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부터 안양예술공원 내 위치한 서울대 관악수목원이 다시 시민들 곁으로 돌아왔다. 이곳은 2022년 4월 9일, 40여 년 만에 시범 개방한 데 이어 주기적으로 시민들을 향해 문을 열고 있다. 올해는 11월15일까지 관악수목원을 방문할 수 있다.
서울대 관악수목원은 총 1,550만 5,962m²의 면적으로, 범위가 안양시와 과천시 그리고 서울 관악구에 이른다고 한다. 수목원의 주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곳은 안양예술공원과 이어진 93만 7,150m²이다. 때문에 안양 시민들은 예술공원과 더불어 관악수목원도 함께 이용하길 바라고 있다.
안양시에서 운영하는 산림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산림치유, 유아숲체험, 숲해설, 목공체험이 있다. 그중에 산림치유와 목공체험을 관악수목원에서 할 수 있다.
안양천 주변에 꽃들이 피기 시작하여 관악수목원에도 봄이 왔을까 궁금하였다. 더불어 목공체험도 하고 싶어 안양시 통합예약 시스템으로 25일 오전 10시에 목공프로그램을 예약했다.
수업 시작 시간을 조금 앞두고 정문에 도착했다. 경비실에서 나눠주는 방문증을 목에 걸고 입장하자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이곳은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에서 오랫동안 연구를 목적으로 식물의 증식과 보전에 힘썼던 곳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기 때문에 마치 원시림을 탐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재 건물인 교육관리동을 지나자 아직 싹이 나지 않았지만 볼록하게 새눈이 돋아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멀리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한 진달래가 보였다. 천천히 걸어가며 나무에 붙어있는 이름표를 읽어 보았다. 편백나무, 벚나무, 오리나무, 단풍나무, 굴피나무, 구상나무, 갈나무, 산사나무 등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삼성천은 숲의 비밀을 지키려는 듯 말간 얼굴로 소리 없이 흐르고
높이 솟은 메타스퀘어는 드나드는 계절의 바람을 허락하듯 위엄이 있다.
잔잔히 들려오는 새소리가 어리둥절한 방문객을 상냥하게 맞이하고
촉촉한 황톳길을 걷는 내 발소리의 진동에 마음속에 생기가 차올랐다.
십여 분 걸어가자 나무 데크로 만든 다리 옆으로 통관을 콘크리트로 붙여 놓은 잠수교가 나왔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목공실 앞이다. 아담한 건물에는 벌써 체험 준비를 위해 일행이 도착해 있었다. 내가 방문한 날은 마침 관악장애인복지관 수강생이 온 날이었다.
목공실에는 4개의 큰 작업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작업대에는 미리 재단된 나무 키트가 놓여 있었다. 오늘의 수업의 주제는 ‘원목트레이 만들기’로 참가자들 모두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 제작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잡이에 사포질을 하고 목공풀을 바르고 못을 박았다. 미리 못이 들어갈 곳에 약간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못질을 할 때 고정이 되어 좋았다. 못질이 힘든 분은 선생님과 사회복지사가 도와주었다.
쓱쓱 싹싹 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나무 가루를 털어내니 거칠던 면이 아기 피부처럼 보드라워졌다. 마지막으로 기름칠을 하였다. 스펀지에 식용유를 흠뻑 적셔 나무에 바른 다음 키친타월로 닦아내면 완성되었다.
모두 완성된 트레이를 만져보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오늘 뭐가 잴 재미있었나요?”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사포질이요.”
사포질을 열심히 하던 참가자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탕탕 못질이 재미있었던 분, 미끌미끌 기름칠에 신이 나셨던 분 저마다 즐거웠던 순간을 얘기했다.
잠깐 시간을 내어 관악장애인복지관의 신혜진 사회복지사와 어떻게 수강하게 되었는지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안양시 재가장애인 공예교실의 여가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참가하신 분들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성취감을 북돋아 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이어서 목공프로그램을 장병연 선생님도 다가와 말씀하셨다.
“관악수목원에서 안양시의 지원으로 목공프로그램을 무료로 수업하고 있습니다. 다른 지자체와 차별되게 산림치유와 체험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오시는 분들이 집중해서 작품을 만들며 따뜻한 나무의 숨결을 느끼고 힐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수업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뿌듯한 얼굴로 누구에게 트레이를 줄 건지 말했다. 엄마에게 드릴 거라는 사람이 많았다.