부모들이,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겐 디지털 기기 대신 자연 속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이 새로운 교육의 트렌드인 것입니다.
발도르프 학교 그린우드의 교육을 소개해 드릴게요. 이 학교 교장인 아치 더글러스는 디지털 기기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주목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자 한다"라고 말합니다.
학부모들의 의견을 들어볼까요? "다르게 사고할 수 있는 힘이 핵심이고, 그건 기계가 키워줄 수 없다." 실리콘밸리 벤처 기술자인 앤디 글라커의 말입니다. 이 학교의 또 다른 학부모이자, 남편이 구글 부사장인 크리스 브루어는 "창조성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가 없는 학교의 방침이, 아이들 안의 예술성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합니다.
이곳에선, 중학교 과정에 이르러서야 디지털 리터러시(디지털 플랫폼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조합하는 능력) 과목을 듣습니다. 컴퓨터를 분해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배우며, SNS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자신의 미래와 주변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학습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교육이 있었던가요? 우리 주변에서도 '부모의 재력에 따라 자녀들이 받는 교육이 차별화된다'라는 이야기는 공공연히 있어 왔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차별화는 아직까지는 사교육에 국한된 느낌입니다. 이전에 썼던 글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사고를 하게 된다는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멋진 신세계, 우리 모두가 행복한 노예는 아닐까? 참고)
<롱테일 법칙>의 저자이자, 세계적 IT 잡지 <와이어드> 편집장 출신인 크리스 앤더슨은, 디지털 격차에 대해 "과거에는 기술에 대한 접근과 관련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한 지금에는 기술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것이 새로운 디지털 격차가 되었다"라고 밝힙니다.
대표적 소셜 미디어 기업인 페이스북의 상징인 '좋아요' 버튼. 전 세계 인구의 1/4이 넘는 이용자를 가능하게 한 페북 성장의 일등공신입니다. 페북 이용자들은 '좋아요' 알람 소리에 온종일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좋아요' 수에 따라 기분이 좌우되고, 나의 가치, 사회적 영향력까지 가늠하게 됩니다.
페북의 초기 개발자였던 저스틴 로젠스타인은, '가짜 즐거움의 맑은 종소리'라는 비유를 통해 소셜 미디어 기능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2017년 10월 <가디언>과의 인터뷰(Our minds can be hijacked : the tech insiders who fear a smartphone dystopia 우리의 마음은 강탈당하고 있다.)에서 페북의 '좋아요' 버튼을 '가짜 즐거움의 맑은 종소리'로 표현하며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미디어 기업에 의해 '화면 속 세계가 현실 관계에 대한 생각까지 규정'하고, 심지어 '현실 관계에 대한 생각마저 식민지화되고 있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리드 해스팅 넷플릭스 CEO는 "우리는 잠과 경쟁한다."라고 말했죠.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스마트폰에 깊이 빠진 이용자들의 생활 패턴을 빗대어 말한 것입니다.
무작위로 오는 알림은 도박을 할 때와 같은 유혹과 충동, 쾌감을 줍니다. 뉴스피드나 친구로부터 언제 알림을 받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또래 관계에 관심이 많은 10대 아이들은 '좋아요'나 조회 수를 통해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네',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보다'라는 감정, 즉, 또래집단에서의 존재감을 쉽게 느낍니다.
10대 아이들에게 또래의 인정과 평가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성호르몬의 급격한 증가로 또래집단에서의 존재감이, 자신의 위상, 스스로의 가치와 밀접한 것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죠. 거대 미디어 기업들은 이런 10대들의 욕구를 부당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전두엽은 20대 중반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활동을 계획하고, 그 활동의 결과를 예측하는 기능을 합니다. 아직 전두엽이 미숙한 10대 아이들은, 위험한 행동을 감수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전히 주목받기 위해 위험한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이 소셜 미디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은 연관이 깊은 이유입니다.
유튜브에서 무모한 위험을 감수하거나, 엉뚱한 일을 벌이며, 영상으로 올리면 조회 수가 많아집니다. 이로 인해, 이 연령대 아이들의 극단적인 행동 유발하거나 자극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조종하는 기술의 한 가지가 알림입니다. 무작위로 울리는 특성은, 슬롯머신이나 도박을 하며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모방한 것입니다. 언제 잭팟이 나올지 모르지만,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어떤 결과를 얻을지 모르기 때문에 더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무작위성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알림이 하루 한 번, 정해진 시간에만 울린다고 해봅시다. 모두가 그 시간에만 들어가서 확인할 것이고, 이는 사용자를 오래 머무르게 하려는 의도에 어긋납니다. 하루 종일 플랫폼에 묶어두는 행위는, 사용자인 내가 아니라, 기업에게 유리한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적 있지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것에만 시간과 에너지 쓴다고요. 우리는, 우리에게 유리하다고(즐겁고 재밌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기업들을 위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KBS와 고양시 덕양중학교에서 2019년 의미 있는 실험을 했습니다.<KBS 시사기획 창 "10대 스마트폰 절제력 프로젝트-중학생 뇌가 달라졌다." 참고> 중학생 아이들 7명이, 70일 동안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동안의 변화를 관찰, 기록한 것입니다. 두뇌 측면, 일상의 어려움, 긍정적인 변화, 가족관계 등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관찰했습니다.
아이들은 처음에 짜증을 내며, 실험에 지원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에 책을 읽고, 부모와 대화를 하고, 친구와 만나도 방에서 게임을 하는 대신 밖에 나가 놀았습니다. 집중력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어려움은, SNS 사용이 안 되어, 학교의 중요한 전달사항을 놓치거나, 친구들과의 소통에 참여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폴더폰을 사용한다는 자체가, 외계인이 된 듯 부끄러워하기도 했습니다.
이 실험을 통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았습니다. 어렵지만, 해볼 만하다는 것. 아이들이 '디톡스 경험을 해 본 자체'가 (생활이 원상 복귀될지언정) 향후 조절 능력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내적 동기가 작동하는 것이죠.
한계도 있습니다. 학교라는 주체가 주도하고, 여럿이(7명) 동시에 디톡스를 진행하지 않는다면, 이 과정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한창때의 아이들에게, 또래집단에서 소외되지 않는 방법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SNS를 100% 차단하는 것보다는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현대 사회의 기본 소통 채널인 메시지(톡) 기능 정도를 활용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같은 보여주기용 SNS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메시지(톡)도 스크린타임(안드로이드 폰의 경우 '디지털 웰빙 및 자녀보호 기능')의 설정 기능을 통해 일정 시간대 이전, 이후에는 사용 제한을 두는 방법 등입니다.
<훅, Hook>, <초집중>의 저자 니르 이얄은 '자신의 하루를 계획'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라고 권합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시간을 미리 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통제하라고 합니다. 알림을 없애고, 아이들 방에 폰이나 스마트 기기를 두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14년이 흘렀습니다. SNS의 기능도 시간이 흐르며 진화되고, 중독성이 강화되었습니다. 우리가 당장 완벽한 해결책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중독에 대해 느끼는 심각성도 사람마다 다르고,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유용해 보이는 방법을 계속 시도해 보면서, 더 좋은 것으로 바꿔나가면 됩니다.
우리가, '어리고 철이 없다'고만 여기는 아이들도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이 다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아이, 학교와 사회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최선입니다. 아이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해나갈 수 있다고 믿고, 포기하지 않고 해보겠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